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잃고 돈을 얻다
주 6일 밤샘 근무 월급 390만 원 vs 주 5일 주간 근무 270만 원 당신의 선택은?
백수 시절 단비
2017년 주 6일 밤샘근무 월급 320만 원에 혹한 적이 있다. (8년 전과 비교한 물가상승률로 390만 원이라고 책정했다) 취업준비생 시절이라 월급 320만 원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더군다나 대학동기가 먼저 하던 일이었는데 밤마다 카톡 하는데 제약이 없어 보이니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 보였다.
동기는 일을 관두고 새로운 것을 하겠다며, 자신이 하던 업무를 나에게 소개해줬다. 나 말고도 꿀 알바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나에게 소개해준 그 동기에게 아직까지도 고마음 마은이 남아있다. (꿀인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P사는 집에서 차로 1시간, 대중교통 2시간이나 걸리는 수원에 위치했다. 당시 장롱 면허에다 차도 없었기에 대중교통으로 다녀야 했다. 돈으로 시간을 살 정도로 많이 주니 공장 근처 고시원을 알아봤다. 저렴한 곳은 한 달 30만 원이었다. 그래도 290만 원이 남으니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낮밤이 바뀐 생활 탓에 아침에 고시원으로 퇴근해, 잠 밖에 안 잤다. 고시원 방마다 TV도 있었는데, 가끔씩 옆방 TV소리가 잠을 방해하기도 했다. (목소리 갈라지는 국회의원 A 씨 목소리는 지금 들어도 너무 싫다.)
그리고 고시원에서 P공장까지 가기 위해 중고 자전거를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해 출퇴근길에 타고 다녔다. 버스를 타도 20분 넘게 걸리는 데다가 걷는 시간도 포함됐기에 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말 많은 파트너
실질적인 업무는 공장을 지키는 보안업무였다. 2인 1조로 1명은 컴퓨에 앉아있고, 또 다른 1명은 의자도 없고 계속 서 있어야 했다. (당시에도 의자를 가져오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단호하게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9시간 근무에서 1명만 앉을 수 있다 보니 가위바위보해서 이긴 사람은 5시간, 진 사람은 4시간 앉아서 근무했다.
동기가 말한 것처럼 2시간마다 공장에 이상 없다는 카톡만 남기는 게 주 업무였다. 그것 말고는 밤늦게 퇴근한 거나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인원에다가 금속탐지기로 몸을 탐색하고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금속 탐지기를 사용할 일은 극히 드물었다.
파트너였던 C는 많이 많았다. 혼잣말을 막 하다가도 나한테 "사자와 호랑이 싸우면 누가 이길 거 같냐" "10억 주면 군대 다시 갈 수 있냐" 등 답을 모르거나 없는 거에 대해 묻곤 했다. 당시에는 '왜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저런 게 재밌나' 생각을 하면서 거부감이 있었다.
킬링타임
시간을 돌이켜보면 C는 잠을 참기 위해 영양가 없는 말이라도 한 것이거나 아니면 외로운 사람이기에 사람과 대화하는 걸 즐겨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앉아서 컴퓨터 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소중했다. CCTV도 있었을뿐더러 보안문제로 컴퓨터로 웹툰이나 영상은 보지 않았다. 일기나 블로그를 쓰거나 웹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고요한 새벽 2시 글감이 막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새벽 2시에 나는 윤동주였고. 나태주였다.
뿐만 아니라 밤 시간에는 가족, 친구들과 카톡으로 시답잖은 대화를 많이 나눴다. 관심분야가 많이 겹쳤기에 스포츠, 가요계, 예능계 등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소식에 대해 담론을 나누곤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매일매일 했는지도 신기하다.
혼난 걸까? 싸운 걸까?
조용한 공장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난 적도 있다. 남성 직원 2명이 공장에 밤늦게 들어갔다. 잔업이겠거니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는데 공장 내부에서 고성이 오갔다. 자세히 들어보니 욕도 들리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나와 C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무 일이 없길 바랄 뿐.
1시간도 안돼서 직원 2명은 작업 장소에서 다시 나왔고 1명의 표정이 엄청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말을 했는지 구타나 폭력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무슨 일이 있어 보이긴 했다. 안전사고가 난 게 아니기에 아무 이상 없다고 보고를 해버렸다.
나랑 C는 야간근무자였기 때문에 오후 근무자와 교대를 해야 했다. 오후 근무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 여성이 많았다. 그들은 화장도, 향수도 진해서 남자 직원들이 많은 공장에서 존재감이 컸다. 나랑 교대해 퇴근 준비하는 한 여성 근무자는 "컴퓨터 책상 서랍에 과자랑 빵 먹으니 마음껏 드세요"라고 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서랍을 봤는데 정말 다양한 간식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공장에 일하는 수많은 남성이 간식을 먹으라고 하나둘씩 준 걸 쌓아둔 것이다. 나이가 어린 여성들은 나이 많은 사람이 챙겨주는 거니 거절도 못하고 그냥 호의를 받아줬을 뿐인데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 근무자들 사이에서 여왕이 있었고 따돌림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일하게 나랑 C만 남자였기에 그들의 기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갑은 두둑, 정신은?
P사를 다니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었다. 출근하기 전 저녁을 먹을 수 있었는데 밥이 너무 잘 나왔다. 식판에 먹는 밥이 맛있기는 쉽지 않다.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식판에 먹는 메뉴가 부실했던 기억이 있었지만 회사라 그런지 정말 영양소도 충분했고 고시원 생활을 해서 그런지 회사 구내식당은 하루의 행복이었다. 출근 전에 먹고 퇴근하고도 먹으면서 식비를 아끼기도 했다.
그러나 밤낮이 바뀌다 보니 해가 뜨고 난 뒤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자는 시간이 적은 건 아닌데 자도 자도 피곤했다. 깨어있는 시간에도 맨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피부도 점점 안 좋아졌다. 돈이 뭐길래. 그리고 친구를 만나는 건 정말 힘들었다. 주 6일 근무다 보니 쉬는 날 친구를 만나야 하는데 저녁에 만나 밤늦게까지 놀아야 사이클이 맞았다. 인간관계도 점점 협소해지기도 했다
회사 사정상 야간 업무는 사라지고 새로운 공장이 주간 업무로 바뀌면서 해볼 생각 있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급여도 대폭삭감인 데다가 고시원 생활까지 해야 돼서 3개월간의 야간 업무는 막을 내렸다. 정말 잠깐이지만 야간 알바로 인해 피폐해진 나에게 보상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퇴사를 하고 친한 친구와 제주도로 3박 4일을 여행을 다녀왔다. 다시 낮과 밤의 사이클을 맞추느라 고생했지만 잊을 수 없는 3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