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열한 권째.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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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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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심리학> - 웨이드 E. 픽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앞장과 뒷장의 주제가 연결되지 않는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왼쪽 페이지에만 글씨가 있고 오른쪽 페이지는 삽화다. 의식하지 않고 읽으면 목이 돌아간다. 실제로 2/3 지점에서 목 왼쪽에 경련이 왔다. 심리학의 기원부터 오늘까지를 연대순으로 읽을 수 있었다. 심리학 입문자에게 좋은 것 같다.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어떤 이론이 어느 정도 주목받았는지 폭넓게 배우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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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남긴 불안> - 김아라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나온 책이다. <한 권의 심리학>은 21세기 초반까지만 다루었기 때문에 최근의 심리학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며 상담치료를 받는 느낌이었다. 군데군데 언급된 심리학 내용이 <한 권의 심리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이 단계적 독서 효과인가! 늦게 시작한 독서라서 사소한 것에도 놀란다. 늦은 독서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독서에 익숙해지면 무뎌진 감각일까? 술을 하도 많이 퍼먹어서 첫 술의 기억을 잊는 것처럼.



9

<공감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 권수영

글을 잘 쓰려면 공감과 감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골랐다. 글쓰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만한 깨우침은 없었지만 자기 치료효과를 봤다. 8번 책도 치료여서 4일 연속 상담 치료를 받은듯했다. 감수성 훈련, 문학 작품에 공감하는 원리 등 글쓰기에 관한 단편적인 단서를 얻었다. 공감 능력을 갖추려면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할 것 같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이 너무나 맹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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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브런치 이웃에게 추천받은 책이자 나의 첫 문학 소설. 독서 후 출판 연도를 보고 놀랐다. "요즘에 이런 어휘로 책 한 권을 채우는 작가가 있다고?" 독서 경험이 없는 나라도 현대인의 어휘 구사능력은 안다. 30년 후에는 태어나기 힘든 작품이 아닐까? 나의 식견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평범한 작가가 아님은 확실하다. 분명 한글인데 듣도 보도 못한 어휘가 한 트럭이었다.


감상평은 '공허함' 그 자체였다. 여운이 많고 감정이 요동쳐서 이성적인 서평이 힘들다. 지식은 비문학으로 채운다는 편견도 사라졌다. 국사 공부 10시간 보다 배운 게 많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와 <제텔카스텐>에 이런 말이 있다. "스토리로 기억되는 지식이 가장 오래 남는다." 성적은 안 좋은데 책을 좋아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박식했지만 학교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현대 교육은 문제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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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텔카스텐> - 숀케 아렌스

니클라스 루만이라는 독일 학자의 메모 시스템 '제텔카스텐'을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가 창시자가 아니다 보니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검색을 해보면 효과가 있네 없네 논란이 있다. 내가 볼 때는 평범한 자기 계발서에 제텔카스텐이라는 장치를 얹혀놓은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것을 보면 제텔카스텐 자체는 의심할 수 없는 시스템 아닐까? 책에 따르면 메모를 작성하는 방법보다 그것을 활용하는 개념이 중요한데, 효과를 보려면 최소 3~5년은 필요할 것이라 말한다. 수년 동안 본업을 팽개치고 메모, 글쓰기, 독서에 몰입할 수 있을까? 그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제텔카스텐이 없더라도 뭔가 이루지 않았을까? 저자도 그 부분을 언급한다. 현대 교육시스템과 업무 방식 속에서 병행하려면 쉽지 않을 거라고. 니클라스 루만은 학자였다. 내 생각에 제텔카스텐은 연구가 본업인 사람에게 적합한 시스템이다. 할 일 없는 나에게 어울리는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 할 말이 많은 책.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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