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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Feb 01. 2022

선물을 고르며


연말과 연초에는 선물할 일이 많다. 애초에 그런 때이기도 하려니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일과 기념일도 주로 이 때에 몰려서. 이번엔 또 하나의 인연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시기라 더더욱 그랬다.


어릴 적부터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고 건네는 일에 유난했다. 거기서 거기일 문구점 진열대를 백 번씩 오가며 진통에 가까운 고민 끝에 선물을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쉬이 선택하거나 하나 골랐다고 내 모든 친구들의 선물을 그걸로 통일하는 일일랑 결단코 없었다. 좋아하는 친구 한 명 한 명의 성향과 특징과 애착을 가진 물건들의 공통점과 색감 취향과 최근의 쇼핑 목록을 다 따졌다. 친구의 마음에 쏙 들 만한 것이면서 필요하기도 하고 또 내 예산 범위 안에 똑 떨어지는 게 흔할 리 없지. 가장 반짝이는 포장지에 리본도 묶고 싶은데 대부분 그런 데 쓸 돈은 남지도 않았다.


인생은 늘 현실과의 타협이어라. 그럴 땐 내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편지지나 카드에 공들여 편지를 썼다. 너무 좋은 말을 많이 써서 내가 그 친구에 대해 가진 마음보다 더 커다란 편지가 나올 때도 있었다. 네가 날 이 정도로 생각하는지 몰랐어. 편지만 받고 눈물을 글썽이는 애도 있었으니 말 다 했지. 기실 고백하자면 그런 편지는 그 아이를 위해 썼다기 보다 나를 위해 썼던 것이다. 편지만으로 친구의 심금을 울린 대단한 사람으로 추켜세워지고 싶어서.






말이 샜지만 질풍노도의 시기가 끝나며 내 선물에 대한 집착은 다시금 포커스를 제대로 맞췄다. 선물과 포장지에 쓸 수 있는 예산이 늘었고, 기념일에 기프티콘이 아닌 직접 골라 포장한 선물을 줄 만한 사람은 줄었다. 아끼는 사람이 반 친구 전체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로 줄어든 만큼 애정은 더 깊어져서 선물에 담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거기다 내 취향과 필요도, 친구들의 관심도 동네 문구점을 벗어난 지 오래. 어릴 때야 다 비슷비슷 고만고만한 니즈였던 것이 이제는 확연히 달라졌다. 내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듯 다른 삶을 살고 비슷한 듯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취향을 점점 견고한 성으로 쌓아 올리고 있다. 매일 아침 교실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성을 들여다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그러니 고민이 깊어질 밖에. 친구의 생일을   즈음 남기고 벌써 눈에 선물 렌즈가 씌워진다. 일단 새로운 아이템을 만나면 ‘이게  친구의 선물로 적당한가?’라는 질문을 먼저 들이대는 렌즈다.  물욕은 잦아들고 쇼핑에 대한 열정은 전부 초점이 바뀐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편집샵 어플이나 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을 하지만, 1초도 내가    고르고 있지 않다. 장바구니에 계속 물건이 담기지만  선물 후보군 . 12 생일인 친구의 선물을 찾아다니다가 1월에 퇴사하는 친구에게 어울릴 법한  발견하고 조금 방향을 트는 일은 잦아도, 선물을 고르는 일이   고르는 일로 변질되는 법은 없다. 애초에 렌즈가 다르니까.


질문은 하나에서 이어진다. 무슨 선물을 주면 좋을까. 그간 주고받은 선물 목록을 떠올려 본다. 주로 좋아하는  뭐였더라. ? 옷이라면  범주가 넓다. 사이즈도 알아야 하고. 간단한 악세사리라면  낫지만 그것도 파고들자면 끝도 없는 취향의 영역이라. 무난해서 아무나 좋아할 만한  선물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이런 질문을 시작도  했다. 화장품은 갈수록 리스트에서 빼게 되고. 아주 실용적인 것을 찾다가 문득 그저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다가  중간 어드메에서 매일같이 흔들린다.


친구가 요즘 새로 샀다던 아이템을 하나씩 복기해 보고, 최근 변한 일상이 없는지도 생각해 본다. 독립을 했다거나 이직을 했다거나, 그런 거대한 이벤트가 있으면 고민은 조금 단축되지만 어디 그런  흔한가. 샅샅이 살펴야 한다. 인스타그램도 괜히    들어가 보고. 친구가 스치듯 흘린 얘기를 단서 삼아  걸음  나가보기도 하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작업이다.


그렇게 후보가  만한 아이템들을 얼추 여기저기 장바구니에 담아둔 뒤에는  아이템을 요모조모 비교해보느라 바쁘다. 일이삼 순위가 매일 같이 바뀌고, 그러다 덜컥 다크호스 같은  나타나 리스트를 완전히 갈아치울 때도 있다. 얼추 예산을 잡아두고 시작했다가  범주를 약간 넘어서는 선에서 대단한 것을 발견하면 예산 수정에 돌입한다. 초등학생 때와 비교해서 예산에 대한 통제권이 늘어난 것은 기쁜 일이고, 동시에 선물의 범주를 안드로메다까지 넓혀버리는 슬픈 일이다. 하여간 예산이고 뭐고 마음에  드는 (다시 말해 친구의 평소 취향과  근래의 일상을 고려할  친구가 마음에  들어할 만한) 선물을 발견하면 그건 기적 같은 일이다. 그것도 선물할 날이 오기 전에, 배송일까지 고려해 적당한 타이밍에.


말했지만 인생은  현실과의 타협이라. 대부분 조금은 아쉬운 점을 남기고서 최종 셀렉을 마친다.






손이 서툴어 포장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애초에 포장까지 해서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직접이라도 꼭 한다. 그냥 건네는 것과 리본이라도 하나 묶어서 건네는 것은 느낌이 다르니까. 집에는 이미 색색의 포장지와 리본. 받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생각하며 받지는 않겠지만 포장을 고를 때도 나름 고심하는 편이다. 너무 튀거나 동동 뜨지 않게끔. 가능하다면 선물과도 어울리고 친구의 취향과도 결이 맞기를 바라며. 때로는 알맞는 포장지를 찾지 못해서 길고  선물 쇼핑이  끝난 마당에 포장지 쇼핑을 다시 떠나야  때도 있다. 적어도 예전처럼 예산 부족으로 포장지를  사는 일은 없으니 다행일까.


요즘엔 시간이 없단 핑계로   빼먹었지만 카드도 끼워넣는다. 집에는 이미 각종 카드와 편지지도 가득가득. 카드 이벤트에 맞춰서 선택해야 하니 그것도 또한 고민의 영역이지만 언제나 글은 내용이 어려운 법. 거기다 선물을 너무 깊이 고민하여 고르고  마지막엔  아쉬움을 남기며 선택하다보니 편지엔   마디 선물에 대한 변명 비슷한  들어간다. 네가 이런  좋아해서 이걸 생각하다가 이렇게 이어져 저걸 골랐어. 사실 그걸 주려다가 그건 네가 가지고 있을  같아 이걸 샀어. 너에게  필요한  찾다가 갑자기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을 주고 싶었어. 지금은 이거지만 나중에 내가 부자가 되면  좋은  줄게.


그런 사족  붙이는   쿨하다는  알면서도, 선물 고르는  족히 일주일의 여가시간을  투자한 인간은 뭔가 마지막까지 질척일 수밖에 없다.






선물 고르는  나만큼의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안다. 그러나 사람은 제 식대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 친구선물에 나는 거기 쓰였을 에너지를 내 셈대로 계산하여 남들의 곱절만큼 감탄하곤 한다. 나의 모습을 투영하여. 그저 너도 그만큼 머리가 아팠겠거니, 미루어 짐작하면서.


이만큼의 에너지를 들여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우리 집에 조각조각 색색이 다른 포장지도, 길이가 짤뚱한 리본들도  많이 남았으면. 그러느라  머리가 아무리 지끈거리더라도, 그것이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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