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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Mar 09. 2019

후회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된다

맥가이버 칼

우연히 왔다가 불꽃만 일으키고 사라지는 것이 있다. 순간의 매력에 빠져 혼신을 다해 갈구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하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후회한다. 대개 이런 것들은 그 자체의 본질보다는 자신의 환상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후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유독 자신의 환상을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야말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겐 맥가이버 칼이 그랬다.     


대학 시절, 모 방송사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날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다가, 낯익은 얼굴의 한 여자 탤런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주르륵 빠지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식판을 놓치고 말았다. 스텐 재질로 된 식판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내는 굉음은 지하식당을 집어삼킬 것처럼 강력한 폭발음을 냈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식당 안에 있던 연예인, 감독, 스텝, 경비 등 방송 종사자들의 눈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다행히 배식을 받기 전이었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차라리 진짜 폭탄을 터트리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피한 친구와 못 본 척하는 선배, 주변의 따갑고 차가운 시선. 그리고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붉게 달아오른 내 얼굴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큰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가 괜찮은가 물었던 것 같고 나는 우물쭈물하느라 대답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일행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까지 고개를 식판에 파묻고 땅굴을 파듯 오로지 밥만 파먹었다. 반찬은 고사하고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방송국에 출입하면서 꽤 많은 탤런트를 보았지만 그 같은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나는 혼자 진저리를 치곤 한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라우터브루넨 캠핑장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일찍 융프라우로 가는 산악열차를 탔다. 열차 안에는 한국인이 여럿이었는데, 그 틈에 그녀가 끼어있었다. 결혼과 함께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같은 한국인이란 동질감에 인사를 주고받았다. 방송국 식당에서 마주쳤던 그 싱그러운 미소가 여전했다. 그녀의 웃음에 세상이 빛났고, 그녀의 목소리에 새들이 노래를 불렀다. 관광객들이 창밖의 풍경에 감탄하는 동안, 나는 곁눈질로 그녀를 힐끔 대면서 얼어붙는 손을 자꾸만 주물렀다.  알프스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에겐 동행이 있었다. 은퇴의 원흉인 남편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였다. 백일이 갓 지난 그야말로 갓난아기. 이불에 돌돌 말린 아이는 엄마 품에서 새침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남편의 인상은 깔끔했다. 적지 않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어려 보였다. 올라가면서 그와 몇 마디 말을 섞었는데, 성격마저 나름 유쾌한 사람인 것 같았다. 새벽에 흩날린 빗방울에 날씨를 걱정하는 관광객들 앞에서 자신이 가는 곳은 장마기간에도 해가 난다는 썰렁한 농담을 건넸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날은 정말 화창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융프라우를 매일 오가는 기관사조차 보기 드문 날씨라며, 그날 열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내린 행운아라고 스피커에서 침이 튀어나오도록 부추겼다.     


4천 미터 정상에 도착한 뒤에 그녀의 가족과는 떨어졌다. 우리에겐 피레네보다 높은 산맥이 가로막혀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융프라우는 유럽의 지붕이라는 말에 걸맞게 환상적이었다. 만년설에 태양 빛이 내리쬐면서 세상을 온통 하얀 설원으로 만들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눈이 금세 피로해졌다. 고도와 난반사 때문에 카메라를 오래 볼 수 없었다.      


전망대 밖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그녀의 남편이 다가와 담배를 빌렸다. 아이 때문에 흡연이 눈치 보인다고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사이좋게 담배를 나눠 피웠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스위스에서 무슨 선물을 사는 게 좋겠냐는 질문을 했다. 내가 맥가이버 칼을 산 루째른의 어느 가게를 알려주었다. 다른 상점보다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로 초콜릿을 준다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웃으면서 아내가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했다. 마침 다음날 인터라켄에서 루째른으로 이동할 예정이니 잘 됐다고도 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 기차역으로 갔을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아이 때문에 일찍 복귀한 모양이었다. 왠지 오래전 방송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다음날 쉴트호른으로 가는 일정을 포기하고 루째른으로 행선지를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렀다. 그녀의 이혼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 초콜릿, 미소, 맥가이버 칼 등의 이미지가 융프라우 정상에서 보던 세상처럼 하얗게 파편화되어 부서졌다. 또 시간이 흘렀다. 이번엔 재혼 소식이 들렸다. 그날따라 담배 맛이 썼다. 그리고 지금, 더욱 긴 시간이 지나고 있다. 나는 믿는다. 언젠가 우연찮게 또 마주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을 위해 팔뚝에 힘을 키워둬야지.        

  

▶정식 명칭은 ‘Swiss Officer's Knife’다. 미국에서는 ‘Swiss Army Knife’라고 부른다. 1945년에 처음 미군 PX에 납품했고, 1969년부터는 레저용과 전문 산악용으로도 출시됐다. 칼, 병따개, 가위, 코르크 따개, 드라이버, 돋보기, 자, 생선과 오렌지용 칼, 족집게 핀, 이쑤시개가 들어있다. 어떤 시리즈에는 바늘, 실, 밴드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그러나 맥가이버 칼은 생각만큼 활용도 높은 물건이 아니다. 쓸 데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막상 쓰려고 하면 쓸 데가 없다. 진짜 맥가이버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선택권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똑같이 맥가이버 칼을 고를 것 같다. 후회하게 될 줄 알면서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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