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의 글 쓰기 시간은 멈춰도 특수학교의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시간'이라니, 최근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시간이란 존재하는 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갑자기 몇 달째 읽고 덮길 반복하는 '시간은 흐리지 않는다.'(카를로 로벨리 지음)라는 책 표지에 시선이 갑니다. 얇은 책인데,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서요.
네... 뭐, 대략 오랜만에 글을 써서 뻘쭘하다는 소립니다.
올 3월 신학기가 시작되는가 하더니 어느덧 한 학기의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저는 과학 교과를 담당하고 있어요. 3년 전, 저를 "예쁜 체육 선생님~~"으로 부르던 학생은 "예쁜 수학 선생님~~"을 거쳐, 올해는 "과학 선생님~~"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예쁜'을 생략하는군요. 섭섭한데요...)
이쯤 되면 의문스럽죠? 제 전공 교과목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가정'입니다. 음... 제 전공과목을 알면 동료교사들도 놀라긴 합니다. 거의 모두가 '체육 선생님', 그중에서도 '체육 전공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제가 봐도 그렇게 여길만합니다.
발달장애 특수학교에서 볼 수 있는 신기한 광경 중 하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든 교과목을 섭렵하고 있는 만능 교사의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체육 선생님이 수학 선생님으로, 때론 조리 선생님이 됐다가 공예를 가르치기도 하거든요. 특수교사에게 있어 전공 교과목은 타 전공 교사들과는 조금 의미가 달라요. 교육 수요자인 학습자의 학습 능력치를 감안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의 학습능력은 경도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통상적으로 초등 4학년 수준까지를 학습 가능한 마지노선으로 봅니다. 수학교과를 예로 들었을 때, 초등 중학년(3~4학년) 단계에서 수학적 추상 개념이 도입됩니다. 그때부터 구체물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되는 것이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달장애 학생들 가르치는 특수교사에겐 실질적으로 교과목의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체육 선생님'이 오늘의 '수학 선생님'이 되는 이유지요.
아무튼, 저는 올해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과학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네요. 일상생활 중심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아이들이 실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과학 원리 학습을 목표로 합니다만, 막상 가르쳐보니 쉽지가 않아요. 유전 법칙을 가르치려니 유전 '형질'에 대한 개념이 어렵고, 임신과 출산에 대해 가르치려니 아이들이 아직 '성(性)'에 눈을 못 떴습니다. 피부의 구조는 눈에 보이지 않아 관심이 없네요. 하하하... 그래도 가르쳐야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업을 준비하는 게 특수교사의 할 일이니까요.
두 시간의 수업을 위해 저는 오늘도 동화책을 녹음하고, 실물에 가까운 사진과 실감 나는 예시를 준비합니다. 하나의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달고나와 빙수를 만들고, 고무줄 총을 만들어 종이비행기 발사대도 만들고, 자석 힘겨루기도 하고, 진공용기로 초코파이 옆구리 터트리기도 해 봐요. 아이들에게 교과서는 읽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거니까요. 온몸으로, 감각으로 말이죠. 다른 건 없어요. 한 번의 경험으로 아이들은 아주 작은 잔상을 얻는 겁니다. 그 순간 하나로, 아이들은 이 수업을 기억하겠지요?
또다시 수업을 준비하는 밤이 깊어갑니다.
시간이 빠르네요. 곧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전 이만, 내일을 준비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