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를 위해 다르게 살기로 했다_12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것도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요.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
- 무라카미 하루키의《댄스 댄스 댄스》중에서 –
다른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한 것 일거야.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마음일 거야. 물론 태어날 때부터 남들 앞에서 무엇을 보여 주는 것에 재주가 있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말이야. 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특히 나에게는 이런 일이 결코, 절대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일어난 것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어.
어느 날 겨울에 ‘춤’이란 단어가 나에게 다가왔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와 2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춤을 춘다거나 즐기는 것을 보지 못했을 거야. 물론 교회에서 율동이나 찬양을 할 때는 손동작에 그치는 정도인데 그것도 남을 따라 하는 수준이었는데 말이야. 힐링 춤 워크숍이라는 곳에 덜컥 겁도 없이 신청서를 내고 가게 되었지. 물론 신청서에는 ‘몸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라는 문구를 믿고 신청을 했던 거야. 거기에는 내 나이를 중심으로 연령이 다양한 분들이 모여 있었어. 한 번도 안면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춤을 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당신이 짐작을 해 봐. 땀이 머리와 등줄기를 적시는데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
처음부터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맞추어 리듬을 타는 사람들을 나는 한두 시간 정도는 곁눈질을 해가면서 다른 분들의 춤을 볼 수밖에 없었어. 다른 사람들은 원래부터 춤을 잘 추는 사람이던가 아니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 그런 시간이 반나절이 지나고 나니 나도 조금씩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내 몸을 맡기기 시작했어. 음악도 느리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빨라서 그 리듬에 춤을 춘다는 것이 매우 힘들기도 했지. 춤이라고 해서 어떤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일명 ‘막춤’이라고 하지. 그냥 음악에 맞추어 내 몸을 맡기는 것이야.
첫날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춤을 춘다는 것이,
놀랐습니다. 제 몸 안에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발견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리듬을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제 몸에게
여보, 내가 그동안 ‘춤’이라는 것에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어. 한편으로는 유교적인 습관, 아니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춤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춤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던지신 말이 있어. ‘바닷물에 발만 담그면 모른다. 온몸을 풍덩 던지라’는 말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영혼은 늘 대접을 받아온 것 같아. 마음과 영혼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육체, 몸이라는 것으로 말이야. 하지만 육체는 우리를 지탱하고 마음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었는데 늘 뒷전이었고 몸이 아프면 나중으로 미루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아.
춤을 추면서 나는 내 몸이 말하는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 같아. 나의 몸이 숨을 편안히 쉬기 시작했어. 단지 내가 몸을 조금씩 편안하게 이완시켜주고 좌우로, 앞뒤로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의 몸은 자신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 하~~ 악", " 하~~~ 악"
입으로 큰 숨을 들이마시고 평안하게 나의 몸에서 힘을 빼기 시작하자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몸의 곳곳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주고 주물러주는 것으로 인해 몸이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고. 그러자 몸이 지르지 못했던 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 같아. 어쩌면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내가 듣지 못했을지도 몰랐던 것 같아. 소리를 내기 시작한 몸을 부드럽게 만져주고 쓸어주고 토닥거리자 몸은 우리에게 한 마디씩 말을 걸어왔어
수줍은 처녀가 마음에 드는 총각한테 큰 용기를 내어 이름을 불러보지만 총각은 듣지 못합니다. 처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야. 다시 이름을 불러보고 "저기요" 하는 목소리를 내어 불러봅니다. 그때서야 자기 옆에 있는 처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나의 몸도 말을 걸어옵니다. 그건 작은 움직임이었어. 우리의 마음도 이상했지만 그 동작을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하니 나의 몸은 한 마디씩 말을 하더니 이제는 문장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의 이성이 계속해서 눈총을 주네. 다른 사람이 본다고, 왜 갑자기 그러냐고
그래도 말을 하기 시작한 나의 몸은 자신을 얽매고 있던 것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하더니 몸을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움직임이었고 "춤"이란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어.
아기가 처음 말하거나 말을 할 줄 알던 사람이 오랫 만에 말을 하면 더듬는 것처럼 나의 몸은 서투른, 더듬거리는 춤으로 하나씩 표현하고 있었어. 거기에 음악이 장단을 맞추니 잊어버렸던 신명 나는 언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어. 그러더니 음악도 귀에 와서 꽂히는 거야 나의 가장 끝부분인 꼬리뼈에서 시작해서 척추 하나하나가 연결되고 목으로 그리고 어깨로 그리고 팔꿈치를 통해 나의 손가락 마디마디로 연결되고 나의 다리뼈와 관절과 무릎을 통해 발가락 하나까지 연결되어 움직이기 시작했어. 나의 발바닥이 먼저 땅을 딛고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입맞춤을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하듯 나의 발바닥은 진한 입맞춤으로 몸을 움직이게 시작하더니 이제는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열정적으로 몸을 이끌고 다니는 거야
어느덧 나의 이마와 뒷덜미에는 몸이 움직인 춤이라는 언어에 의해 뜨거워져서 "땀"이라는 몸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어. 이건 정말로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몸의 반응에 놀랐어. 내가 운동도 아닌 춤을 추어 땀을 흘린다는 것이 그리고 숨이 가쁘다는 것이 놀랍기만 한 거야. 이제는 몸의 반응을 온전히 이해하고 방언 터지듯 터진 몸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어.
그 몸의 언어는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뜨겁게 그것도 빠르게 말하다가도 너무 천천히 내속에 담긴 것을 하나씩 쏟아내고 있는 사이 내 마음이 너무나도 놀라서 몸을 꼭 안아주고 있었지.
내 몸은 이제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영혼과 마음과 몸은 동등한 하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삼위일체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의 몸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에 놀랬고 본능이 말하는 춤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춤으로 말하기 시작했지. 오히려 말보다 춤이 더 잘 전달되기는 것 같아. 오직 마음이 담긴다면 춤이라는 언어가 더 직설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나고 관능적인 것 같아. 솔직하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여보 이제는 우리의 몸을 하나씩 들여다 보고 몸이 말하는 언어를 들어봐야 할 나이가 된 것 같아. 몸이 생각하게 하고 몸이 말하는 언어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같아. 몸이 흥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해야 마음과 영혼도 같이 춤을 추고 하나가 되면 마음과 영혼이 춤으로 다 표현할 수 있어. 몸이 춤을 추게 하고 몸이 마음도 춤추게 하고 영혼도 춤추게 하여 그 모든 것이 다 승화되어 한마디로 말을 하는 거야. 우리 몸은 살아있어서 우리 몸은 움직이고 싶어 우리 몸이 말하게 자유롭게 두어야 할 것 같아.
춤을 추면서 느낀 것은 무엇보다도 내 몸속에 리듬이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했어. 그 리듬이 살아나니 걸음에도 움직임에도 리듬을 넣으면 춤이 되는 것 같아. 그동안 춤은 특정인의 전유물이라고 재능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확실하게 무너졌어. 우리의 행동에 리듬을 넣고 거기에 온 몸을 맡기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춤이 되고 우리 인생이 춤을 추게 되는 거야.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이 소감으로 마지막 날에 한마디 하신 말이 가슴에 남는 거야.
"춤을 추다가 세상을 이별했으면 좋겠다. 춤을 추면서 세상을 떠나면 그것만큼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나이 많으신 어르신 분들이 회갑이나 잔치에서 장구소리가 나오면 어깨춤을 추면서 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거야. 그분들은 어렸을 때 들은 그 장단을 몸이 기억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고 춤을 출 수 있는 거라고. 이번에 배운 것이 어떤 분야의 춤을 배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이 함께 추는 막춤을 배운 것 같아. 이번에 배운 막춤은 아무렇게 추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고수들이 자신의 흥에 겨워 추는 것이 막춤이라는 사실이라는 거야.
여보, 내가 살면서 몸이 왜 피곤한 줄 이번에 알았던 것 같아. 우리 삶의 공간에서 공기도 춤을 추고 바람도 춤을 추고 나무와 꽃들도 춤을 추고 있었어. 나를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과 에너지들도 춤을 추고 있는데 심지어는 우리 몸속에 있는 마음도 춤을 추는데 우리 몸은 뻣뻣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었어. 나를 둘러싼 춤을 추는 모든 것들과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다 보니 내 몸이 힘든 거였어. 춤을 추는 분위기 속에 우리의 몸이 근육에 힘을 주고 흔들리지 않으려니 우리의 몸이 얼마나 고생하고 근육이 뭉치고 뼈가 상했겠어? 그러는 사이 나쁜 기운, 걱정. 스트레스, 고민, 불안 등이 우리 내장과 뼈와 몸에 차곡차곡 쌓이니 병으로 발전된다고 생각해. 신이 우리에게 춤을 알려준 것은 스스로 몸에 이런 것을 쌓지 말고 스스로 자가 치유기능을 주신 것이라 생각해. 나는 그것마저 삶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던 것 같아.
그 후로는 음악을 들으면 몸을 조금씩 들썩이는 버릇이 생겼어. 특히 차를 타고 어디를 갈 때 음악이 나오면 내 어깨춤이 신나게 흔들어주면 기분이 매우 좋아지는 것 같아. 이제는 들리는 음악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 그리고 내 주변에는 모든 것들이 다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심지어는 제 자리에 서 있는 나무나 꽃들도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춤을 추는 거 있지. 단지 그것을 느끼는 사람과 느끼지 못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라고.
여보 앞으로 우리는 더욱 춤을 추어야 해. 그러다 보면 내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춤을 추게 되지 않을까? 내 속에 있는 춤바람, 신바람으로 살아야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재미있을 거야.
정말로 춤바람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여보 이제 춤도 같이 추어보는 것은 어때.
샐 위 댄스? 위드 미!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