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요 Oct 22. 2020

매일매일 드로잉 하며 위로한 시간들

16

   살면서 매일 해온 것들은 숨쉬기, 밥 먹기, 잠자기 외에 뭐가 있을까? 씻기는 가끔 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매일 무언가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회사 다닌 이후로는 더더욱 다른 무언가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워라벨을 생각하며 해왔던 운동, 취미 활동 중 어느 하나 한 달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나는 진정 끈기가 없는 걸까? 엄마는 나에게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는 ‘끈기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나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이 사라진 계기가 있었다. 바로 ‘그림’이었다.    

 

  퇴사 직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매일 악몽과 불면으로 시달렸지만, 그런데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는 충만했다. 아직 끝내지 못한 회사생활로 인해 매일은 아니어도 꽤 자주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을 따라 그리거나, 내 캐릭터로 크리스마스 카드도 만들었다. 그때만큼은 마음속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무지개를 띄울 수 있었다. 내게 힘을 주는 존재였다.     


  퇴사 후 바로 그림을 그렸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때는 방황을 좀 했다. 퇴사하고 나니 모든 긴장감이 풀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방에 틀어박혀 며칠을 그냥 보내기도 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며칠을 자기도 했다. 엉엉 울기도 하며 터널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대체 무얼까? 왜 이렇게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퇴사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바로 좋아지지 않았다. 깊은 상처는 치유 기간도 긴 것 같다. 내게 퇴사와 함께 찾아온 슬럼프는 오랜 기간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몇 달을 보낸 것 같다. 아까운 시간이라 생각하며 자책했다. 뭔갈 억지로 해보고 싶었지만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잘살고 있는 것 같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 그림을 조금씩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연필, 색연필, 수채화, 아이패드로 다양하게 그림을 그렸다.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그림 실력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못 그렸어도 SNS에 업로드하며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 ‘그림을 그리자, 매일 그리자.’ 하며 9개월이 지났다. 중간에 몇 주간은 공방 일이 바빠 그리지 못한 기간도 있다. 그러다 다시 매일 그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리지 않아 예전만큼 못 그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안정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 뒤로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붓을 잡았다. SNS에 업로드하지 않아도 나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리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어갔다. 꾸준히 하다 보니 비전공자도 그림을 매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전공자가 보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린다. 언젠가 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매일 드로잉 하는 것은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다. 여유가 많을 때는 조금 복잡한 그림을 그려보고 바쁘고 힘든 날엔 간단한 펜 드로잉을 하면 된다. 그 감각은 아주 조금씩 내게 흔적을 남긴다. 몸으로 익힌 기술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분명 손과 뇌에 그림 근육도 단련되고 있을 것이다. 미약할지라도 몇십 년간 꾸준히 단련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운동을 했다면 이미 몸짱이 됐겠지만, 어떤 것이든지 매일매일 무언가 한다면 내가 변한다. 나는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를 믿게 된다. 그 믿음 하나면 못 해낼 것이 없다. 나도 당신도 할 수 있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이전 15화 내 마음이 지옥 같을 때를 위한 조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