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에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돌아보고 한 해 동안 바쁘게 살아오면서 산만해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싶어서 편안하게 쉴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우연히 후배의 얘기를 듣고 ‘담마코리아’라는 ‘고엥카 위파사나 명상센터’의 한국 센터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바로 신청을 하였고, 2018. 12. 23부터 2019. 1. 3까지 열흘간 코스를 다녀왔다. 총 12일의 기간이 소요된다. 도착하여 등록하는데 하루, 10일간의 코스, 그리고 마지막 날인 12일차에 아침 명상과 법문을 듣고 마치게 된다.
담마코리아는 아나빠나-위빠사나를 수행하는 곳이다. ‘들숨’과 ‘날숨’을 뜻하는 ‘아나빠나’를 수행하여 마음의 집중력을 높이고, ‘바르게 본다’는 의미를 지닌 ‘위파사나’를 수행하여 ‘무상’의 진리를 체득하며 고해(苦海)인 삶 속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불교 전통 수행법이다. 오랜 기간 경험을 통해 완성된 ‘구조화된 명상 수행법’이다. 이런 용어가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전 세계 명상센터에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이 수행 기간 동안에는 다른 어떤 수행법도 섞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기에 더욱 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제일 좋았던 것은 ‘거룩한 침묵 (noble silence)’이다. 도착 후 등록을 한 후부터 바로 침묵에 들어가서 총 10일 코스의 마지막 날 오후에 침묵이 해지된다. 침묵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수행처가 아주 시끄러운 시장터처럼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회에서의 습관으로 인해 수행처 내에서도 자신의 내면을 보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모습이 될 가능성도 높다.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마음의 움직임을 좀 더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내면을 볼 수 있었다.
하루에 약 12시간 정도 명상 수행을 하게 되므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명상시간에 ‘집중’과 ‘알아차림’의 대상인 ‘호흡’과 ‘몸의 감각’ 대신에 ‘망상’과 ‘잡념’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얼마나 평상시에 많은 잡념에 시달리고 살고 있었는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12시간 명상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도 힘든 고역이었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쑤시고, 명상을 방해하는 잡념과 망상을 하루에 12시간씩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순히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호흡’과’ 몸의 감각’에 집중만 하면 되는 일이 정말 힘든 일임을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침 4시에 기상해서 밤 9시 반경 취침에 들기까지 일정에 빈틈이 없다. 식사 후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몸을 풀기 위해 센터 내 건물 주위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걸었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번잡스러운 상황을 마주치는 것이 조금 불편해서 늘 30분 전에 일어나 먼저 샤워를 하고 새벽달과 별을 보고 걸었다. 점심 식사 후에도 개인실에 들어가지 않고 걸었고,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도 걸었다. 나중에는 같이 수행했던 분들 중 몇몇 분들이 따라서 걷기도 했다.
센터 내에서는 안경을 쓸 일이 없었다. 어떠한 시청각 자료도 없고, 명상실에서는 눈을 감고 수행을 하기에 어떤 것도 볼 일 자체가 없다. 고엥카 선생님의 육성이 담긴 수행 주제와 법문을 녹음된 자료를 통해서 듣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수행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경우에만 주어진 시간에 공인된 T.A. (Teacher’s Assistant)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다. T.A 역시 진행에 대한 어떠한 사족을 붙이지 않는다.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되고 녹음된 고엥카 선생님의 육성을 통하여 전 세계 센터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프로그램 시작 전과 후에 별다른 의식이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 의식 자체가 없는 것도 아주 단순하고 편했다.
고엥카 선생님은 ‘호흡’과 ‘몸의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담마라고 합니다. 마음속에 어떠한 담마가 일어나든 몸에서 감각이 일어납니다. 그때 몸에 일어난 감각은 마음의 번뇌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번뇌가 있음을 알고 몸에서 감각을 관찰합니다. 모든 감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감각과 관련된 번뇌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각을 관찰하고 감각이 영원하지 않음을 이해합니다. 이 분노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니짜 (무상)입니다. …… 이런저런 이유로 번뇌가 우리의 전 생애에 걸쳐 계속 일어납니다. …. 우리는 이러한 감각의 형태를 가진 아주 효과적인 무기를 발견했습니다. 적은 우리를 압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한 기술입니다. 슬픔은 외부 사건이 아니라 번뇌로 일어납니다. …. 원치 않는 외부 사건이 계속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강해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행복과 평화고 가득 찰 것입니다.”
고엥카 선생님은 어떤 종교나 교파를 주장하지도 않고, 새로운 교단을 만든 것도 아니다. 다만 부처님의 전통적인 수행법을 널리 알려 모든 존재들이 번뇌로부터 벗어나길 발원하시고, 그 방편으로 이 수행법을 전파하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엥카 선생님은 성공한 사업가였다. 편두통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유럽의 유명한 의사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 이후에 스승님을 만나 위파사나를 수행해서 극복하셨다고 한다. 사업가의 기질을 갖고 계셔서 그런지, 이 수행법을 인도에서 시작을 하여 미얀마, 호주, 미국, 태국, 독일 등 전 세계에 200여 개의 센터를 운영하며, 모든 센터에서 같은 방식으로 10일간의 코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이 수행법을 행복하고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는 ‘삶의 예술 (The Art of Living)’이라고 부르시고 전파하셨고, 지금도 그분의 법을 받으신 분과 수행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전파되고 있다.
그간 여러 수행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수행을 하기도 했었다. 수식관, 화두 참선, 사마타-위파사나, 정근 등을 수행하기도 했다. 삶의 힘든 시간에 그런 방법들이 도움이 되기도 했고, 어떤 시기에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었다. 가르침은 하나인데, 어리석음과 정진의 부족으로 제대로 수행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 배운 방식은 원리를 잘 가르쳐 주었고, 체계적인 수행 방법을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방황하고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다행스럽게 법문 CD를 구입해서 매일 조금씩 듣고 있다. 당분간 법문 CD를 들으며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10일간 코스에 참석한 수행자 들를 위해 헌신해 주신 모든 자원봉사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삶의 예술’을 많은 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담마코리아’를 설립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열흘간의 코스 기간 동안 수행을 지도해 주신 T.A.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이 수행법을 널리 펼치신 고엥카 선생님과 그분의 스승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