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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Mar 02. 2019

어떤 인연은 때론 운명이 된다

타이식 목상

2004년 푸켓에서 아내와 이른 여름휴가를 보냈다. 푸켓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해변으로 둘러싼 꽤 큰 섬이다. 지금은 해안도로가 잘 정비되어있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길이 좀 험한 편이어서, 해변 간 왕래가 원활하지 않았다. 이동을 하려면 툭툭을 빌리거나 하루에 서너 번 오가는 순환버스를 타야 했다. 중심지에 있어야 통행이 수월할 것 같아서, 제일 번화한 ‘빠통’에 숙소를 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피섬과 푸켓타운을 가기 위해 현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미니버스를 탄 것을 제외하곤 빠통을 떠날 일이 없었다. 굳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아도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낮엔 해변에서, 밤엔 쇼핑과 식당가에서, 하루 종일 놀고, 먹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놀라운 건 태국의 디자인 감각이었다. 고유의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현대적 균형 감각이 탁월했다. 호텔, 상가건물은 물론이고 쇼핑가에 나오는 물품들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나무로 만든 안경테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흑단이나 장미, 유창목 등이 주 소재로 질감과 정교한 세공이 돋보였다.  


아내와 나는 하루도 산책을 빠트리지 않았다. 빠통은 통가비치를 가운데 두고 야트막한 산이 감싸 안은 지형이다. 더운 날씨여서 산을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능선에 있는 주택가를 둘러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숙소를 발견했다. 통가비치에서 북쪽으로, 이른바 숏비치라고 불리는 ‘카림해변’이 나오는데, 그 위에 몇몇 작은 레스토랑과 호텔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중 커피나 한 잔 마실까 들어간 레스토랑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겼다. 도로에서 보면 낮은 1층짜리 건물이었지만, 해안 절벽을 끼고 지하로 공간이 더 있어, 바다에서 보면 3층에 해당했다. 아내와 나는 3층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가 그 레스토랑이 숙박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향기에 넋을 빼앗긴 터라, 그냥 나올 수 없었다. 지배인의 허락을 얻어 방을 구경했다. 레스토랑 내부에서 바로 바다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었다. 그 길을 통해 숙박동이 연결되었다. 관리인의 뒤를 따라 가보니,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암석으로 둘러싸인 비밀스러운 장소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바다를 독차지할 수 있는 천연 해수욕장이었다. 한순간에 우리는 그 공간에 매료되고 말았다.


마치 누군가 우리를 위해 준비된 이벤트인 것처럼, 렌트가 가능한 방은 바다와 접해서 문만 열면 방에서 바로 파도가 손에 잡힐 만큼 가까웠다. 우리는 술에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적당한 가격에 이틀 묵기로 하고 방을 얻었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둘만의 시간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녁에 마실 와인과 안주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붉은 해가 바다 밑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나란히 서서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았다. 거기까진 정말 환상적이었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수영하면서 와인을 마시자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밤수영을 즐기기엔 너무 이른 시기였다. 대신 방에 앉아 테이블을 밖으로 빼고 밤바다를 보면서 와인을 홀짝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밤이 되면서 높아진 해수면은 그만큼의 습도를 머금고 있었다. 방안이 금세 습기로 꽉 찼다. 침대가 축축해질 정도였다. 마른 수건으로 바닥을 훔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습기가 달라붙었다. 에어컨의 제습기능은 무용지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문을 닫고 창문 밖으로 바다를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뿐 아니라, 잠자리에 들어도 파도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귀청에서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바다의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소음과 기분 나쁜 습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렇지 않아도 끈적이는 통에 우리는 혹여 서로의 몸이 닿을까 봐 조심하면서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둘러 짐을 쌌다. 지배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남은 하루치를 환불받아 나왔다. 보기 좋은 떡이 꼭 맛도 좋은 건 아니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우리가 묵었던 방엔 장식품이 거의 없었는데, 단 하나 눈에 띄는 목상이 있었다. 폭 15cm, 높이 60cm 내외의 토속적인 문양이 새겨진 타이 스타일의 여신상이었다. 비록 몸 중심에 세로로 쪼개진 균열과 표면에 누군가 덧칠한 물감 자국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갔다. 무엇보다 아내가 마음에 들어했다. 


지배인에게 그 목상을 사고 싶다고 했다.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지배인은 안 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앤틱이라 시중에 나와 있지 않을뿐더러, 파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값을 올리려는 속셈인 줄 알면서도 나는 사장에게 말이나 한 번 건네 달라고 사정했다. 지배인은 자신이 사장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 메이드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레스토랑을 관리하는 가족경영 호텔이었다.


나는 지배인이자, 사장인 그녀에게 매달렸다. 한국에서 왔다는 얼빵해 보이는 남자가 측은했던지 그녀는 마지못해 승낙했다. 가격 절충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끝에 목상을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에서 꺼내 포장을 풀었다. 어느 지역, 어느 나무에서, 누군가의 목각을 거쳐, 어딘가를 떠돌다가, 아내의 눈에 띄어, 이윽고 한국으로 오게 됐을, 그 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사람에게 인생이라는 항로가 있다면 사물에게는 거래라는 항로가 있다.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어떤 인연으로 마주 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진 몰랐다. 어떤 인연은 때론 운명이 된다는 사실을. 해를 넘기지 않은 그해 겨울, 푸켓을 강타한 대형 쓰나미 소식이 세밑의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나는 TV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뉴스에 나오는 처참한 장면은 바로 빠통해변이었다. 거닐었던 바다, 식사하던 식당, 묵었던 숙소, 그 모든 것이 처참하게 부서지고 갈기갈기 찢겼다. 나는 거실에 놓인 목상을 돌아보았다. 이름도 잊은 지배인의 얼굴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아름답고 습기 많던 숙소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짧은 탄식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동안 거실과 책장, 화장대, 그리고 장식장과 신발장을 옮겨 다녔다. 귀에 걸려있던 고리를 제거하고 좋은 귀걸이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을 지금껏 지키지 못하고 있다. 똬리를 튼 머리 모양은 다른 타이식 목상들에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합장이 아닌 허리춤에 손을 얹은 형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춤을 추는 동작도 아니어서, 흡사 어디 한 번 해볼 테면 해봐 하는 무모한 기백이 느껴진다. 또한 불교국가인 태국은 손 모양을 중요하게 여겨 디테일을 살리기 마련인데, 이 목상은 그저 뭉뚱그려 놓았다. 손과 얼굴의 과감한 생략은 초급자의 솜씨로 추정된다. 그 점이 이 목상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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