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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r 31. 2024

걷기란 삶의 동반자다 (방수영)

걷기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가? 자네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 대신에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만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면 그 일을 그만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그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일세. 왜냐하면 그 일은 삶의 필연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그 누구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리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네.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서 일을 해줄 수는 있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걸어줄 수는 없지.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이것일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야기보따리’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금보상 감독 소개로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금감독은 일반인들의 삶을 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산티아고를 다녀왔고 자신만의 삶을 잘 만들어 가고 있는 젊은 여성이라고 소개하며 그녀를 추천해 주었다. 산티아고 다녀온 얘기와 진행하고 있는 사업 내용을 금감독이 세 편으로 제작하여 업로드 한 동영상 덕분에 그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만날 수 있었다. 출판 전시회와 출판사 업무로 바쁜 그녀의 시간에 맞춰 사당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활동적인 젊은 사업가답게 바지와 남방을 입고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만나자마자 커피 주문을 하겠다며 무엇을 마실 것인지 물어봐서 순간 당황하기도 했다. 내가 대접할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덕분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온 국민의 1/2이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예비적 사회적 기업인 ㈜ ‘이분의 일 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사를 차려 볼까 고민하다 ‘사람 여행’이라는 주제를 찾게 되었고, 그 주제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 어르신 자서전 만들기 프로젝트였고, 그 일을 친구 세 명과 함께 시작했다. 2014년부터 그 사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어르신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어르신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변화시켜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그녀가 노인이 되었을 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원래 목표는 1년에 자서전 한 권 발간이었다. 50년간 이 일을 계속한다면 최소한 50권 이상의 자서전이 발간될 수 있고, 이런 노력이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그녀는 처음에는 봉사 활동으로 시작했는데, 서대문 50 플러스 센터와 업무 협약을 하면서 그간 사용했던 비용을 보상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입 모델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심이 통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자서전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그녀는 자서전 사업을 어르신들이나 청소년들과 함께 진행하면서 각자 자신의 삶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며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분들은 힘들다고 말씀하시며 울음을 쏟아내기도 한다. 자서전 작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같거나 비슷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다른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그분들을 보며 선택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중요성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녀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도 기로에서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여행은 바로 이런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에 자신을 던지고 매 순간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여행이다. 또한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만 한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는 생생한 교육의 장(場)이다.      


 삶 자체가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하며 실행에 옮기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어르신들을 위한 자서전 사업을 하면서, 또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선택의 필요성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중요성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녀는 소로의 말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선택과 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거나 안전 지역 내에서만 머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자신이 만들어 놓은 벽을 허물지 못하고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삶의 주인이 아닌 상황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하루하루 불안과 걱정 속에 힘들게 살아간다.       


 “뭔가 인생이 안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실이 엉킨 느낌이 들어서 매듭을 풀고 싶었지만 풀지도 못하고 지친 상태였다. 매듭 자체를 놓아버리면 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친구들이 여행을 권하기도 했고, 나 역시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울에서는 늘 같은 환경 속에서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 익숙한 일을 하며 살고 있어서 깊은 고민을 하고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지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방향을 찾고 싶었다. 또한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막상 산티아고 길을 떠나려 하니 불안하고 초조해지기도 했다. 연습 삼아 제주 올레길을 일주일간 걸으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산티아고는 마법 같은 길이다. 길을 걸으며 고민하고 매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길이다.”      


 그녀는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로 체력과 지구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체력과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산티아고 길을 즐기듯 걸을 수 있었다. 그런 여유 덕분에 길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 친구가 안내하는 파티에서 살사 댄스를 배우기도 했다. 한국에 노래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춤이 있다. 약속하지 않은 사람과 길을 걸으며 귀한 인연을 맺고, 잘 통하지 않는 외국어로 이야기하고 울고 웃는 그녀 자신이 너무 신기했다고 한다. 지금도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다섯 명의 친구들과는 서로 방문하기도 하며 인연을 잘 이어가고 있다.       


 원래 PCT (Pacific Crest Trail)를 가고 싶었지만, 그 당시 고교생 과외를 하고 있어서 수능 마치고 1월 초부터 32일간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기간과 경비를 고려할 때 PCT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PCT는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약 4,300km에 달하는 장거리 트레일로 6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한 길이다. 동남아 여행은 많이 다녔고 다른 곳을 여행하고 싶어 고민하고 있는 중에 친구가 추천해서 산티아고로 결정했다. 1월은 산티아고를 찾는 순례자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시기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훨씬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생쟝에 도착하기 전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으며 중간에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듯 과감하게 불확실한 세상에 자신을 던졌고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걸었다. 어느새 그녀는 그 여정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산티아고 길을 완주한 후에 그녀는 자신감이 생겼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짐도 무겁고 영어도 부족했고,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만 했다. 발도 내 발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일부러 장난을 치기도 하며 닥친 문제나 어려움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모든 상황을 온전히 혼자 결정하고 해결해야만 했다. 순례를 마치고 나니 ‘못할 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얽혀있던 실타래 매듭을 풀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녀온 후에 사업하면서 힘든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친구나 부모님에게 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민하는 순간에 울기도 했고, 동료들의 불안이 느껴져서 더 힘들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동료들에게 설득시켰다. 고맙게도 동료들은 나를 믿고 따라왔고, 그 덕분에 우리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길에서 배운 것을 일상생활 속에 적용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되어, 지금은 문제 자체도 재미있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녀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사람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사람 보는 눈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과 얘기하고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자신이 먼저 진실 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얻은 것이다. 이 점이 그녀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또한 선택의 과정보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선택은 경우에 따라 잘못 내릴 수도 있지만,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지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먼 길을 가다가 되돌아와서는 ‘그 길이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고 쿨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비록 잘못된 선택이라도 바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중요한 삶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와일드’가 생각났다. 삶의 나락에 떨어진 주인공은 우연히 여행사의 팸플릿을 통해 PCT를 알게 되었고 무작정 그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멀고 험한 여정을 마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동생과 통화를 하며 ‘비록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다시 시작하면 뭐든 할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하는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녀 역시 삶의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했고 방법도 몰랐지만,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실타래를 여유롭게 풀 수 있는 자신감과 에너지를 얻은 것이다. 그녀는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더욱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사업과 개인 취미 생활을 병행하며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평일에는 사업에 매진하고 주말에는 산에 가는, 세속적인 모습과 자연인의 양면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어르신은 나의 이런 태도를 ‘중용’이라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 마치 평균대 위에 서 있는 삶 같아서 불안하기도 하면서 재미있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 삶이 아닌 현실과 이상이 균형 잡힌, 자연인과 현대인의 균형을 잘 이루는 삶을 살고 싶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등산을 간다. 또한 과천에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어 함께 뛰면서 그들과 교류하고 사업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이런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다. 100여 명이 마라톤 단톡방에 들어와 있고, 지자체에서 경비를 지원받아 유니폼을 맞추기도 했다. 이런 마을 공동체 사업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싶다.”     


 그녀의 적극성은 자신만을 위한 삶에서 타인과 좋은 것을 나누려는 이타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보고 좋은 것은 나누며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어르신 자서전 사업을 하면서 관심을 청소년에게도 돌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청소년 자서전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하나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나가며 사회에 전반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화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그녀는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의 중요성을 체득했고, 진실성을 갖고 사람들과 사회활동을 하는 것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의미 있는 통찰은 앞으로 그녀가 어떤 사업을 진행하든 힘든 고비마다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걷기 자체가 삶의 동반자다. 동시에 길을 같이 걷는 사람들이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걷기’라는 동반자를 만나고, 동시에 길동무라는 동반자를 만난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인천에 약속이 있다고 서둘러 나갔다. 그런 활기찬 모습이 주위에 밝은 에너지를 전달해 준다. 그녀가 떠난 후 잠시 커피숍에 앉아서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았다.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주고 간 선물이다. 어쩌면 그녀에게 동반자는 걷기나 인생 동반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자서전 사업, 자서전 발간 후 발간 기념회, 그리고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로 유관 분야에서 계속 확장과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는 일 자체가 그녀의 진정한 동반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방수영’이란 사람이 일을 하고, 걷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는 것과 뛰고 걷는 것, 그리고 그녀가 하는 모든 것 그 자체가 바로 ‘방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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