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전하는 편지 #21] by 한재훈
#21번째 편지 - 친한 친구들도 모르는, 어렸을 때의 개인적인 사랑 얘기들.
지금까지 나를 이성으로 좋아해줬던 수 많은 사람들.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인지 몰랐던 때가 있었어.
초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
날 좋아한다고 말하며 따라다니던 같은 반 친구가 있었어.
순수한 그 어린 시절, 참 적극적이었던 그 친구는
다시 돌아보면 참 고마운 친구였어.
비록 사랑을 돌려주지는 못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거든.
자기 집에도 종종 초대해주고
나를 위해 참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어하던 뽀글머리 친구.
어릴 적, 날 좋아한다고 말해준 친구.
하지만 친구 이상으로 지내지는 못했어.
그 시기에 내가 좋아한다고 따라다니던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랑 보낸 시간들이 행복했거든.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서로서로 좋아했었던 친구가 있었어.
웃는 모습이 예뻤던, 서로 많이 웃어주곤 했던.
웃음을 보며 설레기도 했고, 학교 가는 게 재밌기도 했지.
근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둘 다 적극적이지 못했기도 했지만
너무 어려서 누군가를 좋아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이유였어.
중학교 입학 후 1학년, 접점이 없던 학원의 같은 반 친구였음에도
나와 친해지려 하면서 되게 나에게 잘 해주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었어.
한 번은 별 거 아닌 도움에 나에게 집에 가서 먹으라며
미니 도시락을 싸서 나에게 줬던 예쁜 기억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기도 했지만
학원에서만 보는 친구라고 생각해서 친해지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
중학교 2학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3학년 선배에게 고백을 받기도 했어.
방과후수업을 같이 들었는데
사는 곳이 가깝다는 이유로 수업 끝나고
나보고 같이 걸어가자고 하곤 했지.
나를 좋아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였기에,
학교 생활이 즐거웠던 때라
딱히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어서 거절했어.
내가 왜 좋은지, 이런 걸 얘기했는데
그 누나가 고백한 내용을 금방 잊어버렸어.
후에 생각해보니 나를 좋아해서 티를 냈던 행동이었고
나중에 누군가에게 첫 고백을 한 후 거절당하니
문득 그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조금 이해가 되더라.
한 학년이 오르고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에 맨날 먹을 걸 챙겨주고 먼저 말 걸어주는 친구가 있었어.
껌이나 사탕도 챙겨주고, 이것저것 나에 대해 물어보던.
하지만 그 때는 사람들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첫사랑,
이뤄질 수 없는 나의 짝사랑 때문에 마음을 전혀 쓸 수가 없어서,
그래서 무시했어.
고등학교 1학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설렘과 풋풋함이 가득했던 때 사귀었던 친구.
좋았던 추억도 남았고 열심히 좋아하려 했지만
어느 순간, 나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그녀의 말에
상처받는 게 두려웠던 나는 이별을 고했다.
그 때는 그녀가 날 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회피한 내가,
도리어 이별을 고했던 내가 무책임했을 수도 있었음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나를 좋아한다고 먼저 표현해 준 사람들의,
나에게 호감을 표현해 준 사람들의 나에 대한 관심을,
나는 모두 모른 척 무시했었나봐.
나를 돌볼 여유도 없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느꼈고
혼자인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기대면 그 후폭풍이 매섭게 나를 내려칠까봐
누군가가 관심을 주고 사랑을 표현해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어.
그리고 못 본 척 지나갔어.
그래서 내가 벌을 받는 건가봐.
너를 좋아하게 된 내가 너랑 이뤄질 수 없는 벌을 받았나봐.
타이밍이 안 맞다고 매번 못 본 척 지나가던 나였는데
이제는 너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붙잡을 수가 없네.
지금까지 내가 무시했던 사람들도 다 이런 느낌이었겠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내가
사실은 나밖에 모르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런 나였는데 너에게 기대고 싶게 만들었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욕심을 갖게 했어.
이뤄질 수 없는 꿈을.
나의 행동에 대한 벌이지만
내가 잘못한 걸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