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외면할 수 있다면
건물 5층에는 직원을 위한 숙소가 있었는데 소도시에서 병원 직원을 충원하기 어려워서 전 병원에서 함께 온 직원들을 위한 일종의 복지 시설인 셈이었다.
젊은 청춘이 모여 있어서 그들만의 이야기도 건너 건너 오가기도 했다. 직원 숙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계없이 병원 원무과 직원과 함께 야간 응급진료의 지원 근무를 하기도 했다. 지원 근무는 담당의사가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의 신상을 확인하고 함께 근무하는 직원의 안전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새벽에 도착한 부부의 상태는 의식 없이 심각했다
대기 중의 산소농도를 높이기 위해 대기압보다 기압이 높은 산소캡슐 안에서 고농도의 산소를 흡입하여 치료하는 고압산소 치료기가 있었다. 고압산소 치료기는 혈중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빠르게 감소시켜 치료하는 의료기기였다.
근무하는 도시에는 유독 일산화탄소 중독환자가 많았다. 일산화탄소중독은 연탄가스 중독을 일컫는 말이다.
연탄가스 중독 환자의 치료는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쳐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일이 많았다.
연탄가스로 사망하는 일은 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초겨울에 빈번하게 발생했다. 병원은 농촌 소도시의 특성을 알고 있어서 가스중독과 농번기가 시작할 때 안전사고 발생을 대비하는 지침을 교육했다.
그지침대로 담당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고 간호사는 의사의 처방대로 사전준비를 진행했다.
의식이 없는 부부의 처치를 시작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고압산소의 챔버에 중년의 부부를 함께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 의사의 판단이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중년의 부부는 한날한시에 부부로서 같은 운명을 대면하고 있었다.
응급 상황에 우리의 판단은 노약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여성을 우선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지만 우리의 선택이 중년의 부인에게도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까 싶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부부는 함께 누워 있었고 간격은 그들이 잠들기 전과 같은 거리였다. 잠들기 전에 부부가 나눈 대화가 궁금했지만 그들은 선택할 수 없었다. 고압산소기는 작은 도시에 하나뿐이었다.
때로는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 속에 있다고 하여도 타인의 삶에 관여하여 결정을 번복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과정은 얼마나 정당한 일이었을까?
우리는 가끔 타인의 삶 속에서 결정의 정당성을 앞세워 낯선 모습으로 서 있을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