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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밖은 지옥이고 살얼음판이라고 말하는 회사 사장님이 있었다. 그래도 회사라는 보호막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걱정이 없고, 삶을 보장해준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장님은 얼마 못 가 직원들을 자르겠다고 했다. 일하는 성과를 봐서 평가하겠다는 말과 함께. 직원들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잘리기 전에 회사를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시름시름 아팠다. 회사 밖이 정말 지옥일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지옥인데, 내 일이 아니라고 나는 안 자른다고 했으니 마음을 놓아야 하는 걸까? 결국, 나는 그 회사를 나왔다. 그곳은 내 첫 회사. 작은 벤처기업이었다.
그 뒤로도 두 곳의 회사에 더 다녔지만, 미친 상사는 꼭 있었고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소리도 매번 들었다. 자주 듣는 말에는 내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이 말은 무조건 사실처럼 느껴졌다. ‘회사를 못 버티고 나가면 패배자다. 이것도 못 버티면서 어디 가서 일이나 제대로 하겠냐.’ 아주 지겨울 만큼 듣고 질릴 만큼 스스로 말했다. 그 말은 정말 사실일까? 퇴사 후 10개월 차를 지내고 있는 경험담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나는 열심히 돈을 모아두었다. 회사 다닐 때 금전적 여유가 더 없었다. 이는 조기 퇴직을 염원하던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내 나이 때면 모아야 하는 얼마 정도의 목돈. 그 목돈은 지금 고스란히 생계비로 쓰이고 있다. 어쨌든 이러려고 모은 돈이니까 목적에 맞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큰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 매달 월급통장에 꽂히는 급여, 연말에 받던 상여금이 없어서 부모님께 용돈을 자주 드리지는 못하지만, 고작 10개월이다. 나는 7년간 용돈과 상여금을 드려왔다. 지금 못 드린다고 불효녀 취급은 받지 않고 있다. 물론 눈치는 보이지만, 작년보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 당신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으니 인생 전체를 봤을 때는 더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는 올해 내가 가진 재주로 돈을 벌었다. 회사 다닐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림과 손재주로 벌이를 했다. 사실 나는 퇴사할 때 준비하고 나온 것이 아니어서 정말 맨몸이었다. 그때 언니가 운영 중인 공방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도움도 못 되고 언니랑 다투기 바빴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돈도 못 벌고 힘든 자영업자로 지낸 시간이 더 길다. 하지만 의외로 주변 사람들이 내게 일을 맡겨주고 응원해주어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회사생활 하면서 알음알음 활동했던 다른 일들이 내게 인맥을 만들어준 것이다. 너무도 고마운 분들 덕분에 내 그림과 공방 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보다, 지금 죽을 만큼 힘들면 빨리 퇴사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며 병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느라 반년 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조금 더 늦게 나왔으면 정말 어떻게 돼버렸을지 모르겠다. 퇴사하고 내 길을 가고 가족과 관계도 회복하려면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 아니면 나처럼 꼬박 몇 개월은 멍 때리며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회사 밖이 무조건 꽃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내 마음에 따라 지옥이 될 수도 천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도로 불안할 때면 구인 공고를 뒤져가며 지옥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회사생활과 관련된 악몽을 꾸면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러니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에 너무 갇혀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때에 따라서는 회사 안이 더 지옥이라는 것을. 그리고 제때 벗어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림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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