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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Jun 01. 2024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14회 차 후기>

두더지 잡기 놀이

한 주는 해파랑길을 걷고, 한 주는 서울 둘레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러 나갈 때마다 설렌다. 사람들을 만나는 설렘이 있고, 길을 걷는다는 설렘이 있다. 길도 사람도 정이 든다. 만나면 만날수록, 걸으면 걸을수록 정이 들고, 정이 들면 들수록 보고 싶어지고 걷고 싶어 진다. 사람은 유정이고 길은 무정이다. 하지만 유정, 무정과 상관없이 감정이라는 놈은 반응한다. 보고 싶다는 감정과 걷고 싶다는 감정이 올라온다. 그 즐거움 덕분에 길을 걷는 수고로움과 힘듦은 보상받는다. 사람은 변한다. 마찬가지로 길도 변한다. 세월의 변화를 피해 갈 수 없다. 무상이다. 변하는 것은 희망의 단어이자 동시에 고통의 단어이다. 희망과 고통은 모두 욕심이다. 변화하는 사람과 길을 보며 무상을 배우고 욕심을 내려놓는다.  

    

처음 나온 분이 세 분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중 한 분은 나의 블로그를 읽기 시작해서 밴드까지 찾아온 분이다. 반갑고 고맙고 신기하다. 나의 신변잡기를 기록한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찾아와서 반갑게 인사하며 함께 걷는다. 개인적인 기록이고 느낌에 불과할 뿐인 글을 통해 만나서 함께 걷는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다. 비록 개인적인 글이지만 구독자 수가 늘어난 만큼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느낀다. 굳이 잘 쓸 필요는 없고 잘 쓰지도 못하지만 나름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면 되지만 거기에도 책임감에 따른 약간의 제한이 따른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이나 원망하는 글을 쓰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단어 선택도 가능하면 긍정적인 단어를 쓰려고 노력한다. 구독자를 의식한 점도 있지만, 글을 쓰며 나의 마음을 순화하고 정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생각이 표현된 것이다. 생각은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글을 정돈하며 생각을 정돈할 수 있게 되고,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 글쓰기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고 나의 마음 정원을 쓰는 빗자루이자 쓰는 행위가 된다.      


오랜만에 나온 길벗에게 여행하며 무엇을 느꼈는지 물어보았다. 웃으며 “나의 꼬락서니를 봤다”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이 너무나 통쾌했다. 약 열흘간의 크루즈 여행을 하며 동참한 사람들을 통해 또는 다른 나라의 풍습과 사람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기준과 원칙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그 기준과 원칙을 부수는 것의 필요성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이 나의 거울이 되고, 체험하는 모든 경험이 나의 거울이 된다. 자신의 꼬락서니를 보았다는 것은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고 어쩌면 이미 많은 변화가 진전되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 나설 수 있다. ’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 삶의 노예‘로 살아가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신이 주인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은 능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삶이다. 반면 평상시 습관에 따른 자동적 반응으로 살아가는 삶은 습관의 노예의 삶이다. 매 순간 자신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언행 패턴을 선택하고 변화시켜 삶을 개선할 수 있다. 행동과 언어 또는 감정의 자동반사적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을 하며 마음의 근육을 바꿀 수 있다. 자신의 패턴을 볼 수 있으면 긍정적인 패턴은 발전시키고, 부정적인 패턴은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주인의 삶이다.      


뒤풀이 시간에 길벗이 해파랑길 걸으며 새벽에 뭇 생명의 잠을 깨우고, 그들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었다는 얘기를 하며 두더지 잡이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닌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말씀하셨다. 뒤풀이 시간에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하다. ‘두더지 잡기’ 놀이는 우리만이 아는 단어다. 두더지는 산만한 생각과 감정이다. 두더지가 올라오려는 것을 빨리 보는 행위가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리는 마음을 항상 챙기는 것이 마음 챙김이다. 마음챙김은 두더지를 때리는 망치가 된다. 마음을 챙기면 쓸데없는 생각과 감정은 저절로 사라진다. 굳이 생각과 감정을 없애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것들이 올라올 때 부드럽게 알아차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는 마음을 챙기면 저절로 사라진다. 길벗은 뭇 생명을 위한 자애심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 마음이 참 곱다. 이때 마음챙김은 자애심이 된다. 생명에 대한 자애심을 유지하는 것이 마음챙김이다. 일부러 두더지를 떠올릴 필요가 없다. 


마음챙김은 쓸데없는 망상과 감정에서 벗어나 지혜를 깨닫는 방편이다. 지혜를 깨달은 후에는 자애심이 저절로 드러난다. 자애심이 없는 지혜는 건조하다. 그리고 자애심이 없는 지혜는 참다운 지혜나 깨달음이 아니다.  깨닫게 되면 저절로 모든 중생에 대한 자애심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그 길벗은 마음챙김을 하며 자애심이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자애심이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림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체험을 한 그 길벗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보낸다. 나는 그저 길 가는 것에 바빠 마음챙김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도 괜찮다. 길을 안내하는 것이 나의 마음챙김이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챙김 하는 것이 길벗의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에 대한 욕심을 갖는다면 이 또한 병이 된다. 자애 명상이 있다. 자애심을 증장시키기 위한 명상법이다. 그 명상법을 이 글의 뒷부분에 사진으로 찍어서 올린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읽고 자애 명상을 꾸준히 수행하시길 바란다.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침묵시간도 안 지켜지고 있고, 뒤풀이 금액을 나누는 과정에서 리더라고 나는 제외되었다. 침묵 시간이 안 지켜지는 것은 상관없다. 그만큼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이고, 상황에 따라 지켜질 수도 있고,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원칙을 지키는 경직성은 원칙을 만든 이유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침묵시간 동안 가능하면 마음챙김을 유지하고 걷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침묵보다 길벗과의 대화가 더욱 즐겁다면 굳이 침묵 걷기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다만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말을 하고, 길벗의 말을 듣는 행위에 마음챙김을 하면 된다. 리더도 뒤풀이 금액을 내는 원칙은 지키고 싶다. 함께 즐겁게 걷고 그 즐거움을 이어가기 위해 뒤풀이를 하는데 리더라 해서 내야 할 금액을 내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리더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는 배려를 해 주신 길벗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배려는 나를 위한 배려로 바꿔주시길 바란다. 나는 공평하게 지불하며 함께 즐겁게 먹고 마시고 싶다. 이해를 부탁한다. 물론 좋은 일이 있어서 한 턱을 낸다면 즐겁고 고마운 마음으로 먹고 마실 수 있지만, 가능하면 이 원칙은 지켜나가고 싶다. 참석자분들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린다.      


어제는 과음했다. 술을 마시며 마음챙김을 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다.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걸으며 마음챙김은 일상에서 계속 유지되어야 마음챙김의 힘을 얻을 수 있다. 평생 꾸준히 연습하며 살아가야 한다. 오직 반복된 연습만이 필요하다. 마음챙김을 일상 속에서 꾸준히 연습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과음하는 나쁜 습관도 마음챙김하며 마신다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동참한 모든 길벗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함께 즐겁게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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