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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20. 2020

일상을 그림으로 바꾸는 드로잉 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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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엔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하지만, 여행을 가면 꼭 챙겨가는 준비물이 있다. 바로 작은 노트와 볼펜이다. 그땐 그림을 자주 그리지는 않았지만, 여행을 가면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여행지의 햇살, 공기, 마주하는 풍경들을 글로 남겼다.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랐을 때는 그냥 내 맘대로 그렸다. 수채화 용지도 아니라서 물을 사용하면 종이가 울었다.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이상하게 그림을 그렸던 여행지는 기억에 더 오래 남았다. 같은 장소를 오래 찬찬히 보아서 그런 걸까? 여행을 다녀온 후에 그림을 다시 보면 그날 그 장소에 내가 앉아있는 기분이 든다.     


  그림이 일상이 된 이후에는 어반 드로잉 재료를 항상 들고 다닌다. 먼저, 노트는 야외에서 들고 다녀도 때 타지 않도록 커버를 패브릭으로 직접 만들었다. 리넨 천과 레이스로 마무리했고 고무줄로 마감해 펜을 수납할 수 있다. 다음은 채색 재료를 엄선해서 투명 파우치에 담았다. 2B 연필, 샤프펜슬, 지우개는 기본이고 발색이 좋은 유성 색연필 10자루와 연필 깎기가 담겨있다. 색연필은 기본 12색을 선택하지 않았다. 평상시 내가 좋아하는 색 중에서 서로 어울리는 색을 선별했다. 모아보니 파스텔 톤이면서 개성이 뚜렷한 색들이었다. 이제 내가 그린 그림들은 비슷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다음은 라인 펜 종류다. 필압이 적용되지 않는 볼펜과 필압을 사용할 수 있는 라인 펜을 선택했다. 볼펜은 얇은 선을 사용해서 자유로운 형태와 라인을 그린다. 가끔 볼펜으로 왼손 드로잉을 하면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 지글지글 움직이는 선이 매력 있도록 도와주는 펜이다. 필압을 조절할 수 있는 라인 펜은 인물 드로잉을 할 때 쓴다.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 힘을 줘야 할 곳과 빼야 할 곳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부드러운 촉 덕분에 그릴 때마다 융단 위에서 그림 그리는 기분이 든다. 사실 글씨 쓸 때도 제격이라 참 좋아하는 재료다.     


  또 다른 느낌의 채색을 위해 수채화 재료를 담아 두었다. 민트맛 캔디가 들어 있던 작은 틴케이스에 노랑, 빨강, 파랑과 같은 기본색 고체 물감을 넣어두었다. 우선 색이 다양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색을 만들려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 점이 참 매력 있다. 색을 알아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고체 물감은 물을 담을 수 있는 워터 브러시와 궁합이 좋아 함께 갖고 다닌다. 고체 물감을 사용하기 전에 워터 브러시로 물감에 물을 짜둔다. 살짝 녹은 뒤에 사용하면 훨씬 편하다. 세척도 쉽고 휴대도 간편하다니 정말 좋은 발명품이다. 워터 브러시 발명가는 전 세계 미술인들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만년필 한 자루를 넣어두었다. 만년필 그림은 많이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 좀 더 연습하고 싶은 분야다. 워터프루프 잉크를 넣으면 펜촉이 굳는다고 하여 수채화를 할 수는 없지만, 라인 드로잉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일반 잉크를 넣어두었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시는 분들을 보면 만년필로 그림을 그리던데 일반 펜과는 다른 느낌에 넘지 못할 벽을 만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만년필 어반 드로잉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선 그 전에 그림을 그려봐야 하는데 실천은 안 하고 말만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재료가 있지만 나는 이 정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분, 장소에 따라 사용하고 싶은 재료들이 달라지고 이 정도면 충분히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적은 재료만 사용하고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재료를 접해보고 싶다. 이를 통해 그림의 스펙트럼을 늘리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도 인생의 찰나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작은 노트와 펜 하나를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먼 훗날 그 작은 낙서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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