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있는데 불안도 앞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스피킹 실력 향상 방법
많은 사람들은 대화 상대방으로 영어 원어민을 생각합니다.
영어 말하기, 스피킹에 대한 로망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 표현의 새로운 수단을 얻는다는 짜릿함일까요.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와 학원에서 아무리 스피킹을 훈련한다한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이를 지속할 기회가 없습니다. 스피킹은 대체로 대화 상대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상대방으로 영어 원어민을 떠올립니다.
사실 스피킹 실력 향상을 위한 최적의 환경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어권 국가에서의 생활입니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는 마트에서, 병원에서, 직장에서 잘 알아들어야 하고, 잘 말해야 하죠. 생존 본능이 깔려 있을 때 우리의 학습 능력은 최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쉽게도 영어가 기능적인 쓰임에 머물러 제한된 범위의 어휘와 표현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죠.(물론 그렇다고 해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실력으로 발전하는 것은 맞습니다.) 스피킹이라는 행위에 큰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고요. 왜냐하면 계속 긴장하고 주눅들어있어야 하니까요.
그 다음 환경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겁니다. 언어 교환이라든지 여러가지 목적의 다양한 모임에서 우리나라에 머무는 영어 원어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교적 빠른 시간에 스피킹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다만, 이 역시 애초부터 어느 정도 스피킹이 되는 사람이 접근 가능한 경험입니다. 강의료를 지불하고 만나는 사제관계가 아닌 이상,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고 친교를 맺는 데 기꺼이 부단히 노력할 영어 원어민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영어를 배우려고 영어 원어민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접근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 다소 서운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영어 원어민과 절친이 되는 방법 역시 여의치 않다면 대화 상대방에 대한 기준을 낮춰보는 것이 어떨까요? 영어 원어민이 아닌, 나처럼 영어를 배우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요. 배울 것이 없어 실력이 늘지 않을 것 같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중간에 서로 답답해 한국어를 남용(?)하지 않는다면요.
나와 스피킹 실력이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사람과의 대화는 엄밀히 따지면 영어 원어민보다 더 나은 상대일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 크라셴 박사의 입력 가설(The Input Hypothesis)에 따르면요. 입력 가설은 학습자의 현재 수준(i)보다 약간 높은 난이도의 input (i+1)을 제공할 때 학습자의 언어습득이 최적화된다는 내용입니다. 만약 학습자에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영어 (i+2, i+3...)가 제공된다면, 이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 습득이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죠. 핵심은 '적절한' 난이도입니다.
스피킹과 관련된 크라셴의 가설 중 또 다른 하나는 감정적 여과 가설(Affective Filter Hypothesis)입니다. 학습자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면 감정적 여과기(인풋을 튕겨내는 '벽'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가 작동하고 언어습득은 즉시 중단된다는 내용입니다. 인풋의 수준이 너무 높으면 이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고, 이것이 습득을 방해한다는 이야기죠. 크라셴은 학습자가 i+1 정도의 난이도에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언어 습득 능력이 최고조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물론 술 한 잔이면 필터가 즉시 사라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은, 만나기 힘든 영어 원어민보다 영어를 학습하는, 나와 사회 문화적 공감대를 잘 형성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스터디 모임을 찾고, 영어로 대화할 한국인을 찾아, 면대면 대화부터 카톡 메시지와 zoom 회의까지 다양한 형태의 영어 회화를 적극 진행할 사람을 구하세요. 만나서 할 얘기가 필요하니, 대화 주제가 있으면 더 좋습니다. 뉴스, 음악, 영화, 책(원서 추천) 등... 네이버 뉴스+인스타+유튜브를 하는 한국인이라면 쉽게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어로 하시면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해야 할 것은 영어로 대화할 한국인을 찾는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제가 말을 걸 때마다 뒷걸음치며 눈물을 글썽이던 한 아이가 생각납니다. 제가 말 할 때 눈을 너무 크게 뜨고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죠. 교사의 '퍼포먼스'가 중요한 초등 영어 회화 수업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자기 짝꿍이나 모둠끼리 진행하는 스피킹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그 때부터였는지, 저의 수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이 그룹 스피킹입니다. 교사는 각 그룹을 돌아다니며,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발음과 문법을 다듬어 주죠.
신기하게도 틀린 발음이나 문법, 적절하지 않은 단어 선택을 했던 아이들은, 친구들과 5~10분간 스피킹 활동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쳐지고 다듬어집니다. 편안한 환경에서, 자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인풋이 효과적으로 체득돼 아웃풋으로 연결된 것이죠. 실력이 조금 높은 아이는, 낮은 아이의 이해를 돕고자 어휘와 표현을 조정해 발화합니다. 이렇게 조정하는 행위 자체가 실력 향상을 위한 훈련이 되는 거고요. (가르치다보니 내 실력이 늘더라,는 이야기 아시죠?)
이런 저런 이유로 스피킹 활동을 포기하지 마세요. 유학이나 영어 원어민이 아니어도 됩니다. 편안한 환경에서, 덜 낯선(?) 사람들과, 익숙한 내용을 영어로 이야기하세요. 관건은 많이, 그리고 자주 대화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실력은 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