안전 또 안전

공사계 합중주 '인테리어 현장'

by 구독함

"내가 여기 다 만든 거야"


공사하시는 분들은 건물이나 육교 등을 지나갈 때마다 하는 소리다. 들을 때마다 허풍이 심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나도 Y역 스타벅스를 지나갈 때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나 없었으면 여기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야'


친구의 소개


백수가 되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자 인테리어를 하는 K가 "너 나랑 일 하나 하자"라며 영화 대사처럼 읊었다. 갑자기 일이라니??? 그때 심정 반반이었다. 친구가 소개해주는 일이니 편한 일이겠거니 하는 철없는 생각이 들었던 동시에 만약에 내가 일을 못하면 그 친구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망설이는 나에게 친구는 "정말 하는 일 없고 그냥 자리만 지켜주면 돼. 다른 친구들도 다 했던 일이고 니 요즘 시간 남으니까 일거리 생기는 거잖아. 월급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게. 어때?"라고 말했다.


평소 K라는 친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허세나 빈말을 하지도 않는 친구라 믿어보기로 했다. 항상 웃음이 넘치는 K는 일하는 현장에서는 말을 놓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친구인 거 알게 되는 게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다. K는 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 현장 총책임자였다.


"안전모 써주세요"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K는 나에게 편의점에서 아침을 먹자고 했다. 법인카드로 컵라면이니 빵이니 마음껏 시켜 먹었다. 잘 챙겨주는 건 좋았는데 부담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실제로도 이렇게 법인카드를 쓰는 건지 아니면 친구라서 챙겨주는 건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K말대로 나는 진짜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안전관리자라는 직함으로 안전모를 쓴 다음 노동자들이 안전모를 썼는지 확인하고 지시하는 게 다였다. 이건 진짜 중, 고등학생도 할 수 있는 업무라 생각하고 너무 쉽게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무더위에 안전모를 쓰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나는 일을 딱히 하지 않으니 더위를 참을 수 있었지만 목수, 도배, 미장 등 땀 흘리면서 일하시는 분들은 안전모를 썼다가 금방 벗어 놓았다.


K는 확실히 짬이 있었다. 당시 K와 나는 30대 초반으로 앳된 외모를 소유하고 있어 40대, 50대 아저씨들에게 우리는 어려 보였다. K는 안전모를 쓰지 않는 기술자에게 "선생님~ 안전모 쓰는 거 어렵지 않잖아요~ 불시에 점검하면 이거 공사 다 못해요~ 저희 생각해서 좀 써서 일해주세요~"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일하는 센스


"너는 시키는 것만 하냐". 일 못하는 사람이 항상 듣는 말이다. 사실 나도 사회초년생 때 무지하게 많이 들은 말이다. K한테 직접적으로 들은 말은 아니지만 거의 돌려서 한 말이나 다름없다. 공사 상황에 따라오는 기술자들도 달라지고 팀마다 오는 인원도 달라진다. 나한테 현장을 맡겨놓고 자주 외근을 한 K는 중간중간마다 나한테 전화해서 몇 명이 출근했는지, 무슨 팀이 왔는지 물어봤다.


인테리어의 '인'자도 모르는 애가 알리가 없었다.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니까 K는 답답함을 참으며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내일부터는 몇 명이 출근했고 무슨 팀이 출근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어. 매일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나도 갑자기 필요할 때가 있어서 말이야"


그 말은 들으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무리 친구가 추천해 준 알바자리여도, 내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어도 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 건데 정말 꽁으로 돈으로 벌려고 한 나 자신이 창피했다. 다음날부터는 수첩을 가져가서 인원도 체크하고 직무에 대해서도 물어보기 시작했다.


고소득


최근 읽은 책 <몸 좀 쓰면 어때>에 나온 바에 의하면 기술직은 고소득이라고 나온다. K가 나한테 부탁해서 지게차 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일을 시켜서 돈을 주라고 했다. 급하게 찾아서 지게차 용역을 불러서 일을 시켰는데 정말 5M 정도 옮기는데 20만 원을 받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보기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기술 하나만 있으면 20만 원을 금방 버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동시간과 교통비까지 포함된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합당한 가격일 수 있다.


넉살


공사 막바지에는 쓰레기를 치우는 인력을 채용해 일을 시켰다. 열댓 명의 사람을 봤는데 오래 걸리더라도 꼼꼼히 일을 하는 사람, 사람 있을 때만 열심히 하고 사람 없으면 담배를 자주 피우러 가는 사람, 친구끼리 와서 수다만 떠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겪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었는데 30대처럼 보이는 그 사람은, 일은 그럭저럭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같이 일하는 70살도 더 먹은 사람에게 반존대(반말과 존댓말의 사이)를 하면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담배 좀 그만 펴 그러다 일찍 죽어"


이런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선을 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70대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반말이라도 잔소리를 해주고 관심을 보여주는 게 더 기분 좋은 일인가 싶기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 현장은 숨 막히게 돌아간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아니 10년이 넘는 것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뼈대를 만들고 이것저것 다 해서 완공된 걸 보면 정말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공사판에서 일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 혹시 기술직, 현장직에 관해서 궁금한 사람은 <몸 좀 쓰면 어때> 책을 꼭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기술을 배워라(몸 좀 쓰면 어때)

https://m.blog.naver.com/9dokham/22397826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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