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타임, 이제는 잠시 멈춤_2
간혹 한 번쯤 간이역에 내려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미로에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미로는 길이 아니다.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고,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에 대해 너무 오래 의심하지는 말자.
잘 가던 기차마저 놓쳐 버릴지 모른다.
- 이주은의《그림에, 마음을 놓다》중에서 –
당신은 시골의 간이역 같은 곳을 가 본 적이 있어? 난 20대 시절에 본의 아니게 여러 번 가 보곤 했지. 그때에 본 간이역과 세월이 지난 후의 간이역의 느낌은 다르게 다가오던데. 어쩌다 TV에서나 영화에서 보이는 한적한 시골의 기차역의 본 기억이 낯설지가 않고 친숙한 것 있지. 거기에는 첫사랑의 모습과 추억이 담겨있을 것 같기도 해.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기다리는 모습이라든가 무작정 약속을 하고 기다리다 못해 막차를 타고 떠나는 등의 모습, 그리고 홀로 서서 열차의 수신호를 담당하는 역무원 모습이 떠오르건 이건 아마도 드라마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네.
나의 기억 속의 간이역은 그런 모습은 없었던 것 같아. 군대 시절 양평에서 근무할 때 토요일 날이나 휴일에 소대원들을 데리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역에 가서 가끔씩 청소를 하러 나간 오후의 한적하고 평온한 모습이나 늦은 밤 귀대를 하기 위해 내린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 한적한 역만 기억에 남아 있어.
여보, 나만 간이역에 대한 추억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와 같이 살아가는 40대들의 기억 속에는 어떤 모습으로 ‘간이역’을 기억하고 있을까? 정말로 아련한 첫사랑, 20대의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그중에 있으려나 모르겠네. 우연히 강연에 참석했다가 ‘간이역’이라는 단어를 다시 듣게 되었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기차가 다니는 간이역처럼 ‘삶의 간이역’을 한 두 개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아온 40대들에게는 ‘삶의 간이역’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던데. 그래서 간이역에 대해서 좀 알아봤어. ‘간이역’은 일반역과는 다른, 말 그대로 간이로 만들어진 역을 말해. 늘 일정하게 기차가 서는 곳이 아닌 불규칙한 일정에 맞게 서고 시설도 주정차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곳이야. 간이역에는 커다란 대합실도 깨끗한 화장실과 휴게실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야. 단지 승객이 출입하는 개찰구와 의자 몇 개 그리고 간단한 자동 커피 자판기가 있을 정도이지. 역무원도 1~2명이 근무하는 작은 사무실이 전부이지.
여보, 이런 곳은 한 번 가보면 느낄 수 있지. 붐비는 일반 기차역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이런 곳은 번잡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야. 한적하고 여유가 있어 마치 시간이 정지되어 흐르지 않는 곳처럼 느껴지는 곳이지. 이런 곳이라면 일상에서 지쳤을 때 찾아가서 좋아하는 음악과 자판기의 커피 한 잔, 그리고 필요하다면 읽던 책 한 권만 있으면 충분히 쉬고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TV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간이역의 벤치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런 한가함, 여유가 좋던데. 한여름이나 한 겨울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골라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음악 속으로 몰두하게 되고 거기서 마음 놓고 드는 음악을 따라 허밍이나 흥얼거리는 재미도 있지. 손에는 든 자판기 커피는 유명 브랜드의 비싼 커피보다 더 맛있게 내 입안에 퍼져 들지. 마치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교내 100원짜리 자판기의 커피 맛을 생각나게 해서 그때로 다시금 나를 돌아가게 만드는 묘한 힘도 있는 것 같아.
이런 곳에서 가만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이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 같아. 정말 멍 때리기 좋은 장소인 것 같아. 관광지처럼 멋있는 풍광이나 볼거리는 없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적하고 단순한 멋이 있는 것 같아. 끝없이 두 줄로 이어진 철길을 보고 있노라면 복잡했던 머릿속을 어느 사이에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주는 것은 간이역이 주는 덤이야.
이런 간이역은 사느라 애쓰고 생활에 지친 우리들에게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느낌이 들곤 하지. 이곳에 있으면 나의 몸과 마음 중 어딘가에 나와 있는 충전 배터리에 코드를 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오직 나만을 들여다볼 수 있고 다른 것에 신경을 쓰던 삶의 스위치를 ‘Off’시키는 시간이라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드는 것 같아. 그러다 가끔씩 지나가는 화물차를 바라보면 먹먹한 마음이 들어. 저 열차도 자신의 등에 짐을 싣고 오늘도 목적지로 가고 있겠지? 얼마나 같은 길을 오고 갔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 어느새 내가 화물 열차가 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저 열차도 나처럼 짐을 내려놓고 한적한 곳에서 짐을 풀고 가쁜 숨을 가다듬고 쉬고 싶겠지?
이처럼 간이역을 찾아가는 일상을 가끔씩 이벤트로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일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농땡이를 피우고 싶을 때, 가끔씩 찾아보곤 해. 물론 그곳이 실제로 ‘간이역’은 아닐 수도 있어. 간이역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곳, 아는 사람들이 마주칠 공간이 없는 곳이면 돼. 잠깐 멈춰 설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해. 아니면 처음 찾아간 곳이 자신의 간이역이 될 수 있는 것 같아. 가끔씩은 신경을 끄고 갈 수 있는 곳은 몇 군데가 있는지, 삶의 곳곳에 마련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내가 아는 회사 선배님은 일주일 동안 일에 지치고 힘들 때 토요일 새벽에 자신의 간이역을 찾아간다고 해. 그 선배가 가는 곳은 동해안의 새벽 바닷가야. 토요일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일찍 일어나 차를 몰고서 동해까지 혼자서 가곤 하지. 차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서 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동해에 도착해서는 해가 뜨는 장면을 바닷가에서 잠시 쳐다보고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 모든 피로가 풀린다고 해.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피고 스트레스를 연기 속으로 날려 보낸다고 해. 가까운 음식점에서 국밥이나 해장국을 한 그릇 먹고 바닷가를 조용히 거닐고 다시 돌아온다고 하네. 약 2-3시간의 걸리는 운전이 전혀 피곤하지 않고, 집에 와서는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같이 보내면 가족들과의 주말 일정을 크게 영향을 주지 않더라고 하네. 토요일 새벽시간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간이역’을 찾아가는 리추얼로 삼고 있지.
여보, 간이역은 자신만 알고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있더라도 그 사람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 혼자 있는 홀로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지. 그곳에서는 따스한 햇볕에 앉아 잠시 쏟아지는 졸음을 즐길 수 있는 곳이고, 그곳에서 자신을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면 될 것 같아. 내가 모르고 지나친 곳, 내가 스스로 소홀히 대했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면서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거려주고 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감정의 ‘해우소’가 아닐까 해.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이사장님이신 고도원님은 ‘기도실’이 자신의 간이역 중의 하나라고 하시더라고. 거기서 신께 기도하고 조용히 말씀도 보시고 명상도 하시고 글도 쓰면은 재충전이 된다고 하지. 유명하신 스님들이 조용한 암자에서 칩거하면서 수행을 하시는 것처럼 말이야. 아마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직장인들도 이런 곳을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을 마련해 두면 삶이 고요해지고 정리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40대에는 삶의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간이역’을 최소한 하나씩은 마련해야 할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상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오랫동안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하면 현업을 하면서도 잠시 떠날 수 있는 어떤 장소를 우리는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어. 왜냐하면 자꾸 여행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잖아.
여보,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에도 이런 간이역 같은 기능이 있어. 휴대폰에는 소리 제거 진동모드도 있지만 ‘비행기 탑승’ 모드라는 재미난 기능이 있어. 비행기를 탔을 때 쓰는 기능이기도 하지만 강제로 간이역 모드로 들어가고 싶으면 핸드폰을 비행기를 태워 보내는 거지. 비행기 탑승 모드를 실행시키면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전혀 울리지 않지. 난 가끔씩 나 혼자 있고 싶으면 휴대폰을 비행기를 태워 보내거든. 그러면 나도 비행기를 탄 것처럼 비행기 모드에서 오로지 나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야. 휴대폰도 쉬고 나도 쉬고 말이야.
40대에 우리 삶의 여러 곳곳에 ‘간이역’을 만들어야 해. 집 근처에 한 두 곳, 조용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커피숍도 괜찮고 두세 시간의 거리의 자연 풍광이 좋은 곳이면 더 좋지. 나 혼자 가만히 있으면 힐링도 되고 모든 곳을 잊을 수 있는 곳이면 좋아. 또는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면 더욱 좋다. 이런 간이역을 삶의 곳곳에 마련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자주 오프 모드로, Re-Charging 하는 곳으로 가면 우리 삶을 재충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더 늦기 전에 우리 삶에 간이역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자. 그리고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 때리는 시간’과 ‘행복을 찾는 시간’을 갖는 거지. 거기에서 나만 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그곳에서 진정으로 나를 만나면 행복한 간이역이 될 거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