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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Jul 15. 2018

지구 끝까지 다리 놓는 NGO

아프리카로 갑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손제덕(이하 손) : 반갑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손 : 저는 손제덕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덕’분에의 제덕입니다. 나이는 82년생, 이제 서른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에서 7년 정도 일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내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계신가요? 

손 : 저는 신규 마케팅 부서에 있습니다. 관련된 5개 팀이 있어요. 외부와 소통하는 대외 협력팀, 교회와 일하는 교회 협력팀, 미디어 팀, 기업 팀 그리고 온라인 팀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팀 간의 구분이 없어져서 기업, 학교, 교회 등과 함께 여러 방면으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 마케팅 부서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대외적인 홍보도 하고 후원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팀입니다.
 

아프리카 현장에서의 손제덕 씨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볼게요. 대학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했나요? 

손 : 대학생 때 영문과를 전공했어요. 중고등학생 시절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학생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중고등학생 시절에 방황도 많이 했거든요. 남들 다 하는 가출도 하고 비행 청소년처럼 귀걸이도 하고 술 담배도 하고.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뮤지컬이나 연극을 하면서 내 안에 억눌려 있는 감정들, 좋게 말하면 ‘끼'를 분출하면서 풀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이 재능이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려면, 한국 안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하려면 언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뮤지컬을 전공할까 언어를 전공할까 고민했죠. 고민하다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돼서 영문과로 입학하게 됐어요.


월드 비전을 직장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손 : 제가 어렸을 때 삶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했죠. 지금도 유효해요. 지금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그전에 나에 대해 더 알고 싶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20대에는 10개 나라 이상 다녀오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운이 좋게 16개 나라를 다녀올 수 있었고, 28살에는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미국에 있는 친구가 3개월간 본인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줘서 이루었고. 3개월 간 친구 집에 머물면서도 선택해야 했어요. 랭귀지 스쿨을 다니면서 공부를 할지, 다른 배울 거리를 찾아 배울지, 여행을 할지. 결국 문화를 배우기로 했어요. 그 당시에도 밤새도록 일하면서 돈을 벌었거든요. 인디언 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길래 주최 측에 찾아가서 ‘저는 이런이런 사람인데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수당을 받고 싶다’라고 이야기하고 3주 동안 일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돈을 모아서 배낭여행을 다녔어요.



 그렇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벌써 20대 후반인 거예요. 원래 UN에서도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계속 해외로 나가려는 갈망이 있었죠. UN에 입사하는 조건을 살펴보니 석사 이상이어야 되는 거예요. 학업을 진행하려면 1년에 8,000만 원에서 1억 원이 들어요. 당시 돈이 없었으니 한국에 들어와서 돈을 벌고 다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돈을 벌 생각으로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제 형이 아버지 사업을 돕기 위해 필리핀에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필리핀으로 다시 나갔어요. 당시 아버지 사업장이 필리핀 민다나오라는 지역에 있었는데 그곳에 계엄령이 선포된 거예요. 그때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여러 나라를 다녀온 후 어떤 일을 할지 방향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죠. 필리핀에 가서도 ‘내가 왜 전쟁이 일어나는 국가에 가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삶의 좌표를 잃어버렸고.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되고 졸업까지 한 학기 남은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직업을 선택할 것이냐, 사람을 직접적으로 위하는 일을 선택할지 다음 진로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한 상사(商社)와 월드 비전 총 두 군데 이력서를 내서 두 곳 모두 합격을 했어요. 먼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에게 그 일이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희 형은 반대를 했지만 결국 지금 월드 비전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살리고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 제가 그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해요.


일반인들은 영상 매체 등 간접적인 통로로 현지 상황을 접하다 보니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아요. 현장에서 일선으로 일을 하고 계시니 현지는 어떤 모습인지 직접 알려주세요. 

손 : 저희는 20여 시간 정도 한 두 번 비행기를 타고서 현지에 도착하면 현지 월드비전 직원들과 함께 차 또는 국내선을 타고 또 네 시간 정도 이동해서 남들은 한 번도 가지 않은 오지로 들어가요. 우리가 아시아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는. 그곳에 들어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요. 죄송한 표현이지만 세계는 미디어를 통해 잔인하고, 불쌍하고, 가난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으면 모금이 안 되는 거죠.


아프리카 현장에서의 손제덕 씨


 피부가 곪아들어간 아이가 있는데 인터뷰만 하고 나와야 하는 상황도 있어요.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지만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니 저 나름대로 자그마한 선물들을 준비해 가요. 그 선물이 ‘희망’이라는 단어로 인식되길 희망하면서. 그래도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해요. 가가호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죠. 식수가 필요하고 보건소가 필요하다면 사업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그곳에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현지 사람들에게 당장은 너무나 미안하지만 장기적으로 도와주려는 방향이에요.


 현지에 가보면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들이 보여요. 예를 들어 현지 보건소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몇 시간씩 기다려서 아이들 몸무게를 재고, 의사와 간호사도 한 명 씩이니 약을 타려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안 돼요. 어린 소년들이 길을 가다가 소년병으로 납치를 당해요. 여자 아이들도 노예로 팔려 나가고. 아직도 그런 일들이 있어요. 물을 뜨러 가는 어린 친구들이 학교도 못 가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방송을 통해서도 나오지만 물을 뜨러 갔다가 돌아오면 또 일해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일어나는 거죠. 질병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는 더 심해요. 뇌수종이나 뇌척수염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해요. 간질에 걸린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해줄 것이 없는 거예요. 잠깐 봤지만 그 엄마는 너무나 힘들어 보였어요. 누구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도 없고, 놀러 오는 사람도 없고, 아이한테 먹일 것도 없고, 일 할 수도 없고.


아프리카 현장에서의 손제덕 씨


 산모가 병원을 가려면 울퉁불퉁한 길을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가야 해요. 그럼 가는 동안 계속 덜컹거리겠죠. 그 덜컹거림 때문에 뱃속 아이는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운전사가 저희 직원들에게 물어봐요. ‘이 차를 타고 가다가 아이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태우겠습니까 안 태우겠습니까?’라고.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할까요. 안 가도 죽고, 타고 가다가 죽을 수도 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저와 현지 직원, 산모가 번갈아 보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요. ‘돈 줄 테니까 산모를 살려라’가 아니라 병원까지 갈 수 있는 도로가 필요하고 학교가 필요하고 분필이 필요한 거예요. 사람들이 자금으로 후원하고 싶다고 말하다가도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 월급을 줘야 한다고 하면 ‘내 돈으로는 월급 안 줬으면 하는데’라고 해요. 이런 문제들이 복합적이라 인식 개선부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이 무엇인가요? 

손 : 이십 대 전까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어요. 사실 막연하죠.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불가능하고. 이십 대에는 총 세 가지 꿈이 있었어요. NGO에서 일하는 것, 선생님이 되는 것, 뮤지컬 분야에서 일하는 것. ‘다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현재 NGO에서 일하고 있고, 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해요. 이루고 싶은 것은 다 이뤘는데 지금부터 이루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면 가교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돕고 사업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 하형록 회장님이 주차장을 아름다운 건물로 승화시켰던 것처럼. 예전에는 사람들이 주자창 건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팀 하스의 주차장은 밝아서 안심하고 다닐 수 있고 주변 상권이 회복되는 가치를 창출했거든요. 이런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꿈을 꿀 수 없고 꿈이 있더라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격려의 말 부탁합니다. 

손 : 저도 삼십 대 중반이라 제가 가지고 있는 짧은 경험을 그들에게 말해줄 수 없겠지만, 제가 스물여덟 살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이렇게 이야기해주신 분이 있어요. 나이 지긋한 어른임에도 ‘난 아직도 세상에 대해 잘 모르겠어’라고. ‘이 재밌는 세상을 우리가 같이 알아가 보고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보자’라고. 물론 젊은이들에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세상이 쉽지 않은 곳이지만 한 번 살아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를 ‘생계형 마케터’로 소개했듯 분명히 길이 있어요.


 ‘끝까지 노력하고 포기하지 마’라는 어쭙잖은 위로를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에요. 분명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생기든, 메일을 보내든, 찾아 가든, 후원을 받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저희 회사에 스펙 좋은 사람들 정말 많아요. 제가 그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방법들이 하나하나 쌓였기 때문이에요. 본인이 계속 만들어가야 해요. 당장은 원하는 꿈과 멀더라도 지금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기회를 보는 눈을 키우면 언젠가 기회는 반드시 와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월드비전과 같은 NGO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손 : 많은 분들이 질문해요. 어떻게 하면 NGO에서 일할 수 있냐고.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영양학이나 요리를 배우면 들어와서 영양보건을 담당할 수 있잖아요. 한 분야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요. 언어가 중요하지만 언어가 준비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분야들이 있어요. 물론 언어가 준비되면 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넓어지죠. 저도 더 공부해야 하고.


 마치 슈퍼맨을 찾는 것과 같아요. NGO는 각자가 슈퍼맨이에요. 말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도 잘하면 더 좋고요. 체력도 좋아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이곳에 들어와서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해요. 급여를 많이 받는 대기업에서는 그만큼 힘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NGO에서도 어떤 부분들이 힘든지를 알고 들어와야 해요. NGO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의 기회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장단점을 파악하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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