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를 위해 다르게 살기로 했다_11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는 '멈춤'이 없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선택과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멈춰야 한다. 그 멈춤의 시간 동안 우리는
자기 자신은 물론 동료나 고객을
돌아볼 수 있고, 주변의 도전과
기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 낸스 길마틴의《당신, 잠시 멈춰도 괜찮아》중에서 –
언젠가는 한 번 정도는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어. 지금까지 살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삶에 때로는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어느새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어. 왜 사는지 진정으로 알고자 하거나 혹은 공부를 하기 전에 왜 하는지 알고자 할 때, 아니면 지금까지 사는 것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 곧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살면서 배웠던 것 같아. 계속되는 직장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왜 하는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
여보,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고 이제는 그것을 할 시간이 된 것 같아. 나는 이런 시간을 ‘갭이어(Gap Year)’라고 부르고 싶어. 원래 ‘갭 이어’는 서양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약 12년간의 학업생활을 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자기의 재능이나 취미가 무엇인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해. 특히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학에 입학시키기 전에 1년간의 시간을 주면서 엄청난 대학공부를 하기 전에 세상을 둘러보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준다고 하더라고. 언젠가 책에서 읽어서 나도 우리 두 녀석이 대학이나 군대 갔다 오면 1년간의 ‘갭이어’라는 시간을 주려고 조금씩 푼돈으로 적금도 들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그런 시간이 내게 필요한 것 같아. 또한 당신과 나에게 갭이어라는 시간이 주어 진다면 무엇을 할까? 물론 1년 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만약에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할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다. 얼마간은 못 잔 아침잠을 실컷 자고, 늦게 일어나서 아점을 먹고 얼마간의 빈둥빈둥 가장 게으른 생활을 할까? 혹은 읽고 싶은 책을 무한정 사서 아침부터 잘 때까지 책을 읽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그동안 못했던 문화생활을 할까나? 아니면 가고 싶었던 해외여행, 세계 여행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하지만 정작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막상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부터 할지 모르겠어. 아마도 이것이 생각 없이 쉼 없이 살아온 40대의 현실이 아닐까?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서 진짜 내 인생을 찾아야 하는데 막상 주어진다고 하니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막막한 것이라면 정작 주어진다고 해도 잘 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내가 직접 만들어가야 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나는 2년 전에 나름대로 갭이어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갭 위크(Gap Week)를 가져서 나름대로 내가 살아가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던 것 같아. 얼마 전부터 유행하던 ‘버킷 리스트’라는 말을 당신도 들어서 알 거야.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적어서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것 말이야. 유명한 배우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에서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병원에 입원한 후에 둘이서 하지 못했던 인생의 리스트를 하나씩 용기를 내어 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지. 많은 감동을 주었던 영화야. 그 영화 후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버킷리스트를 적기 시작했고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 그중 하나가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막상 산티아고가 스페인의 북서쪽 끝에 있다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800km를 걷는다는 것 외에는 들은 것이 없는데도 리스트 맨 위에 적어 놓았어. 그런데 어느 날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산티아고 여행을 간다고 하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지원서를 쓰고 선정되어서 두 달 후에 정말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스페인이라는 나라, 산티아고를 향해 걷게 되었지.
800km를 다 걸은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그 길이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여 자기만의 배낭을 메고 걸어가더라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걷는 모습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지. 나도 그 길을 걸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했어. 하루 8시간을 걸으면서 때로는 같이 간 형님 누나들과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때로는 나 혼자 걸으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정말로 필요한 시간들이었어. 그 가운데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나 스스로가 대답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
14박 15일간의 먼 이국 땅을 걸으면서 나름대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2주가 나를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거야. 정말로 소중한 갭 위크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 그 길을 걷지 않았다고 하면 나는 아직도 회사와 집과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고 있었을 거야. 거기서 생각의 변화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 시간은 나의 꿈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내 꿈의 나침반의 바늘이 자성을 띠어 제대로 진북,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아니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하나씩 캐어내고 다시금 다듬어보는 시간이었어.
여보,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다녀온 후에 내가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는 거야. 지금까지는 별로 웃지도 않고 늘 심각한 모습대로 살았고 스케줄에 맞추어 빡빡하게 살던 나를 이제는 조금씩 템포는 늦추고 FM대로 방식에서 AM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그동안 경직되어 실제로 어깨가 뭉친 것이고 뻣뻣했다고 하면 그 후로는 조금씩 스스로를 풀어놓은 것 같아. 아마 당신도 그것을 조금은 눈치를 챘을 거야. 얼어붙었던 나의 몸과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져서 자유스러워지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지. 이런 나의 삶의 변화에는 많은 것이 일어났어. 생각으로만 했던 것을 조금씩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지. 특히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내가 산티아고 여행이라는 갭 위크를 갖았기에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나를 찾기 시작하려는 마음이 움트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터닝포인트가 있어서 내게는 행운이었지. 거기에서 나보다 세상을 오래 사신 큰 형님, 누님 같은 분과 같은 길을 걸으면서 평범한 회사원과 반도체 엔지니어로서 너무나도 작은 분야에 내가 매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지. 거기에서 만난 분들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오셨고 그런 모습을 내가 볼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거기에는 인생을 오래 살아온 성실함이 있었고, 자신 안에서 남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려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으며 남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내가 쉽게 마음을 열고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것 같아.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를 계산할 필요가 없는 만남이었지. 좋은 풍경을 만나면 서로가 사진을 찍어주려는 마음, 몇 시간 동안 걷다가 카페를 만나서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한잔씩 사주는 소박한 인심, 그리고 상대방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걷는 마음 씀씀이가 어울려져 있는 여행이었지. 당신도 나와 함께 걸었으면 하는 좋은 길이었어.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을 내면으로 들여다보게 하면서 괜히 눈물이 조용히 흐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으며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얻을 수 있은 길이었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고 긴 길을 배낭을 메고 40여 일 동안 걷는지는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거기서는 아무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사람도 없이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책임을 지고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가는 길이기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더 끌어 모으는 것 같아. 어제 휴게소에서 만난 사람이 며칠 후에 다시 만나면 엄청 반갑고 다정하게 하는 것. 특히 거기서 한국 사람이라도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애틋한지. 자기가 걷고 싶은 거리만큼, 자신의 체력이나 컨디션이 허락하는 것만큼 걸어가면 되는 거야. 나중에 당신과 나, 그리고 두 아들과 같이 걷고 싶은 길이기도 하지.
여보, 내가 산티아고에서 갭이어와 같은 긴 시간은 아니지만 갭 위크를 가끔 만났으면 좋겠어. 이제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한 달이든지 또는 두세 달, 가능하면 일 년 정도라도 좋겠지. 이제는 삶에 지치고 단조롭고 무언가 다시금 나를 돌아볼 때가 있으면 갭 위크(Gap Week), 갭 먼쓰(Gap Month), 갭이어(Gap Year)를 가지려고 해. 물론 나에게도 허락하지만 당신에게도 필요한 것 같아. 남편과 아이들에게서 풀어주고 마음대로 한 여자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해. 또한 우리 두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군대를 갔다 와서 아니면 사회에 나가기 전에 그런 기회를 꼭 가지게 하고 생각하는 시간, 자신을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려고 있지. 물론 여기에 필요한 경비도 포함해서 말이야.
교수님들이나 목회자들이 일정기간 교수활동이나 사역 후 안식년을 갖는 것이 왜 필요한지 알겠어. 특히 인삼 같은 작물들을 재배하는 땅은 정기적으로 꼭 1년씩 휴지기를 갖잖아. 1년이란 시간을 통해 다음 농사를 위해서 땅에게 충분한 지력을 회복하라고 말이야. 인삼이나 농작물을 키우는 땅도 일정 기간 동안 휴경 기간을 허락하는 것도 다음에 더 좋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라고 하니 나에게도 앞으로 인생을 더욱 잘 살라는 의미에서 허락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지.
당신과 나의 안식년, 갭이어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을 세워 볼까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