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수행이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찰이나 선원에 들어가 집중수행을 하게 되면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안 하게 되면서 온전히 수행에 집중할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해 템플 스테이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모든 책임감과 업무에 대한 부담감, 사람과의 관계로 인한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비록 짧은 기간만이라도 온전히 자신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연말 즈음해서 일주일간 단식을 한 적이 있다. 매일 이어지는 술자리도 괴로운데 연말이 다가오면서 횟수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져서 술자리를 피하기 위한 물리적인 방편으로 건강 핑계를 대며 단식을 한 적이 있다. 술자리와 사람 만나는 것을 한참 좋아할 때인데도 잠시 조용히 연말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결정했던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불러내어 술만 마시지 않으면 된다며 유혹을 하기도 했다. 피할 수 없는 모임에 한번 나가서 물을 마시며 술 취한 행동을 했던 우스운 기억이 떠오른다.
어제 걷기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를 함께 했다. 길 안내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걷기 마친 후 혼자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뒤풀이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안내자의 책임이라는 강박적 사고를 갖고 있나 보다. 술도 안 마시면서 술 마시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 편안한 사람들이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어울릴 수 있었다. 나중에는 마치 술을 마신 사람처럼 정신이 혼미해진다. 길벗 한 명은 수행의 참다움은 금주에 있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고마운 말씀이고 일면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술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도력을 지닌 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나 같은 초심자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다. 술 한잔에 취해 내 안의 어떤 미친놈이 요동을 칠 때도 있다. 그리고 술 마신 다음날 후회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력이 되지도 않은 사람이 도인 흉내를 내면 지옥고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수행자들은 자신이 마치 도인이 된 것처럼 막행막식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만 망치면 되는데 주변 사람까지 망치게 되니 지옥고는 최우선 예약을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멀리하는 것이 좋다.
길벗의 얘기를 들으며 계행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일반적으로 재가신도는 5계를 지키라는 수계를 받는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이다. 산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라는 의미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것은 보시행을 하라는 의미다. 삿된 음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가족처럼 아끼라는 의미다. 거짓말이나 이간질하지 말라는 것은 따뜻하고 화합을 위한 말과 바른말을 하라는 의미다. 불음주계는 술을 마시면 정신이 산만해지며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늘 바른 마음을 갖고 자신과 주변을 살피라는 말씀이다. 계율을 잘 지키면 일상이 편안하다. 만약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사실 때문에 무척 괴로울 것이다. 물건을 훔치거나 바르지 않은 음행을 저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율이 무너지면 평상심이 흔들리고, 이는 수행에 큰 장애가 된다. 수행 전에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걱정거리마저 정리해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수행한다고 좌선이나 경행을 하면서 마음이 온통 자신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로 인한 후회 또는 잡념으로 휩싸인다면 이는 결코 수행이 아니다. 계율을 지키며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것이 수행이 큰 도움이 된다.
수행을 세숫대야에 담긴 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닦아야 할 공부 방법으로 삼학(三學)을 얘기한다. 계율, 선정과 지혜의 증장이다. 계율은 세숫대야다. 세숫대야가 흔들리지 않고 굳건해야 물이 고요해진다. 고요해진 것이 바로 선정이다. 물이 고요해지면 자신의 얼굴을 비출 수 있다. 바로 지혜가 드러난다. 만약 계율을 지키기 않고 세숫대야를 발로 차거나 부수면 물이 고요해질 수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일이다. 계율은 모든 수행의 가장 기본이자 마지막이다. 요즘 길에서 마약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광고문구가 있다. “‘마약은 시작이 끝이다,”라는 문구다. 일단 시작을 하면 인생 끝난다는 의미다. 이 포스터를 수행에 비유한다면 “계율은 수행의 시작이자 끝이다,”라고 할 수 있다. 계율이 없으면 수행도 없고, 계율을 끝까지 지키면 수행은 끝에 다다를 수 있다.
한 잔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수행을 망친다. 물론 한잔 마신다고 마음의 많이 흐트러지거나 취하지는 않겠지만, 그 한 잔은 다음 한 잔을 불러들이고 결과적으로 시작이 끝이 된다. 댐의 조그만 틈이 댐을 무너지게 만든다. 안거 기간 동안 최소한 오계만은 지키고 살고 싶다. 남에게 크게 상처를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사람은 아니니 불살생계는 지킬 수 있다. 남의 물건을 크게 탐내는 사람은 아니니 불투도계도 지킬 수 있다. 잘못된 성행위를 할 일이 없으니 불사음계도 지키게 된다. 굳이 거짓말할 일도 별로 없고 남을 비난하는 말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니 불망어계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은 조금 경계할 필요가 있다. 불음주계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걷기 모임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사람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 스스로도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도 마음과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 별 문제는 없다. 다만 주변 사람들의 너그러운 관용과 이해와 협조가 필요할 뿐이다.
매주 진행하는 걷기 모임, 한 달에 2박 3일간 진행하는 해파랑길 걷기 모임 등으로 최소한 길벗들과 주 1회는 만난다. 수행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길벗의 이해도 매우 중요하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도 못하면서 술자리에 함께 있는 것은 고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문은 자발적인 고문이니 응당히 받아들이면 된다. 나의 마음은 그렇다. 하지만 함께 술 한잔 마시고 싶은 사람의 마음까지 배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답답할 뿐이다. 단지 그분들의 이해와 협조를 바랄 뿐이다. 내일 해파랑길을 2박 3일간 걷기 위해 출발한다. 걸을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걸은 후 즐거운 뒤풀이 시간도 늘 기대하고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저의 마음공부와 걷기 학교가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길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