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한때 유행했던 유행가 가사 중 일부이다. 이 노래를 부르며 안무를 따라 춤추던 한 70대 노인이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그 노인은 이 노래에 미친 덕분에 이곳저곳 출연하며 즐거운 인생을 살고 계신다고 했다. 그 노인이 춤추는 모습을 보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몸동작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신을 놓아버려야만 나올 수 있는 동작이다. 즉 미쳐야지만 나올 수 있는 동작이다. 비록 몸이 말을 듣지는 않지만, 그분 스스로 자신의 춤이 가장 멋있고, 안무와 가깝다고 생각을 하며 노래에 미치고 춤에 미쳐 지내시는 것 같다. 그분은 노래와 춤에 미친 덕분에 나이를 잊고, 세상사를 잊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다.
삶을 살아가는 목적은 각각 다르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적인 목적이 있다. 바로 ‘행복’이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행복의 기준과 가치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행복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봉사일 수도 있고, 사업적인 성공일 수도 있고, 정치적인 권력일 수도 있고, 세상사의 모든 욕심을 떠나 참 자유인이 되기 위한 수행일 수도 있다. 비록 방편은 다르지만 그 길은 결국 각자의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산티아고 길의 상징인 가리비 뒷면에는 많은 줄무늬가 있다. 그 무늬는 가리비의 끝 부분에서 만난다. 순례길이 9개의 루트지만, 그 길은 모두 산티아고로 향하고 있다. 순례의 목적은 다르지만, 그 목적은 결국 자신과 가족, 그리고 모든 존재의 행복과 평온을 위한 순례이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으며 대성당에서 만난다.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묻힌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축복을 받아 행복에 이르게 된다.
32코스는 경기 둘레길 자료에 의하면 난이도가 ‘상’이다. 차로를 따라 걷다가 해발 388m인 마감산에 진입한다. 정상까지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중간에 쉬지 않고 꾸준히 오른다. 숨 가쁘게 올라가는 힘든 길이다. 정상 부근에서 잠시 쉬며 호흡을 고른다. 힘들었는지 앞이 깜깜해지며 약간 어지럽다. 평상시보다 조금 더 쉬며 몸을 추스른다. 회복한 후 조금 더 올라가니 바로 정상이다. 생각보다 싱겁게 정상에 도착했다. 몸이 정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걱정하며 기다려 준 길동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정상에 올라 사진도 찍고 웃으며 서로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그다음부터 여주 온천까지 가는 길은 밤새 걷고 싶은 치유의 숲길이다. 약간의 높낮이가 반복되는 구간을 마치 몸이 리듬을 타듯 편안하게 춤추며 걷는다. 이 길의 난이도가 ‘상’인 이유는 아마 마감산 정상에 도착하기까지 급경사인 오르막길 때문인 것 같다. 정상을 지나고 난 후 이어지는 길은 너무 환상적이다. 여주 온천으로 내려와서 강천면 사무소 부근의 식당에 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경기 둘레길 32코스를 마친 후 33코스 일부만 조금 더 걷고 마칠 계획이었다. 계획이 틀어진 것은 식당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시간이 오후 2시 20분경.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2시 50분 정도. 하지만 계획은 점심 식사 이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이들의 ‘걷기 본능’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이다. 이들은 철마처럼 계속해서 달리고 걷고 싶어 했다. 길의 끝이 어딘지 전혀 상관없이 계속 걷고 싶어 했다. 영화 ‘언스토퍼블 (unstoppable)'이 갑자기 연상된다. 정비 부주의로 인해 엄청난 굉음과 함께 통제 불능이 되어 버린 폭주 기차와 이를 막으려는 기관사의 투쟁을 그린 영화. 길동무들의 걷기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기관사는 리더인 나였지만, 어쩌면 나 역시 계속해서 걷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내세운 명분은 한 코스를 더 걸으면 35만 원이라는 렌터카 일 회 사용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알뜰한 살림꾼의 명분보다 더 나은 명분을 제시할 수 없었다. 렌터카와 신륵사에서 만나기로 약속된 시간은 오후 5시, 33코스 끝나는 신륵사까지 거리는 11.2km, 남은 시간은 2시간 10분 정도. 시속 5km 이상 계속해서 걸어야만 약속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히란야님과 꽃가루님이 앞장서서 걷기, 아니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에는 모터가 달린 듯, 그리고 그들의 신체는 인간의 몸이 아닌 마치 ‘걷기 기계’인 듯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도 않고, 걷는 자세 또한 단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 뒤를 다른 길동무들은 열심히 쫓아간다. 게다가 앞서 나가는 두 사람이나 따라가는 사람들이나 모두 웃고 있다. 미친 것이다. 그것도 좋아서 미친 것이다. 그들은 미쳐서 걷고 있고, 걸으며 행복해서 미치고, 길에 미쳐서 걷고 있다. 길이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는지 그들이 길을 미치게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은 그냥 미쳐서 행복하게 웃으며 길 위를 걷는 것이다. 정말로 제대로 미친 것이다.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 다만, 미친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 힘들어서 미칠 뿐이다. 70대 노인이 안무를 추며 미친 듯 웃고 즐거움에 미쳐서 살듯이, 이들은 길을 걸으며 미쳐서 걷고 있고, 미쳐서 웃고 있고, 미쳐서 행복해하고 있다. 정말로 미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이 신륵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5시 10분이다. 바로 이전에 난이도 ‘상’의 11.4km를 걷고 난 후 점심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나서 11.2km의 난이도 ‘중’ 코스를 2시간 10분 만에 걸었다. 이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모두 웃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이들은 미친 사람들이다. “미쳤어, 정말 미쳤어”라는 가사가 다시 떠오른다.
‘미치다’의 사전적 정의는 아마 ‘제정신을 잃고 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 일 것이다. 하지만 ‘미치다’라는 단어는 다른 큰 의미를 품고 있다. ‘열정적으로 한 가지 일에 몰입해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몰두와 몰입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 외의 어떤 일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로 큰 성과를 만들어낸다. 성과를 만들기 위해 몰입하는 것이 아니고, 좋아 미쳐서 몰입한 부산물로 하나의 성과물이 저절로 생산되는 것이다. 과정의 부산물이 결과물이지, 과정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삶 역시 마찬가지다. 과정을 열심히 살아온 결과물이 지금의 자신이지, 지금의 자신의 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다. 삶을 여정이라고 하는 이유는 과정의 중요성 때문이다. 삶은 정해진 목적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가다가 어느 순간 도착한 곳이 목적지가 된다. 따라서 과정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삶은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길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까지 가는 것이 아니고, 가다 보면 어느 곳에 도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착지점이 다시 출발점이 된다. 오늘 우리가 신륵사에 도착하듯. 정신없이 미친 듯 걷고, 미친 듯 웃고 미친 듯 떠들은 길동무들에게 미친 듯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