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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Oct 23. 2020

지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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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말 못 하게 힘들 때, 기댈 곳이 없어서 이리저리 휘둘릴 때,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어른이 되면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는 것 같다. ‘다들 살기 바쁜데 내 힘듦이 타인에게 전해지면 그도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나 혼자 감내할 수 있는 것들인데 나만 죽는소리하는 것 같아서 함부로 털어놓기가 힘들다.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아도 해결되지 않는 헛헛함. 아무래도 친구는 내 인생과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이지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너무 가깝게 의지하면 그 친구가 힘들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는 걸까. 특히 회사생활은 그 회사 동료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받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동료에게 말했다가 이야기가 잘못 퍼지면 내 평판만 안 좋아진다. 이럴 때면 집에서도 집 밖에서도 기댈 곳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길 잃은 꼬마가 된 것 같다.

     

  이럴 때 정말 힘들다. 혼자 동굴을 파고 들어갈 때가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인 것 같다. 그런 시기에 내게 가장 도움을 준 존재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화목하거나 서로 가깝게 잘 지내온 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변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변하니 가족도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가깝게 있지만, 누구보다 먼 느낌이 들 때도 있는 사람들. 바로 가족이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없다. 단란하게 캠핑가는 가족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만큼 우리 가족은 서로 뻣뻣하게 대하며 살아왔다. 밖에 나가면 다들 사회생활 잘하며 사는데, 집에만 오면 무언가 서로 벽을 두고 사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방황이 좀 길고 험했다. 이렇게 한 줄로 축약할 만큼 사연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 나는 그 악몽 같은 기억들을 놓아주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 집 형편도 조금씩 나아져 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집안의 가장이지만, 어렸을 때의 가난하고 무력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호시절이다.     


  가족 간의 화해는 다 함께 밥을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언니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내가 집 근처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 계기가 됐다. 어머니는 바쁜 직장생활에도 가족 먹을 것은 늘 신경 쓰셨다. 다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시간. 그 시간이 우리에겐 치열한 싸움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일주일간 멀어져 있던 가족 간 회복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런 줄도 모르고 맛있게 밥을 먹었는데 지금 보니 그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화해의 시간이 되었다.

     

  퇴사 후 시간이 많아져 생각도 같이 많아졌다. 도대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일까. 회사, 대인관계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조금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나와 아주 가깝게 밀착된 가족이 있었다.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먼저 이해해야 했다. 30년간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이해, 이게 참 어려웠다. 그래서 온종일 가족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어렵긴 했지만 이해되지 않던 상황들과 아버지의 과거, 아픔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나쁜 기억은 잘도 잊는 건지 아버지의 방황에 대해 이해 가기 시작했다. 나라도 그 힘든 시간을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내게는 큰 상처를 줬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꿈을 꿨다. 늘 내 꿈속에서 악역으로 나타났던 아버지.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안도하던 나. 잠에서 깨고 나니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나를 괴롭히던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 뒤로도 아버지와 관련된 악몽은 꾸지 않았다.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이해하고 용서하니 내가 편해졌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을 아픔과 상처. 쉽지는 않겠지만, 나와 같은 사례도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이유 없이 우울한 상황이 평생을 지속해 온 사람이라면, 꼭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들여봐야 한다.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일 수도 있다. 거기에서 나를 놓아주어야 한다. 붙잡고 계속 상기하며 상처받는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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