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성경 이야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가 약 60억 정도라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우리가 알고 지내면서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유명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자신의 이너서클 안에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의 경우에도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과 교회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실제로 연락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얼굴이나 이름을 안다고 아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얼굴이나 이름을 안다고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이 전부 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알고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통해서 의미가 있는 관계라야 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통해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관계에는 보이지 않은 어떤 정이나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 있는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수학에서는 함수(function)라는 용어입니다. 함수는 수많은 것 중에서 어떤 순서나 규칙을 통해서 의미가 있는 것을 연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 들과 관계가 있다고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관계’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관계’ 속에서 좀 더 범위를 좁혀서 나와 반응이 있는 사람으로 좁히면 그건 ‘대응’ 관계라고 보면 됩니다. 대응 관계에서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람이 나와 ‘함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학교에 있는 전교생이 나와 학교가 같고 학년이 같을 경우 그것은 같은 학교와 학년이란 ‘관계’입니다. 좀 더 좁혀 같은 반에 있는 친구들은 나와 ‘대응’ 관계 속에 있습니다. 같은 반에서 나와 함수 관계에 있는 친구는 나와 짝꿍이나 몇 명의 친구만이 ‘함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1대 1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에서 함수(function)는 보통 “f(x)”라고 표현합니다. 그동안 수학 공부를 하면서 이 용어를 얼마나 많이 보고 노트에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의미를 이제 다시 한번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표시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나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함수 그 자체였습니다. ‘f(x)’에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f’는 하나님 아버지의 약자입니다. God Father를 ‘f’라고 간단히 표시하였습니다. 괄호 안의 ‘x’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독생자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X)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보통 X-mas라고 하는 것처럼 괄호 안의 x는 우리 죄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함수 ‘f(x)’는 우리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f)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으로 독생자(x)를 보내신 것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표현은 ‘관계’도 아니고 ‘대응’ 관계도 아닌 ‘함수’ 관계입니다. 우리와 일대일로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는 그런 관계입니다. 부모님이 훌륭한 신앙을 가졌다고 해도 그 신앙이 그의 자녀들에게 전수되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은 우리와 1:1로 관계를 맺고 계시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원칙으로 하십니다. 같은 반에 있는 친구는 대응 관계의 친구입니다. 짝꿍은 나의 옆자리에 앉은 함수 관계의 친구처럼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찾아오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아브라함을 부르셨지, 사라와 같이 부르셨다는 기록은 창세기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아니 나를 부르실 때 ‘OOO 하나님’이라고 부르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모세와도 그 후임자인 여호수아를 부르실 때도 개인적으로 만나주시고 일대일로 만나주셨습니다. 일대일로 만나야 진정한 함수관계가 성립합니다. 신약에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x)를 통해서 만나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성령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일대일로 대면해야 합니다. 누구에 의해 전도를 받아 믿음을 가졌던지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건 하나님과의 함수 관계가 아닙니다. 그건 아직까지 대응관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찾아오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수많은 별을 바라보면서 만나고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꾸고 만나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별도로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광야 같다고 하지만 그중에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야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일대일로 대면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조차도 40일 금식기도를 광야에서 하실 때 홀로 아버지인 하나님께 기도하셨을 정도입니다.
함수는 수 없이 많습니다. 함수로 그려지는 그래프는 x절편, y절편도 다르고 기울기도 다릅니다. 우리의 얼굴과 성격, 그리고 인격이 다르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표현하십니다. 우리가 평면에서 어떤 그래프를 그릴 지는 오직 예수님만 아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를 아름답게 표현하십니다. 어쩌면 인생은 우리에게 주신 그 함수, 방정식을 푸는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그리는 그래프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함수, 방정식을 푸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성격이 어떤지, 외모는 어떤지, 그리고 마음의 상태는 어떤지 그건 오직 x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리는 그래프는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래프를 그리다가 지우다가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마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주신 함수,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풀면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삶의 해, 함수의 해를 푸는 전 과정인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x절편을 구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분은 y절편을 구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기울기까지 구한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살면서 주님과 나의 함수를 생각하면서 그 그래프를 오늘도 조금이나마 그리고 있으니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그 함수의 그래프를 그리기까지 우리의 생명을 세상에서 거두시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 개인을 통해서 그리는 한 선은 하나님이 그리시는 큰 그림의 아주, 아주 극히 적은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그 부분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기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와 일대일로 만나시고 그 관계 가운데서 우리 삶을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답고 은혜 같은 함수를 풀고 계신 우리는 축복의 함수입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