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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19. 2020

언니와 함께하는 풍요하리 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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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사할 때 내게 가장 큰 힘을 준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언니다. 무려 6살 차이가 나지만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친구로 본다. 나는 언니랑 다니면 6년을 손해 보는 기분이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우리 언니가 어려 보인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우리 언니는 금손이다. 10년여간 그래픽 UI 디자이너였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과장님으로 불렸다. 그러던 언니가 4년 전에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사실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라는 말은 부모님 시선이고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회사는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이 힘들게 할 때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언니는 1년 간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다. 믿고 따르던 사람의 변한 모습에 몸도 마음도 상처를 받아온 듯하다. 언니도 나처럼 참는 게 습관인 사람인지라 1년간 버티다 퇴사했다. 언니도 퇴사한 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자책하기도 하고 원망도 하며 자기에게 투쟁하는 시간 말이다. 회사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하는 나날. 언니는 맏이라는 이유로 나보다 더 의젓함을 요구받았다. 오랜 방황 끝에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 일하기 시작했다. 브랜드명은 ‘풍요하리’로 지었다.     


  언니는 손바느질로 물건을 만들었다. 만든 물건을 팔거나 사람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갔다. 물론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경제적인 성공을 아직 거두진 못했지만, 우리 가족과 친척 모두 직장생활만 해왔던 집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업자를 만드는 것부터 언니와 함께했다. 누구에겐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엄마의 화끈한 성격 덕에 공방도 임대했다. 나름의 구색이 갖춰진 것이다. 풍요하리가 만들어진 후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바느질도 제대로 못 하고 그림도 잘 못 그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언니를 도울 수 있을까.     


  바로 공방에 나가서 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언니와 일하지 않겠다고 울며 집에 며칠을 박혀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언니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 것들을 타협해 가며 각자의 톱니바퀴를 맞춰갔다. 자주 싸우고 자주 웃었다. 편했고 조금씩 회사에 길들여진 내가 자연인으로의 나로 변해갔다. 시간이 지나고 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네가 어떻게 회사생활을 잘했는지 궁금하다. 절대 너는 회사생활을 잘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웃으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반박할 수 없었다. 진짜 내 모습은 요즘 모습인데, 어떻게 회사생활을 해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이 편하다 보니 본모습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게으르고 바보 같은 모습이 많은 내가 회사생활을 7년이나 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언니가 바느질한다고 내가 그것만 하는 생활을 보낸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 언니는 내 그림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가끔은 내가 바느질에 꽂혀 뭔가를 만들었다. 수공예만의 매력을 만나기도 했다. 천천히 한 땀 한 땀 새겨가다 보면 복잡한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작은 한 땀이 모여 완성되는 만족감. 이 정직한 행위가 마음을 위로했다. 그래서 바느질은 아직도 이렇게 사랑받나 보다. 물론 나는 그림이 더 좋지만, 바느질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인 것 같다.   

  

  ‘풍요하리’는 바느질과 그림 작업을 하는 공방이다. 언니의 멋진 바느질 실력과 나의 그림이 어우러져 작품이 된다. 비즈니스 면에선 개선할 점이 많지만, 우리에겐 평생 배신하지 않을 동업자가 있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야 할 상사도 없다. 극 효율과 최소 리스크를 발판 삼아 앞으로 빛나기 위해 오늘도 다투고 타협하는 풍요하리 제작소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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