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에몬테 Piemonte ①
'두 개의 귀도'
이탈리아 서북부 피에몬테 주에는 두 개의 유명한 '귀도' 레스토랑이 있다. 이름도 비슷한데, 심지어 둘 다 미슐랭 별 하나를 가지고 있어 처음에는 헷갈린다. 한 곳은 작가 체사레 파베세의 고향인 산토 스테파노 벨보에 위치한 고급 리조트 안의 식당(Guido da Costiglione, 귀도 다 코스틸리오네)이다. 다른 쪽은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사생아인 미라피오레 백작이 세운 폰타나프레다 와이너리 안에 있다(Guidoristorante, 귀도 리스토란테). 두 곳 모두 시그니처 요리가 동일하고, 사실 모든 손님들이 그걸 찾아서 여기로 온다. 아뇰로띠 알 플린(Agnolotti al plin)이라는, 피에몬테 전통의 만두 파스타다.
레스토랑 이름이 똑같은 이유는 두 식당 주방장의 어머니가 같은 분이어서다. '아뇰로띠의 여왕'으로 불린 리디아 알치아티(Lidia Alciati) 여사다. 여사와 그의 남편 귀도가 고향마을 코스틸리오네 다스티에 식당을 연 게 1961년이다. 원래는 남편이 주방을 맡을 요량이어서 식당 이름도 '귀도'로 지었으나 여사님의 아뇰로띠가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손수 빚은 반죽피에 정성스럽게 속재료를 넣고, 가장 정통의 방식에 입각해 대접했다. 삽시간에 소문이 나 인근 마을의 이름난 와어너리 오너들이 차를 몰고 와 점심을 먹고 가더니, 몇 년 뒤에는 토리노와 알바, 알레산드리아 등 피에몬테 전역에 유명세가 퍼졌고, 곧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다. 테이블 몇 개만 놓인, 주방에는 볕도 들지 않는 좁디좁은 식당은 그렇게 미슐랭 별 두 개를 얻으며 '살아있는 전설'로 등극했다.
유명세에 비해 식당이 너무 작으니 어느 날 한 투자자가 큰 곳으로 좀 옮기자고 이야기를 건넨 모양이다. 그래서 과거 수도원 건물을 개조해 랑게 언덕 위에 화려하고도 우아하게 쌓아 올린 산 마우리치오 리조트(san maurizio relais)로 이전해 이름을 '귀도 다 코스틸리오레'로 바꾼다. 여사는 남편과 사별 후 아들 셋을 홀로 키워낸 고향 땅 옛 식당에도 애착을 느꼈지만, 햇볕이 드는 주방이 생기고 번듯한 조리기구들이 배치된 새 식당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장소를 옮긴 후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아뇰로띠 순례객은 더 늘었다. 그러던 알치아티 여사도 2010년에 돌아가셨다.
그녀의 레스토랑은 막내아들 안드레아가 이어받았다가, 현재는 셰프가 바뀌었다. 여사의 제자였던 루카 체킨이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데 알치아티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혈육으로 이어진 전통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된다. 차남 우고 알치아티가 폰타나프레다 와이너리 내에 리스토란테 귀도를 열었다. 당연히 이곳도 주력을 아뇰로띠로 내세우고 있고, 어머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리스토란테 귀도에서 아뇰로띠를 먹어봤다. 아뇰로띠는 이탈리아식 만두요리인 라비올리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요리다. 우선 전통방식에 의할 때 소고기, 돼지고기, 토끼고기라는 세 가지 육류가 들어간다. 야채는 시금치 정도만 살짝 섞는다. 사실상 필링은 고기가 전부다. 그걸 얇게 저민 생면 반죽피에 싸고 아주 작은 모양으로 굴려낸다. 이때 손톱으로 꼬집듯이 작게 떼어낸다고 해서 '플린'(plin)이라는 별칭이 덧붙여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뇰료띠는 버터에 살짝 굴리거나, 수고 다로스토(Sugo d'Arrosto)라고 해서 남은 부속고기들도 만들어낸 소스와 버무려 제공된다. 아예 옛날에는 아무런 소스 없이 면포에 싸서 그냥 먹었다고 하는데(이걸 현지에선 al napkin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귀도 레스토랑에서는 면포에 싼 것과 소스에 버무린 것 두 가지 버전 모두를 제공하면서 그 전통성을 지켜내고 있다.
처음 아뇰로띠를 먹은 건 토리노의 스칸나부에(Scannabue)에서였다. 이곳은 토리노 중앙역 포르타 누오바 인근의 대중식당으로, 이 도시 트라토리아의 상징과도 같은 미식 성지다.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가장 전통적인 피에몬테 대표 음식들을 모두 맛볼 수 있다. 현지의 술꾼들, 가벼운 주머니의 배낭여행객들 - 영국언론의 극찬으로 유명해진 곳이라 특히나 영국사람이 많다 -, 기차시간이 바쁜 출장객 등이 언제나 식당을 가득 매운다. 어쨌거나 여기서 만난 아뇰로띠는 처음엔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시커먼 소스에 굴려 나온 흑색 물만두를 연상케 했다. 뭔가 시큼하고 짜고 쓴 소스도, 고기만 들어 목 넘김이 부드럽지 못한 만두도 느낌이 그닥이었다. '유명하긴 한데 이걸 굳이?'라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바뀐 건 여행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서였다. 어느 날 이태원 골목 한켠에서 육향이 좋은 고기만두를 하나 집어 먹는데, 갑자기 아뇰로띠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아, 그때 나는 깨닫고야 말았다. '피에몬테의 아뇰로띠야말로 이 세상 모든 고기만두의 최상위에 위치한 '근본'이라는 것을.
사실 아뇰로띠는 첫 입에 잘 넘어가는 요리는 아니다. 세 가지 육류를 갈아서 뭉치기에 엄청나게 농밀한 육향이 끈적거리는 식감과 함께 올라오고, 아로스토 소스 또한 국간장을 살짝 태운 풍미 비슷한 것이 느껴질 정도로 무척이나 '찐득하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육수와 함께 술술 넘기면서 먹는 볼로냐의 토르텔리니 인 브로도나 넓직하게 빚어 세이지와 버터 조합의 윤택한 소스와 곁들여먹는 토스카나식 라비올리에 비해 고졸한 질감과 짜릿하게 집중된 맛 등이 특징이다. 그래서 아뇰로띠는 반드시 와인과 함께 즐겨야 한다. 그것도 네비올로 품종의 묵직하면서도 벨벳 같은, 피에몬테산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와 매칭하면 가히 환상이다.
지금은 피에몬테를 갈 때마다 아뇰로티를 찾는다. 토리노 레지오 오페라하우스의 스케줄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괜히 공연 하나를 예매해 버린다. 일단 도착만 하면 아뇰로띠를 먹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토리노와 피에몬테 전역에서 제각기 개성을 자랑하는 다양한 형태의 아뇰로티를 만날 수 있다. 바르바레스코 마을의 고요한 시골식당 안티카 토레가 만드는 소박하고 전통적인 것도, 미슐랭 스리스타에 빛나는 알바의 피아자 두오모에서 엔리코 크립파 셰프 버전의 지극히 세련된 아뇰로티도 모두 다 만족스럽다. 윤택하면서도 느리고 푸근한, 참으로 윤후(潤厚)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피에몬테.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음식을 꼽으라면 나는 자신 있게 '아뇰로띠 알 플린'이라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