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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r 24. 2024

걷기란 평생 친구다 (제이양)

걷기란?

 명상은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 동적 명상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게 바로 걷기고 등산이다. 걷기 같은 운동만큼 공평한 것도 없다. 고생한 만큼 육체에 유익하다. 등산은 덤으로 조금 더 준다. 걸어 올라갈 때 힘들지만 내려갈 때 육체적 건강에 덧붙여 만족감, 행복,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한다. 우울증 치료에 걷기나 등산만 한 운동도 없다. 깊은 호흡은 생리적 변화에 임팩트를 주고, 긴장을 완화시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이홍식, 연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     


 지인의 소개로 걷기 동호회에서 운영진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위해 통화하면서 상대방이 편한 일정과 장소를 정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약속 장소 부근 커피숍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걸었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약간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지만, 일단 걷기 얘기가 시작되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얘기를 이끌어 갔다.     


 그녀는 문구 디자이너로 20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동종 업계인 다른 회사의 임원이 스카우트를 제안해서 입사했는데, 그 상사와의 갈등이 심했다. 지금까지 늘 잘한다는 얘기와 칭찬을 듣고 살아왔는데, 많은 지적과 비판을 받으니 손발이 묶인 느낌이 들었다. 거부당하는 느낌을 받으니 견디기 힘들었다. 나중에는 자신이 잘못되었고, 부족하다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5년간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도 그 시기에 헤어지게 되면서 충격을 더 심하게 받았다. 평상시에는 자존감도 높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 적도 없이 지내온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일을 당하게 되니 능력과 경력을 모두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대인 기피 현상도 나타났고 모든 것이 싫어졌다.      


 주변의 추천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 당시 만났던 의사는 잘 왔다며 격려를 해주고 스스로 찾아 올 정도의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작은 목표를 정해서 성취감을 경험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독서와 영화가 취미였지만, 그것만으로 성취감을 느끼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몇 년 전 라틴댄스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분들이 자신들은 걷기 동호회 회원이라며 걷기를 추천했던 것이 생각났다. 걷기 동호회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기에 검색을 해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나를 찾아 길 떠나는 도보여행 (나길도)’에 가입해서 걷기 시작했다.    


 공덕역에서 강변을 따라 답십리역까지 19km를 걷는 토요 걷기가 처음 참석한 걷기 모임이었다. 깃발(길 안내자)은 간단한 인사 후 참석자들을 신경 쓰지도 않고 목적지를 향해서 걷기만 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서로에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당시 38세인 그녀에게 ‘잘 걷는다’, ‘왜 걷느냐?’ 등의 질문을 하며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휴식 시간 후 걷기 시작하자 또 각자 걷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그녀에게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왔다. 1월이었지만 걸으며 땀을 많이 흘리며 걸었다.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 깃발이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되돌아오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누군가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던 그녀는 그 기분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 이후 토요 걷기에 꾸준히 참석하게 되면서 동호회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 당시 평일은 토요일을 위해 존재했다고 그녀는 자신 있게 얘기했다. 그럴 정도로 토요일을 일주일 내내 기다리며 한 주를 보냈다고 한다. 4월 중순에 50km을 걷는 울트라 도보 행사가 있었다. 그 이전까지 걸었던 최장 거리는 25km 정도여서 도전하고 싶었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3월에 경주 1박 2일 도보에 참석했다. 그 도보 여행에서 다리를 절며 걸으시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께서 25km 정도를 걸을 정도면 기어서라도 50km 완보를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용기 내어 참가를 결정했다.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유기견을 입양했는데 그 애완견과 함께 매일 7km씩 걷는 연습을 했다. 결과적으로 11시간 조금 넘게 걸려서 완보했다. 특히나 마지막 10km를 남겨놓고는 아무리 걸어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고, 마치 도착 지점이 뒤로 물러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힘에 부쳤다. 그날 완보를 한 후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 없어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올 정도로 힘들었고, 발바닥은 물집으로 인해 모두 뒤집어지기도 했다. 그 이후 두 번 더 참석해서 10시간대로 기록을 단축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서서히 극복해나가고 있었다.      


 “회원들 간의 관계가 너무 가깝지도 않으면서도 친밀한 점이 편안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은 경계를 넘어 너무 깊게 들어오는 경향이 있어서 불편한 점이 있다. 하지만, 동호회에서는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낸다. 만나면 반갑고 좋은 사람들이면서도 서로 선을 지키며 활동하고 있다. 그런 관계가 오랜 기간 같이 만나고 활동하는데 편안하다. 또한 일반 사회생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인생 선배들을 만나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경우도 있다. 60대 선배들은 가끔 내 얘기를 들으며 툭툭 한 마디씩 던지는데, 그런 말씀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나중에 만날 때 그 문제가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던져놓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런 분들을 통해 도움도 받고 많이 배우기도 했다.”      


 그녀는 길을 걸으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성취와 상관없이 또 결과에 대한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도 용기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완전한 포기가 아닌 다음 시도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 준비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회사 상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이직을 고민을 하던 중 나이나 능력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그녀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걷기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꼭 디자이너로만 살아야 하나?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딘가 그녀만을 위한 자리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처음 50km 완보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녀는 걸으며 많은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상사와의 갈등, 그리고 연인과 이별의 슬픔을 걸으며 스스로 해결하고 치유해 나갔다. 그녀가 유기견을 입양한 것도 어쩌면 유기견과 자신의 입장이 비슷하다는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고통을 받아 본 사람만이 고통받는 생명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고통을 감싸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녀는 걷기를 통해 힘든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스트레스 내성을 키우며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도 그녀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꺼이 도전하고, 누군가는 망설임 속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점점 자신 속에 갇혀 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 환경에 얽매여 살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걷기를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한 그녀는 그 힘으로 과감히 그녀 앞에 놓인 삶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걷기가 바로 그 도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녀는 걸으며 구원받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치유와 위로를 병원에서 받은 것보다 걸으며 더 많이 받았다. 재작년에 스트레스로 인해 난소 종양 판정을 받고 개복 수술을 했다. 수술 후 가스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나왔고, 일어나서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고 하는데 남들보다 빨리 걸을 수 있어서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마취가 끝난 후에도 생각보다 고통이 심하지 않았고, 폐가 안 좋은 편인데도 호흡을 잘할 수 있었다. ‘운동은 아프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질병에서 빨리 회복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꾸준히 걸었기에 수술 후 빠른 회복이 가능했던 것 같다.”     


 걷기 시작한 초기에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데 계단이 많아 그녀에게는 힘든 코스였다. 그 힘든 길을 걸으며 과호흡으로 인해 구토까지 했는데, 1년 뒤에 같은 코스를 걸으며 아무 탈 없이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그만큼 건강해진 것이다. 걷기 전에는 돈 버는 이유가 택시를 타기 위해서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이용했던 그녀였다. 요즘은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거리와 상관없이 걸으며 건강과 생활 습관 등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모든 길이 좋다고 말한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많이 남는 길과 에피소드가 개인마다 있다. 그녀는 팔당으로 밤샘 도보 갔던 기억도 많이 난다고 했다. 밤 9시에 출발해서 다음 날 오전 6시에 마치는 무박 도보 여행이다. 걸으며 물소리, 벌레 소리, 길동무 발걸음 소리, 멀리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등을 들으며 걸었다. 그 모든 것이 기억나고 정겹다고 한다. 한 번은 해변가에서 텐트 치고 비박을 하기 위해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쳤는데, 아침에 눈 떠 보니 바로 텐트 앞 신발이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기분이 묘하면서 새로운 멋진 추억이었다고 그 기억을 웃으며 얘기한다. 그 기억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걸으며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그녀는 점점 더 신이 난 듯 말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 보였다.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았기에 그런 자긍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녀는 걷기 동호회 가입 후 6개월 이후부터 깃발을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받은 것을 나눠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걷기 깃발을 꾸준히 들었고, 요즘은 주말에 깃발을 든다고 한다. 과연 그녀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평생 함께 갈 친구다. 길이 내 애인이다. 언제 와도 늘 같은 모습으로 반겨주고 위로해 주는 덕분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걸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동호회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이 떨리고 무릎이 떨리지 않을 때 많이 걸어라.” 마음이 설렌다는 것은 아직도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이고 무릎이 떨리지 않을 때라는 것은 아직 건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말대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걸을 생각이다. 여자에게 평생 필요한 것이 딸, 친구, 돈이라고 하는데, 한 가지 더 포함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 무릎을 포함시키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호주에 살았던 적이 있었던 그녀는 그때 사용했던 영어 이름이 제이 (Jay)였다. 동호회 내에서 다른 사람이 그 이름을 이미 사용하고 있어서 뒤에 여성을 뜻하는 ‘양(孃)’을 붙여 ‘제이양’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일상 속에서 삶에 지쳐있거나 힘든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걷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바로 걷기를 많이 권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소, 시간, 혼자 또는 친구와 함께, 밤이나 낮이나, 계절과 기후와 상관없이 나와서 걸으면 좋겠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만큼 그녀는 걷기를 통해 심신이 건강해진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그녀가 열정적인 ‘걷기 홍보 대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요즘 조금 고민하고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7월 이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힘든 일이 무엇인지, 또 프리랜서로 어떤 삶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걷기를 통해 잘 극복하고 멋진 삶을 만들어 나가리라 믿는다. 그녀의 걷기 열정을 지지하며 걷기라는 평생 친구와 영원히 함께 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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