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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유진 Nov 06. 2020

남편 따라온 사람이라고요?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남편 따라온 사람이라고요?


외지인의 도시 세종에서는 직장 때문에 이주한 가족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의 직장 이전이 직접적인 이주의 이유이기 때문에 ‘누구를 따라 세종에 왔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해요. 이 인터뷰집은 제 자신을 그렇게 설명할 때마다 느끼는 모순된 감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온 것이 맞기도 한 데 아니기도 하거든요. 순전히 자발적으로 세종에 온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기준과 계획을 세우고 이주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따라온 아내라고 쉽게 설명되는 걸 그대로 두면 이 모순 속에서 괴로워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일 예전처럼 서울에서 살고 일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면 전혀 알지 못했을 감정이예요. 시간을 두고 일련의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본 결과, 저는 존중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 일과 삶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를 모으고 담고 나눠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지역 도시로 이주한 누군가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국가가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복합도시 세종시를 출범시켰고 뒤따라 155개의 공공기관이 원주, 울산, 나주 등 전국 13개 도시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해 본인이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결혼한 부부라면 어느 한 쪽이 지역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한 쪽이 자기 직업을 포기하거나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할 가능성도 생겼습니다. 아이가 있거나 임신을 계획하는 상황이라면 더 복잡해지죠.


이 과정에서 여성이 일을 포기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세종시의 기혼 여성 대비 경력단절 여성 비중은 24.8%(1만 7천명)로 전국에서 가장 높습니다¹. 국가지역균형발전정책이 성평등과 어긋나지 않고 함께 가려면, 지역의 신생 도시로 이주한 뒤에도 본인 일을 이어간 여성 관점의 서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의 사적인 세종 이주기>는 결혼 후 세종으로 이주한 30대 여성 인터뷰집입니다


평균 나이 33세, 경력 8년 차, 세종 이주 4년 차의 일하는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이들 중 5명은 아이가 있고요. 이주 과정, 경제 활동, 가족계획까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택해왔는지 물었어요. 때로 일과 삶이 서로 충돌할 때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일에서 얻는 유능감과 삶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는 감각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주기’라 쓰고 ‘과도기’라 읽습니다.

익숙한 삶에서 튕겨 나와 헤매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전의 삶에서는 자신 있었던 것들이 새로운 곳에선 무력해질 때 두려움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점차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여지가 생겼습니다. 과도기가 품은 가능성 그리고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 두는 탐색의 태도를 자연스레 장착했습니다.

 


퍼즐 조각들을 상황에 맞게 맞춥니다.

결혼 이후 의사 결정은 다차원 방정식으로 최적화 값을 찾는 과정인데, 거기다 지역 이주라는 변수까지 있으니 고난도 문제가 됩니다. 해결책은 최고의 선택이 아닌 최적의 조합에 있었고, 덜 중요한 것은 마음 편하게 포기하고 대신 잘하고 싶은 영역에 집중했습니다. 서울-세종 출퇴근에 교통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대기업의 안정성을 내려놓는 대신 워라밸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미뤄두거나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영원하지 않아요. 삶의 어떤 구간에서는 이 선택을 했을지라도, 그다음 단계에서 새롭게 또 최적의 선택 조합을 찾을 거니까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게임 같아요.

 


그렇기에 세종은 정착지가 아닌 정류장입니다.

세종에서 평생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계속 탐색합니다. 경력의 발판이 될 대학원에 가고, 이력서를 계속 업데이트하며 기업 면접을 제안받을 통로를 열어 놓기도 해요. 대도시를 떠나 소도시에 살아보니 자연과 더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소도시에서 집 짓고 살겠다는 계획을 그려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의 속뜻은 불안입니다.

‘서울에 있었다면 더 기회가 많았을 텐데, 덜 외로웠을 텐데’ 와 같이 내 선택이 의심 될 때도 있어요. 이 어려움이 환경의 문제인지 의지의 문제인지 헷갈리는 내적 갈등도 생겨요. 그럴 땐 내 의지의 쓸모를 믿었습니다. 누군가 떠밀어서 시작한 일을 좋아하고 잘하게 된 경험이 다들 하나씩 있지 않은가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언제나 함께 온다. 그중 무엇을 중심으로 내 과거를 이야기로 엮을지는 내 선택이다. 내 이야기에 대한 편집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².”는 말처럼 중요한 건 내가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을 단단한 이야기로 만드는 것입니다.



세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닿았으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결혼을 고민하는 장거리 커플, 주말 부부, 지역 이주를 고민하는 가족 등 이들이 지역 이주를 계획할 때, 한 명의 전적인 포기나 희생이 아닌 함께 원하는 삶을 설계해볼 여지가 생기기를 바라봅니다. 세종으로 이주해서도 내 일을 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용기는 먼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 흐르는 데서 나오니까요.



가능하다는 말과 레퍼런스가 많다면, 내 선택에 좀 더 확신을 갖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원시림에 길을 내듯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이 있다면, 어쩌면 내가 새롭게 선택지를 만들어 볼 용기가 나지 않을까. 이주 후에도 계속해서 일하는 여성들이 더 잘 되어야, 계속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만 품었던 질문을 이제 입 밖으로 내뱉으며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성들과 함께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나봅니다.



1. <경력단절여성 현황>.통계청. 2019

2. <일하는 마음>. 제현주. 어크로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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