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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Jun 30. 2018

메콩강을 따라서

호이안에서 다시 호치민으로 재입성하던 날, 메콩강 투어를 신청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거리에서 쌀국수와 반미로 조식을 때우고 신카페로 갔다. 일요일이라 투어 참가자들이 많았다. 예전처럼 오붓한 느낌은 아니었다. 대형버스가 4대나 동원되었다. 1시간 반을 달려 호치민의 서남쪽에 위치한 메콩델타의 중심인 ‘번째’에 내렸다. 길이 좋아지고 다리가 생겨 확실히 이동시간이 짧았다. 부쩍 높아진 습도에 얼굴이 끈적였다. 강 건너 맞은편에 미토가 뿌옇게 보였다. 

메콩 델타는 미토와 껀저 사이의 넓은 삼각주 평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관마다 측정 수치가 다르긴 하지만 대략 4만㎢에 달하는 넓은 면적으로, 그중 논만 1만 8000㎢에 이른다. 이는 베트남 전체 논 면적의 50%에 해당한다. 땅만 넓은 것이 아니라, 수량이 풍부하고 기후조건도 좋아 3모작이 가능하다.


이 기름지고 비옥한 땅을 세계열강들이 가만둘 리 없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이 돌아가며 집적거리다, 19세기 들어 프랑스가 독차지했다. 프랑스는 관개수로와 토지를 정비하고 생산량을 늘리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어마어마한 식량물자가 프랑스로 운송되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들은 메콩강 일대에 거미줄 같은 운하를 만들었다. 농지에서 곧바로 운송선으로 적재하기 위한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운하에는 ‘몽키 브리지(명칭부터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담겨있다)’라고 불리는 아치형 외나무다리가 설치되어 농지 사이를 연결했다.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간다. 길이만 4천 km가 넘고 유수량은 세계 10대 강에 드는 큰 강이다. 메콩이란 말은 소수민족 다이족이 지은 것으로, ‘모든 강의 어머니’란 뜻을 품고 있다. 인접한 모든 나라가 통일해서 부르지만 중국에서만 ‘란창강’이란 이름으로 따로 부른다.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배로 두 개의 섬을 옮겨 다녔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보이던 수상가옥이 보이지 않았다. 컨쩌 쪽에 가면 아직 남아있다고 하는데 과거에 비해 수가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집들이 없다.

탁한 강물이 맹그로브 숲을 헤치며 바다로 흘러간다. 멀리서 보면 수면 위에 나무가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맹그로브는 바닷물과 민물이 오가는 곳에서 자라는 독특한 식물이다. 뻘에 뿌리를 내리고 썰물 땐 뿌리를 드러낸다. 그렇게 뒤엉킨 뿌리로 흙이 바다로 쓸려가는 걸 막는다. 무엇보다 산소를 공급하는 아시아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런 맹그로브가 죽기 시작했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민물의 염분을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1차적으로는 중국의 댐 건설이 컸다. 중국은 현재 메콩강 상류에 8개의 댐을 건설했고, 앞으로 10개를 더 지을 계획이다. 하구로 흘러드는 수량이 현저히 줄자, 바닷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민물양식장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었다. 양식업을 하던 수상가옥이 대부분 사라진 이유다. 두 번째의 피해는 논농사로 돌아갔다. 유입되는 수량이 줄어들면서 가뭄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메콩델타에서 말라가는 논에 물을 대는 이색적인 풍경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었다. 바닷물에 침수된 농지가 늘어나면서 논농사 면적이 줄었고, 한 해 평균 2500만 톤이던 생산량은 2000만 톤 이하로 뚝 떨어졌다.


헛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쌀과 가장 저렴한 쌀이 생산되는 나라가 베트남이라고 한다. 비싼 쌀은 단위 면적당 최소의 벼를 심어 수확량이 낮은 대신 품질을 높였다.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1년에 1모작을 한다. 그렇게 생산된 쌀은 도정하지 않은 나락으로 80kg 한 가마니에 2백만 원을 호가한다고 하는데, 계약재배로 전량 수출되어 맛볼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구멍을 공략하는 낚시법

맹그로브가 죽는 또 다른 원인으로 엘리뇨 현상이 거론된다. 해수면이 과거에 비해 점점 높아지는 문제는 베트남만의 일이 아니다. 베트남 자체의 환경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농약 남용과 개발로 인한 농지유실도 만만치 않다. 이런 복합적인 원인으로 메콩델타가 기능을 상실하자, 국제사회가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영국과 캐나다, 미국 등은 대학과 산하기관에 시설투자를 하고, 일본은 연구소를 차려 아예 학자들을 상주시키고 있다. 그 외에도 유럽의 많은 나라가 메콩델타가 사라지는 것을 막는데 앞장선다.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항의도 거세다. 메콩강 유역의 6개 나라가 참여하는 ‘메콩강위원회’의 가입을 계속 미루던 중국은 최근에 별도의 ‘란창강-메콩강 협력회의(LMC)’를 따로 만들어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명칭부터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시행 여부는 알 수 없다.


중국의 이런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에 북극해로 흘러가는 이르티시강에 댐을 건설하여 하류에 있는 카자흐스탄을 만성 물 부족 국가로 만들어 버린 것을 시작으로, 부라마푸트라강에 댐을 건설하여 인도를 위협하고, 살윈강으로는 미얀마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주변국들은 중국이 댐으로 위협한다고 우려한다. 불행하게도 이 우려는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수문을 닫는 1월에서 3월 사이에 메콩강을 통해 무역을 하는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는 강바닥을 긁으며 허송세월을 보낸다. 


정작 더 큰 위협은 물을 가두었을 때보다 한꺼번에 물을 풀었을 때다. 그들에게는 물이 핵보다 더 무서운 무기인 셈이다. 수량을 통제하여 아시아를 장악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런 중국의 행동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 북한과 접경한 압록강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두 나라는 압록강에서 4곳의 수력발전소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생산된 전력은 랴오닝성과 지린성, 그리고 일부 북한 지역에 공급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2개의 댐 건설이 더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아시아 전체의 수량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최근 베트남에서 일어난 반중시위도 이런 위기감과 반감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추진하는 ‘특별경제구역설치법’에 대한 거부감에서 촉발됐다. 베트남 정부는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일정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외국인 투자자에게 최장 99년간 토지를 임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현재는 최장 70년까지만 임대가 가능한데, 그 기한을 대폭 연장하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사실상 중국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 시위대의 주장이다. 법 조항 어디에도 중국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나라는 몰라도 중국에게만은 더 이상 당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까지 중국기업이 동남아시아에서 벌인 행태를 종합해 볼 때 불 보듯 뻔하다.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가 중국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그랬다.


베트남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반중정서가 뿌리 깊게 내려있음을 알 수 있다. 영유권 분쟁까지 얽혀있어서 한국인들의 반일 정서와 매우 흡사하다. 재밌는 것은 베트남 사람들도 중국을 하찮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신발가게에서 직원이 한다는 말이 “우리가 파는 건 중국 애들이 만든 거랑 차원이 달라. 자 봐. 여기. 재봉질부터 꼼꼼하잖아. 걔들 건 하루도 못 신고 떨어져 나가. 메이드 인 차이나는 싸구려라구.” 내 눈에는 하나도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곳이 메콩강이었다. 우리는 코코넛 캔디와 라이스페이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양봉과 홀치기 구멍낚시를 구경했다. 중간에 마차를 타고 섬을 돌기도 했고 코코넛 열매를 따서 그 자리에서 마시는 특별한 경험도 누렸다. 아이들은 신나 했지만, 메콩강을 보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저 강물의 끝이 어디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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