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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Oct 29. 2023

13. 일요일 밤에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다.

말레이시아

2018년 여름부터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평생 축구를 사랑해 온 남자친구의 영향으로 시작을 했지만 한 경기, 두 경기를 보다 보니 이제는 내가 먼저 스케줄 체크를 위해 프리미어리그 공식 어플을 다운로드한 후 일정을 역으로 알려줄 만큼 즐기게 되었다.

  

K가 굳이, 새벽에 일어나서 축구경기를 시청하는 것이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던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결과를 보면 될 텐데 굳이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축구를 보다니..... 경기를 보고 싶으면 다음날 녹화 방송을 보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은 바뀌었다. 축구 경기 시청은 적나라한 감정이 표출되는 90분의 호흡 빠른 영화 혹은 드라마다. 딱 하루만 개봉한다. 시놉시스만 읽거나 요약영상을 봐도 되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기다리는 시간, 경기 한 시간 전 나오는 라인업을 보고 대충 경기 내용을 예측하는 시간, 경기 전 광고를 보는 시간, 휘슬이 불고 공 하나와 선수들, 심판의 움직임 - 더불어 각 감독들의 지시 스타일과 선수, 감독, 현장 관중들의 감정 표출을 구경하고, 나아가 나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 변화를 보고 탄식 혹은 환호를 함께 하는 것, 이 모두가 '경기를 시청하는 것'에 포함된 것이다.


거의 매주, K와 나는 쿠알라룸푸르 부킷 빈탕 창깟에 있는 바에 들러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시청했다. 둘 다 맥주 한 잔씩 홀짝이면서. 시차로 인한 늦은 시간의 스포츠 경기 시청에 맥주는 물론, 안주도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축구를 좋아하게 됨은 곧 뱃살을 축적하는 길이다.

내 뱃살은 계속 늘어났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나중에는 단골이 돼서 여자 사장님이 내게 맥주 한 잔을 서비스로 준 기억도 있다. 나도 참 운이 좋았다. 내가 프리미어리그 시청을 시작한 해, 토트넘이 18/1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해서 준우승까지 갔으니 그 과정이 얼마나 재밌었을지 말할 필요가 없다.


요일 밤, 여유롭게 경기 시청을 할 때마다 시간부자인 내 상태를 새삼 다시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재밌었을까?) 월요병 없는 주말은 참 평화롭게 흘러갔다. 


퇴사 후  달은 마치 토요일을 30일로 길게 늘인 기분이었고, 두 번째 달은 마치 일요일을 31일로 길게 늘인 듯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말레이시아를 떠나야 할 날이 다가왔다.


- 방 장기 렌트가 쉬운 시스템일 것

- 물가가 저렴해서 돈 스트레스의 리스크를 최대한 없앨 것

- 너무 멀지 않을 것


약간의 고민 끝에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태국 치앙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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