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닉스 안(못) 배운 80년대생 영어 교사가 파닉스를 대하는 자세
영어 학습의 출발을 함께하는 파닉스. 시작이 반이라는 다소 고루한 표현이 있지만, 파닉스는 성공적인 영어 학습의 절반을 책임질 수도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분야입니다.
저를 포함해 영어를 가르치시는 많은 분들은 '파닉스 세대'가 아닐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파닉스가 무엇인지 설명할 때 제가 주로 활용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readingdoctor에서 제시하는 햄버거 그림인데요.
이 햄버거는 Spoon이라는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소리와 철자를 나타냅니다. (Spoon을 직접 한 번 발음해보면서 이해하면 좋습니다.) 가장 윗부분은 우리가 귀로 듣거나 입으로 말하는 ‘소리’를 나타냅니다. Spoon이라는 단어는 4개의 서로 다른 소리 조각(음소)으로 구성돼있죠. /s/,/p/,/u:/,/n/
‘단어를 이루는 소리는 서로 다른 작은 소리 조각들로 나뉘어져 있구나!’
햄버거 중간으로 내려오면 4개의 소리 조각이 알파벳과 같은 기호로 바뀝니다. 즉 개별 음소를 부호화하기 위한 문자소(Grapheme)가 각각 배치됩니다. /s/,/p/,/n/과 달리, /u:/라는 음소는 기호 한 개로 구성된 문자소가 아닌, ‘o’라는 기호 두 개가 조합된 문자소로 대표하기로 약속돼있습니다. (하나의 문자소가 몇 개의 기호를 담든, 문자소의 수는 변하지 않습니다. 문자소의 수는 음소의 수와 일치합니다.)
‘/u:/라는 소리는 글자로 ‘oo’라고 쓰면 되는구나!’
‘oo라는 글자를 보면 /u:/라고 소리 내어 읽으면 되겠구나!’
햄버거의 마지막은 문자소를 비로소 우리가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는 알파벳으로 변화시키는 부분입니다. 4개의 소리 조각에서 출발했지만, 읽고 쓰기 편하게 ‘oo’의 부분을 따로 나누어 적었습니다. (본래 말소리의 표현과 글자의 표현 간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일부 글자는 하나의 문자소(음소)를 나타내기 위해 여러 개의 알파벳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여러 문자소가 하나의 글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spoon’ 단어를 눈으로 보고) 앗! 이 글자는 /spu:n/이라고 말하면 되겠구나!’
‘(/spu:n/이란 단어를 듣고) 앗! 이 소리는 ‘spoon’이라고 쓸 수 있겠구나!’
즉, 파닉스는 소리와 글자의 관계에 대한 지식입니다. 소리가 나뉘어져 있음을 알고, 소리를 대표하는 기호가 있고, 기호가 어떤 규칙에 따라 글자화 된다는 점을 아는 것이죠.
그래서 파닉스는 단어가 가진 소리와 글자를 배우는 교수법이라고 정의 됩니다. (‘소리’만 듣고 말하는 학습이 아닙니다.) 파닉스라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어떤 발음이 어느 문자군과 결합돼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모르는 단어를 봤을 때 소리내어 읽을 수 있고, 새로운 단어를 들었을 때 역시 그 철자를 추측해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다가 Cat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 머릿속에서 각 글자가 대표하는 소리를 '크, 애, 트'로 분석해서, 이를 합친 다음에 '캣'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이것을 Decoding, 해독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교사가 Cat이라고 말했을 때, 학생이 이걸 듣고 '크, 애, 트'라고 분해한 다음에 소리가 대표하는 글자를 이렇게 적을 수 있는 능력도 파닉스를 통해 나옵니다. 이 행위를 Encoding, 부호화라고 합니다.
파닉스가 단어를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는 영역 뿐만 아니라, 쓰기 활동과도 긴밀히 연결돼있다는 점을 항상 강조해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파닉스 시기부터, 즉, 영어 학습 초기부터 쓰기를 훈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요. 이 때 잠깐 알파벳 쓰기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알파벳 쓰기가 단어 쓰기로까지 연결돼야 파닉스를 제대로 진행하는 것이 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닉스가 만능이 아닌 이유를 다뤄보겠습니다. 우리 세대(참고로, 저는 80년대생입니다.)가 파닉스 안 배우고도 수능 잘 치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