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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Jan 08. 2022

세 번째 작심삼일

2022년을 맞으며 

년도가 바뀌는 게 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나. 난 아직 2021년에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서 종종 파일명에 2020이라는 숫자를 붙이고 마는데. 1월 1일이 무슨 대수라고. 그냥 12월 31일의 다음날일 뿐인데. 갑자기 1월 1일이라면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어제와는 다른 나를 추구하는 거 너무 우스운 일이잖아. 


 ―라는 반항심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나는 이번 1월 1일도 '새해의 상쾌한 시작!'을 외치며 알차게 보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시간 구분선에 약한 존재인 데다 나 같은 계획형 인간은 더더욱 그런지라. 2021년 12월 31일과 2022년 1월 1일 간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일단 1년 간 쓴 다이어리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다이어리에 처음으로 펜을 대는 날인데.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차고 넘치지.


게다가 올해는 공식적으로 서른이 되는 해다. 빠른 년생에게 올해 몇 살인지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골치 아픈 주제이고 딱 그만큼 남들보다 느낌이 좀 덜하지만. 어쨌든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면 나의 많은 92년생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올해 서른이 된다. 서른 따위가 무슨 의미냐. 이 반항심은 새해 첫날에 대한 것보다도 조금 거센 편이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 사회는 (스물이나 마흔과 마찬가지로) 서른을 꽤 부피감 있는 기준선 취급하고 그걸 완전히 무시할 순 없는 거다. 다 떠나서 또 나름의 의미가 가득한 20대를 마무리 짓고 다음 장으로 건너가는 느낌이 영 뻑적지근하긴 하니까.




 


하여간 그래서 1월 1일에는 (또) (간만에) 대청소를 했다. 저번 대청소 때 쓸모없는 것들은 꽤나 정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렇듯 이번에도 버릴 것이 한가득이었다. 버려야 하는 걸 알면서 모종의 이유로 결국 다시 끌어안게 되는 것들도. 공간은 한정적이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사들이고 있으니 철 지난 것은 버려줘야 균형이 맞는다. 더 두고 보고 싶은 것인데 어느새 그 물건의 쓰임이 다 했거나 기한이 다한 경우도 있고. 비단 물건 뿐이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결국 무언가는 놓고 무언가는 더 얻게 되는 게 아닐까. 다 끌어안고서는 뒤뚱뒤뚱 어디도 못 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번엔 최대한 기준을 높게 잡고 많이 비워냈다. 서른이니까.


언제나처럼 긴장감을 느끼며 새 다이어리를 조심히 펼치기도 했다. 첫 장이 1월 1일이어야 하는데 뜬금없이 12월 31일이 한 장 들어가 있어 김이 팍 새버리고 말았다. 부담스러운 시작을 좀 가볍게 해주려는 마음 씀씀이인가 싶다가도 영 불만족스러웠다. 굳이 12월 31일의 나로 새 다이어리를 시작하고 싶진 않은 마음이 더 커서. 가능하면 2021년의 나와 빠르게 거리두기를 하는 게 좋다구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이 모든 새해 리추얼의 목적인데! 


결국 그 페이지에는 포스트잇을 하나 붙였다. 이 달의 목표 같은 거대한 것을 다이어리 (것도 제일 앞 장에) 쓰기 망설여질 때의 꿀팁인데 언제든 떼서 바꿔치기 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나는 대로 썼다. Q1 2022의 마지노선을 잡아보자, 라는 제목으로. Q1이라고 쓰니까 너무 회사일 같아서 벌써 약간 후회가 되었지만 멈추기엔 일렀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기 위해선 펜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보기. 이게 어떤 종류의 목표가 아니라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는 것만 기억하며 생각나는 대로 썼다. 그러느라 '최소'라는 단어가 많이도 들어갔다. 너무 성급하게 썼나 싶기도 했지만 일단 Q1이니까 Q2에 바꿔도 되고, 포스트잇이니까 나중에 죽죽 그어버리고 고쳐도, 혹은 아예 떼어버려도 좋겠다. 

(목표가 아니라 마지노선을 잡고, 일 년치가 아니라 일 분기 계획을 세우는 건 재작년의 깨달음 덕분이라!)





그렇게 해서 오늘은 1월 8일. 

1월 1일에 한 번, 4일에 한 번, 7일에 한 번. 벌써 새해의 작심삼일을 세 번째 했다.


기실 새해의 다짐이란 다른 어느 때보다 그 파워가 센 것이어서 작심십일 정도는 되지만, 가능하면 오래오래 이 힘을 유지해보려고 3일 단위를 유지하는 중이다. 2월에도 1일은 있고 음력 설도 있지만 그런 분기점에선 결코 이만큼의 파워는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1월 1일 만큼 센 날은 올해 안에 다시 오지 않는다.


다 떠나서 그냥 작년보다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 내 스물아홉보다 서른이 조금 더 멋지길 바라는 마음. 아직 매우 소소한 것에까지 미치는 이 새해의 힘을 올해는 작년보다 좀 더 오래 끌고 가는 것이 내 유일한 목표다. 삼일에 한 번씩 작심을 계속하면서. 


새해의 마법이여, 나의 코어가 되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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