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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Apr 07. 2024

걷기란 삶의 활력소다 (진용)

걷기란?

산에도 굴곡이 있듯 인생에도 수많은 부침이 있다. 내리막의 순간에도 그 고비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속 정진하니 이미 그 고비들은 극복되어 있었다. 멀리 있는 산도 도저히 못 올라갈 것 같아 보이지만, 열심히 오르고 보면 먼 길을 왔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자신을 극복했다는 큰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한비야)


 회사 업무가 저녁 6시에 마쳐서 6시 5분에 화정역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시간을 아껴 쓰고 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색 바지에 연한 베이지 칼라의 블라우스를 입고, 한쪽 팔에는 예쁜 팔찌와 다른 팔에는 스마트 시계를 찬 모습이 세련된 직장인 모습이다. 몇 년 전 걷기 동호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말이 별로 없었고, 표정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닉네임을 물으니 ‘진용’이라고 했다. ‘진짜 용기를 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정했다고 했다. 그녀에게 걷기 동호회에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용기를 낸 사람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오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의사 표현도 잘하고, 표정도 밝아졌으며, 웃음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사별했고, 그 이후 힘든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걷기에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를 우연한 기회에 들어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녀는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 남편의 얘기를 물으니 약간 먹먹한 모습으로 차분하게 얘기를 풀어나갔다.


 “남편이 뇌종양으로 3년 투병하다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내가 걱정할까 봐 얘기도 안 하고 혼자 병원에 갔었다. 술을 좋아했던 남편이어서 간이 안 좋을까 걱정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이다. 뇌종양으로 머리가 마비되어 의사소통도 잘 안 되고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간병을 하며 차라리 다른 병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나중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는데, 거기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분들을 보며 나 자신도 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남편 간병하느라 아이에게 잘 대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남편 간병을 하던 중 우연히 TV를 봤는데, 어느 할머니가 걷는 모습이 방영되는 것을 보며 남편과 이별한 후에는 나도 저 할머니처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남편과 이별한 후 1년 정도는 정신없이 지냈다. 아이와 살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좀 더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야간에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간 살아온 삶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고 한다. 평범한 전업 주부로서 살림하고, 남편과 아이 돌보고, 남편에게 의지하고, 아들에게 집착하는 삶을 살아왔다. 남편이 병고를 치르는 동안 누구에게도 기대지 말고 홀로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은 잘 내린 결정이었다고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얘기했다. 힘든 기간 동안 친구들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며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 후 6개월 정도 지난 후 걷기 시작했다. 그 할머니 생각도 났고, 자신을 찾고 싶어서 걷기를 결정했다. 걷기 동호회를 검색하다가 ‘나를 찾아 길 떠나는 도보여행 (나길도)’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찾고 싶었는데, 그 동호회 이름이 마음에 끌려 가입했다고 한다.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걷기 동호회에 참석하며 꾸준히 걸었다. 걷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하루에 12 ~ 16km 정도 걸으면 발바닥이 많이 아팠고 힘들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이 단순화되며 마음은 치유되고 밝은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가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녀온 남해 3일 걷기는 그녀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날 이후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지방의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를 걷는 정기 도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그 당시 그녀는 그 설렘으로 한 달을 견뎌내며 회사 업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  취미가 전혀 없었던 그녀는 걷기가 자신을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취미가 없었다. 남편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집에 있을 때 음악과 영화를 좋아했다. 나도 뭔가 취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걸으며 신체적인 건강을 다지고, 독서를 통해 내면의 건강을 다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걸으며 외부 세상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내 안에 호기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 위안을 받기도 했다. 요즘은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힘들게 걸으며 해소한다. 걸으면 직장 내의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힘이 생기고, 걸으면서 자신이 많이 채워진 느낌을 받는다. 특히 힘든 언덕을 빨리 올라간 후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일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그녀는 결혼 후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사별 후 버텨낸 어려운 시간은 그녀에게 홀로서기를 위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그런 계기를 통해서, 남편이 곁에 있든 없든 홀로서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용기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닉네임인 ‘진짜 용기’는 그녀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주저하며 사느냐, 아니면 용기 내어 시도하느냐의 차이다. 용기를 내고 살다 보면 자신 안에 잠재되어있던 강한 힘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스스로 한계에 도전하며 한계의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힘든 만큼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에게 의지하며 살아왔기에 자신의 삶은 없었다고 하며 과거의 자신을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지금 우물을 뛰어넘어 자신의 한계를 더욱 확장하고 깊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하는 중에 ‘성장’, ‘성숙’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남편의 사별 이전에는 주체적으로 살아 본 적이 없었고 남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왔다. 이제 자신을 찾고 싶다는 그녀는 자신을 알게 되면서 타인과 비교하거나 시기, 질투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가진 것 안에서 즐기고 누리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아래나 위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고 인정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녀는 마음의 풍요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 밑면의 모습을 알고 싶어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세상 구경을 더 많이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걷기는 그런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자신을 위해 또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삶의 수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의 주원인은 타인과 비교하거나 삶의 초점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간병과 사별 후 홀로서기를 하면서 지냈던 7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해서 많은 성장과 성숙을 거듭해 왔을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장단점을 모두 수용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그런 시각의 변화는 같은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 인식의 변화는 설사 자신의 주변 상황이 변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로 같은 세상이 다른 세상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자신을 바꾸면 이미 세상이 다르게 변해져 있다.”라는 어느 현자의 말씀은 아주 정확한 말씀이다.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는 삶의 초점을 현재에 맞추고 싶다는 의미 있는 얘기다. 삶의 과정에서 체득한 통찰의 힘은 대단히 크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금 얻은 통찰의 힘으로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걷기를 통해서 활력과 용기를 얻을 수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녀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내면이 채워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앞으로의 삶을 잘 극복하며 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배움과 탐구의 욕구가 강해진 것도 큰 변화이다.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 졌다.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면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고 있다. 혼자 걷는 것도 좋고, 무리 속에서 홀로 걷는 즐거움도 느끼며 행복한 걸음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많이 편안해졌다.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그렇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내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비록 부족하고 내세울 것도 없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에는 내성적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니, 나도 사랑을 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힘든 사람들을 보면 걷기를 추천한다. 내가 극복한 경험도 얘기해 주면서 함께 걷자고 얘기도 하고, 동호회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을 걸으며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걷기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그녀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걷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걷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 군이 연결된 외씨버선 길과 남해가 인상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해남 미황사 템플 스테이 하면서 걸었던 달마산 달마 고도 길이 한국의 산티아고 길이라고 해서 더 정감이 가고 좋았다고 한다. 이 길은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6시간 이상 걷는 한적한 길이다. 정상에 있는 도솔암에서 바라본 바닷가 모습과 풍광은 가끔 TV에서도 방영될 만큼 그 풍광이 뛰어나다. 미황사에서 해남까지 약 8시간 이상 걸리는 길도 혼자 걸으려고 했는데, 템플 스테이 오신 어느 신자가 혼자 가는 것이 걱정이 된다면 동행해 주셨던 고마운 기억도 떠오른다. 길을 걸으며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서 하늘에 떠도는 구름도 보고, 신발을 벗고 걷기도 하며 홀가분한 발걸음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스님들의 유유자적한 걸음걸이가 연상된다. 안거가 끝난 후 뜬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중생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공부해 온 것을 점검하는 운수행각이 떠오른다. 그녀의 힘들었던 과거가 스님들의 안거와 오버랩이 되며, 그녀의 발걸음이 운수행각처럼 느껴진다.


 “걷기란 삶의 활력소다. 삶의 에너지원이다. 걸으면 치유가 되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내면의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걸으면 활력이 생기고 마음과 얼굴이 밝아진다. 걸음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겸해 소주 한잔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남편만 애도하며 사는 것이 과연 남편이 원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애도의 시간을 잘 보냈다고 한다. 애도는 일정 기간을 필요로 한다. 빨리 서둘러 덮으려 하거나, 평생 애도만 하며 살아가는 것 모두 현실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에 초점을 맞춰 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수행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수행은 지금-여기에 충실하게 살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큰 용기와 정진을 필요로 한다. 그녀와 인터뷰를 마치며 닉네임인 “진짜 용기’가 더 이상 ‘되고 싶은’이 아닌 ‘이미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걷기를 통해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홀로서기를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과 노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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