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고 May 19. 2024

금요 서울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13회 차 후기

침묵의 의미

며칠 전부터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걷기 모임에 관한 꿈이다. 인원이 모여서 걷다가 각자 갈 길을 간다. 종(띵샤)이 금이 가서 소리가 청명하지 않다. 참석자 수가 부족해서 사람을 찾으러 헤매기도 한다. 이런 꿈을 반복해서 며칠간 꾸었다. 걷기 학교 운영 및 진행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서 그런가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 스스로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나의 생각과 마음 간의 괴리가 있나 보다. 흘러가는 대로 운영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나 보다. 딱 한 가지 겉으로 드러난 변화가 있다면 예전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횟수와 시간이 많은 늘었다는 것이다. 가끔 아내는 내가 핸드폰을 예전에 비해 너무 많이 보고 있다고 가끔 핀잔을 준다. 이 역시 내 생각과 아내가 느끼는 것과의 차이다. 나는 평상시대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아내의 판단이 옳을 것이다.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늘 헤매는 구간이 바로 정릉 구간이다. 오늘도 이 구간에서 길을 놓쳐서 한참 헤맸고, 참석했던 Soo님과 아리님 덕분에 명상길에 진입할 수 있었다. 길을 찾는다고 헤매다 넘어지기도 했고, 여러 번 산길에서 넘어질 뻔했다. 몸 컨디션이 안 좋아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 길벗들이 모두 걱정해 주고 길을 안내해 주고, 보살펴 준 덕분에 큰 탈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발과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북한산 생태 숲에서 중간 합류한 렛고님과 범일님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밝아져서 고맙다. 두 분은 냉커피를 직접 사들고 와서 나눠주었다. 고맙다. 조금 지친 상태에서 반가운 길벗을 만나고,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심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함께 걸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기분도 밝아져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잠시 꿈을 해석해 보았다. 인원이 모여 각자 갈 길을 간다는 것은 리더십의 문제일 수도 있고, 다른 면으로는 함께 모여 활동하지만 각자 자신의 길을 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따로 또 함께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함께 가기 위해서 혼자 갈 줄 알아야 한다. 함께 걸으며 배우고 도움을 받은 후,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그러다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함께 걸으며 도와주면 된다. 띵샤의 소리가 맑지 못하다는 의미는 침묵 걷기와 종소리 명상에 관한 나의 태도 변화를 알려주고 있다. 걷는 중간에 침묵 걷기도 하고 차분히 앉아 종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을 애초에 준비했지만, 침묵 걷기 하나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걸으며 너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정자에 모여 종소리 명상을 진행했었는데, 그 시간이 좋았다는 의견을 듣고 다시 종소리 명상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다만 너무 멘트를 많이 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소리가 맑지 않게 들렸다는 의미는 원래의 취지대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는 경책이다. 즉 상황에 맞춰 종소리 명상을 좀 더 명확하게 진행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참석자 수의 부족은 해파랑길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 것이다. 인원이 신경 쓰인 이유는 바로 승합차 이용에 따른 비용 때문이다. 해파랑길과 코리아 둘레길을 완보하기 위해서는 차량 지원이 필수적이다. 천천히 상황에 맞게 진행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진행이 원활하게 되지 않을 경우 기간이 쳐지면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며 인원 걱정을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걱정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침묵도 상품이다’라는 칼럼을 읽었다. 침묵 속에서 차를 마시고, 술을 홀로 마시고,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상용 공간이 등장했다. 넘치는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나온 것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과연 소음은 외부의 소음만 소음일까? 또 겉으로 침묵만 한다고 참다운 침묵이 될까? 소음은 그냥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소음이라는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소음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니다. 오히려 소음을 통해서 마음챙김을 한다면 소음은 마음공부의 좋은 재료가 된다. 말만 하지 않는 것이 침묵이 아니다. 머릿속 목소리가 사라져야 참다운 침묵이 된다. 입은 다물고 머리는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이는 침묵이 아니다. 법정스님께서 침묵에 대한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침묵은 자신을 자랑하고, 남을 비난하고,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침묵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과 말은 대부분 이 세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외에 우리가 하는 생각과 말이 있을까? 굳이 있다면 쓸데없는 걱정, 가십이나  소문에 불과할 것이다.    

  

굳이 침묵을 얘기한 이유는 오늘 나의 상태가 바로 침묵을 가장한 소란스러움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흐름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실상 속으로는 수많은 생각과 걱정, 그리고  걷기학교를 잘 운영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겉은 조용하고 속은 시끄럽다. 길을 걸으며 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침묵 걷기 시간에 발의 감각에 집중하려 노려했다. 오늘따라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많이 산만했다. 이 마음을 가라앉히려 더욱 의식을 발에 집중하며 걸었다. 평상시보다 발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더 다양하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생각이 떠오른다. 게다가 두 사람이 중간 합류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중간 합류할 지점을 서로가 잘 알지 못하면 어긋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범일님이 합류 지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 다시 한번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침묵 걷기는 단순히 말을 하지 않고 걷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소음을 발의 감각을 통해 사라지게 하며 마음을 침묵하게 하는 것이다. 침묵의 의미와 마음챙김 걷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하루였다.      


길벗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Soo님과 아리님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나온 선미님의 편안한 미소와 가벼운 발걸음이 돋보인다. 처음 나오신 유병조님의 여유로운 언행과 미소가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렛고님의 열정과 따뜻한 배려에 감사를 표한다. 범일님의 에너지는 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준다. 고맙다. 오늘은 길벗 덕분에 걸을 수 있었다. 고마운 길벗님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챙김 걷기 12회 차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