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바르디아 Lombardia
'미식은 가족(Famiglia)이다'
밀집 도시, 중심가, 분주한 열광, 뜨거운 미디어, 마케팅, 최고급 와인, 인스타그램, 셀럽 등등의 단어는 뉴욕과 파리, 도쿄와 서울을 관통하는 파인 다이닝 세계의 공통분모지만, 놀랍게도 이탈리아와는 별반 관련이 없는 말들이다.
인구 6백 남짓의 산촌 마을에 미슐랭 2 스타 레스토랑이 버젓이 서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 최고의 해산물 식당은 곤돌라 뱃사공의 로맨틱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베네치아 본섬과는 꽤나 떨어진, 화물 컨테이너들이 연신 흙먼지를 휘날리며 지나가는 베네토 산업도로의 어느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올해 미슐랭 가이드에서 3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살펴봐도 우리에게 익숙한 대도시들 - 로마,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등 - 에 위치한 식당은 단 세 곳이며, 나머지는 전부 루바노, 세니갈리아, 브루니코, 마리나 델 칸토네 등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산간벽지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최고급 호텔에 머물며 대표적인 관광 랜드마크를 일주하고는 우아하게 명품 쇼핑도 즐기고 밤에는 번쩍이는 인테리어 속에서 황홀한 장식미가 투영된 파인 다이닝을 체험해 보겠다는 생각 내지 기대는, 적어도 이탈리아 내에서는 무의미하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롬바르디아 주의 최고 레스토랑 달 페스카토레(Dal Pescatore)도 그렇다. 이곳은 카네토 술롤리오(Caneto sull'Oglio)라는 인구 5천 남짓의 소도시에 있는데, 심지어 정확한 주소는 거기서도 좀 떨어진 루나테(Runate)라는 작은 마을이다. 밀라노에서 차를 몰면 아무도 없는 황량한 아스팔트 도로를 1시간 넘게 달린 후에, 갈대밭과 콘크리트 복개천 사이로 난 좁디좁은 도로를 몇십 분 더 가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다. 일단 인터넷이 안 터지는 곳이고, 마을 사람이라 봐야 건물 몇 채에 몇 십 명 정도가 흩어져 사는 것 같다. 주민들은 아마도 이 식당의 셰프인 산티니(Santini) 일가와 그 종업원들이 전부이지 싶다. 마치 한촌의 작은 성을 직접 통치하는 중세 시대의 영주를 알현하러 가는 기분이다.
실제로 산티니 가문 사람들은 영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품위 있고 겸손하며, 행동가짐 하나에도 부드러운 여유가 묻어난다. 유명 셰프들은 때에 따라서는 날이 잔뜩 서 있거나 지나치게 연극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도 제법 있는데, '하우스 오브 산티니'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의 인품과 철학이 반영된 것일까 웨이터들조차 가족적인 친절함과 사근사근함이 온몸에 배어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밀라노 아싸고(assago)에서 온 로렌초입니다." "아, 그 네슬레 건물이 있는?" "아하, 밀라노 박사시군요!" 이런 식으로 유쾌한 스몰토크를 이끌어가더니 갑자기 나를 이끌고 주방부터 먼저 들어가잔다. 아니, 셰프하고 인사하는 건 원래 코스식사가 다 끝나고 하는 거 아니었어? 여긴 아니다. 일단 셰프하고 살갑게 눈인사부터 나누는 게 이 엄청난 레스토랑의 정해진 프로토콜이다.
어머니 나디아 여사는 아직 출근 준비 중이시고, 키가 훤칠한 조반니 셰프와 먼저 인사를 나눴다. 눈매부터가 너무도 선한 이 남자. 고급 레스토랑이 주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금새 사르르 녹는다. "와, 조반니 셰프. 여기가 바로 미식의 신전(템피오)이군요?!" 너스레 섞인 찬사에도 우리의 조반니는 그저 소탈하기만 하다. "템피오는 이것보다 좀 더 대단해야 하고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하하"
식당은 1925년에 문을 열었으나, 처음부터 파인다이닝은 아니었다. 1974년 현재 주방장인 나디아 여사가 남편인 안토니오 산티니와 프랑스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두 사람은 파인 다이닝의 세계에 눈을 뜨고 그들의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정겹지만 격조 있고 아름다운 음식으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 나가다가 1996년에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게 되었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여기서 등급이 내려간 적이 없다. 식당 이름에 '페스카토레'(어부)가 붙은 건 선대 창업자가 원래 이 지역 하천에서 어업활동을 했던 어부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산티니 가문이 3대째 이어져 오며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위대한 레스토랑을 이끄는 주역들로 자리매김했다.
달 페스카토레의 요리는 이 세상 온갖 고급재료가 산해진미로 변해 등장한다. 가령 풍미 최고인 버터는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에서 온 것이고, 필레 미뇽 스테이크는 값비싼 프랑스 와인을 한껏 졸인 소스에 캐비어까지 올라간다.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는 볼로냐 북쪽의 솔리냐노에서 생산된 최고급품으로, 24개월 숙성품만 사용한다. 48개월짜리 고숙성은 너무 과시적인 느낌이 나고, 12개월 이하는 풍미가 밋밋해 완벽한 밸런스의 치즈를 찾아가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이렇듯 더함도 덜함도 없는 '완벽한 균형감각'이야말로 이 식당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화려한 식재료의 향연 속에도 그들만의 지역성은 결코 잃지 않아서, 뭉근한 호박을 주재료로 빚어낸 따뜻한 수프나 매일 손수 빚어내는 라비올리의 푸근함은 확실히 롬바르디아적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교 세련된 음식이 가정식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 차분하고 우아하게 용해되어 있다. 산티니 일가를 둘러싼 그 고요한 품위에서 우리는 이탈리아 가족 기업 특유의 신화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건 베로나의 알레그리니(Allegrini)나 바르바레스코의 가야(Gaya) 와이너리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가족 기업만이 자아낼 수 있는 어떤 '고요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일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나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어떤 압도적 전통성 혹은 신화적 우아함.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달 페스카토레에서 만날 수 있다.
‘찾고, 또 찾고, 또 찾아가야 할 곳' - Gambero Ros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