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함을 던져라" 전단지

교차로 횡단보도서 타임 어택

by 구독함

지하철 출구에서 전단지를 받는 엄마와 받지 않는 아들이 있다. 엄마가 "전단지 알바생 너랑 같은학교 아냐 왜 안받아?"라고 묻자, 아들은 "쟤가 돈 버는 거라 싫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너도 참 못됐다"라며 혀를 찼다.


이 이야기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유난히 추웠던 백수 시절 가장 만만하게 찾을 수 있는 건 전단지 알바였다. 마침 집 근처 미용실에서 전단지 배포 알바를 구한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뛰어가 지원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여서 동네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창피함은 잠깐, 돈은 내 지갑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더 컸다


남성 전문 미용실이었던 그곳은 30대 초반이었던 남성이었던 나를 고용했다. 하루에 2~3시간 바짝 하고 돈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주중에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주말에도 알바를 끝마치고 친구를 만날 생각이었는데, 그 친구가 "나도 같이 아르바이트하자. 둘이 하면 더 빨리 끝나는 거 아니야?"라며 의욕을 나타냈다. 그 친구를 데리고 미용실에 찾아가 친구랑 같이 일해도 되고 물어보자, 그 친구를 한번 유심히 살피더니 합격을 시켜줬다.


참고로 그 친구는 선한 인상에 넉살도 좋아 어른들에게 이쁨을 받는다. (10년 전 친구와 같이 여수여행을 갔다가 여수에 사는 이모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이후 이모는 그 친구 잘 지내냐고 자주 물어본다)


미용실 사장님은 특별한 메뉴얼 교육은 없었지만 "웃으면서 남성전문 미용실이며 저렴한 가격과 빠른 속도를 강조하기만 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사장님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장소 몇 군데를 지정해 줬다.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된다고 했지만 워낙 동네 골목 상권이라 사람이 많이 있지도 않았다. 역세권도, 버스 정류장도 좀 떨어진 곳이었다.


교차로 횡단보도 이미지

친구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미용실 근처에 있는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전단지를 나눠보자고 했다.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횡단보도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걸 보거나, 받아본 기억도 없어서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친구는 본인이 한번 해보겠다면서 전단지 뭉텅이를 들고 교차로 횡단보도 중앙에 뛰어가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지금은 신호등에 숫자도 나오는 곳이 있었지만 교차로 횡단보도는 깜빡이는 신호등이다)


친구는 몇 번 하다 보니 나에게 신호등 초를 세달라고 했다. 4~5초 정도 남았을 때쯤에 다시 인도로 뛰어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효과만점이었다. 가장 짧은 시간 많은 사람에게 전단지를 배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친구는 교차로 횡단보도 전략으로 전단지 300장을 금방 털어냈다.


나도 친구 따라 교차로 횡단보도 전략을 따라 했는데, 허둥지둥 나눠주는 내 모습이 웃겼다. 횡단보도 중앙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면서 "저기 앞에 미용실인데 저렴하고 빨리 커트해 줘요~" 이 멘트도 하고, 파란 불이 얼마 남지 않으면 부리나케 인도로 뛰어야 했다.


혼자 일 할 땐, 사장님이 지정한 장소에서만 했기에 전단지 터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가만히 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다 보니 지루했다. 반면 친구를 따라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하다 보니 업무도 빨리 끝나고 역동적으로 뛰어다보니 짜릿한 재미도 있었다.

(근데 생각하면 좀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 글을 본 자영업자들이 전단지 배포를 아르바이트생에게 횡단보도에서 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내가 했던 곳은 횡단보도도 짧은 곳이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전단지 배포가 다 끝나고 사장님이 "남성에게만 잘 나눠줬지?"라고 하자 친구는 "여성분들한테도 줬는데 남편한테 말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패기 있는 미용실 전단지 알바는 추억으로 남겼고 최근에도 초등학교 앞에서 전단지 알바를 경험했다. 초등학생은 전단지를 친절하게 잘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벌레 보듯이 하고 피하기도 하고, "이건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눈을 부라리는 학생도 있었다.


또 어떤 학생은 "이게 뭐예요? 설명 좀 해주세요"라고 똑 부러지게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설명해주는 동안에 지나가는 학생 무리들을 놓쳐서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요즘 전단지 알바 시급을 찾아보면 12000원에서 15000원 선이다. 창피함만 극복할 수 있다면, 짧은 시간 일하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최고의 알바임에는 틀림이 없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가장 처음 해본 게 전단지 알바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해봤다. 타인에게 상처를 잘 받지 않는 성격으로 성장한 밑거름이 전단지 알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단지 한 부 받으세요 싫음 말고" 마인드가 있어서 전단지를 받지 않고 피해도 "아 받기 싫구나, 다른 사람 줘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 글을 본 사람이라며 버려도 좋으니 전단지를 받아줬으면 좋겠다. 알바들도 전단지를 다 털어야 업무가 끝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이 무시와 거절을 당하기 때문에 여러분이라도 전단지를 받아줬으면 좋겠다.


며칠 뒤, 위스키 전문 술집 전단지 알바 면접을 앞두고 있다. 채용이 된다면 호수공원 근처에서 전단지를 나눠줘야 한다. 동네상권도, 초등학생도 아닌 나들이 하러 나온 사람들 대상으로 어떻게 나눠줘야 하나 즐거운 상상을 하며 글을 마쳐야겠다.

keyword
이전 01화시급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