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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유진 Nov 06. 2020

남편이 아닌 내 직장 때문에 이주하다

남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입장에 서서

☕️ Meet 현모 현모님은 국책연구단지 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문헌정보학과를 나왔고 대학원 졸업 후 첫 직장을 9년 넘게 다니고 있지요. 현모님의 직장이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가족이 세종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육아 휴직을 하며 남편과 함께 쌍둥이 남매를 키우고 있어요. 아내의 직장으로 가족이 이주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처음 세종시를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희 회사가 먼저 세종으로 이전했고, 경기도 광명에서 KTX 타고 2년간 출퇴근을 했어요. 세종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12월, 남편이 교회 개척을 결심하면서 같이 내려오게 되었어요. 교회 개척은 2017년 3월에 했고요.



장거리 출퇴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셨어요?

힘들었어요. 광명역에서 오송역까지 KTX를 타고 와서 셔틀버스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출근했죠. 그나마 출퇴근 시간이 거의 일정해서 다행이었어요. 출퇴근 핑계로 야근을 조금 덜 하기도 했고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거의 8시가 넘었거든요. 남편이 그 당시 광명에 있는 교회의 부목사였고 다행히 광명역에 KTX가 다녔기에 출퇴근이 가능했어요.




처음에 장거리 출퇴근을 생각하고 지역을 맞추셨던 것은 아닌가요?

그런 건 아니고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남편이 광명에 있는 교회로 가게 되었어요. 저희 회사도 마침 그해 세종시로 내려가게 된 거죠. 그래서 내가 세종시로 출퇴근을 하겠다고 했어요. 계획했던 것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출퇴근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2년쯤 지난 후 제가 세종시로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남편도 그때쯤 교회 개척을 생각하고 같이 내려오게 되었어요.



주말부부도 한 번 생각해 보셨어요?

아니요, 주말부부는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남편이랑 저는 주말부부는 하지 말자는 주의였고요. 그래서 계속 같이 있으려고 세종시에 내려오게 된 거죠. 만일 계속 광명에서 세종으로 출퇴근해야 했다면 제가 그만두거나 이직했을 것 같아요.



세종으로의 이주를 고려할 때 남편분과 의견 차이가 있었던 적도 있나요? 남편분이 하던 일을 접고 세종에 내려올 결심을 한 과정이 궁금해요.

세종에서의 교회 개척에 대해 남편과 1년 이상 정말 많이 이야기하고 고민했어요. 마침 남편이 개척에 대한 마음도 있었고요. 원래 목사님들은 다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 (웃음)


항상 마음 한 켠에 생각이 있지만 선뜻 행동하기는 쉽지 않은 그런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아 세종에서 개척할까’하는 장난 섞인 말로 시작해 점점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거제, 남편은 평택이 고향이라 지방에 내려가는 것에 대한 큰 부담은 없었던 것 같고, 또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도 좀 있었고요.



세종에 오신 지가 꽤 되셨군요?

네. 한 4년 정도 되었네요. 논의를 할 때는 결혼 직후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이었고 지금은 서른다섯이니까. 혈기왕성한 때였죠. 그때는 아이도 없었으니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남편이 선뜻 결정해 주었던 것 같아요. 고맙죠. 제 직장을 따라오는 건데 흔쾌히 동의해 준 것이니까요.



개척교회를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정한 삶이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부분 때문에 힘들거나 하지 않으셨나요?

남편이 처음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개척 직후에는 성도님이 거의 없었거든요. 시어머니와 세 명이 예배드릴 때도 있었고 그 후에는 저희 두 명만 했고요. 돌이켜보면 저는 그 당시 회사 일로 정신이 없어 도움을 많이 못 주었어요. 하필 제가 이사 오는 시점에 저희 회사 팀장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면서 적응이 어려웠던 터라, 저는 그 당시 남편의 어려움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남편분은 주로 어떤 점에서 많이 힘드셨을까요?

미래에 대한 불안정함이요. 정말 맨땅에 헤딩한 거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하려니까 미래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매주 성도님이 없는 상태로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나 봐요. 어떤 분은 예배드리러 왔다가 사람이 너무 없으니 그냥 가시기도 했고요. 어느 날은 예배 전날 교회에서 설교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어딘가 멀리 떠나버리고 싶었대요. 도망가고 싶었던 거죠.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진 거예요.


교회에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옆에서 보셨을 때는 좀 어떤 마음이셨어요?

안타까웠죠. 남편한테 너무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고 항상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한 3년 정도만 해보고 더 이상 성도님이 늘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그만하는 거라고 늘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었고요.

지금도 그런 마음인데, 생각해보면 제가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웃음) 함께 힘들긴 했어도 저는 직장에서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었기에 그런 상황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종으로 이주하고 나서 직장생활은 어떠셨어요?


너무 좋았죠. 일단 회사와 집이 가까워졌으니까요. 장거리 출퇴근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KTX 타고 매일매일 다니면 삶의 질이 떨어져서… 그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회사 전체가 세종으로 이주한 케이스라 서울에 있을 때와 직장생활은 비슷해요.


그래도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전한다는 결정이 나고 나서 직원의 절반 정도는 퇴사했던 것 같아요. 세종에 내려와서도 일부 퇴사하고.



직원들이 퇴사하는 것은 역시 지역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던 거겠지요?

그렇죠. 서울에 계속 있고 싶은 분들은 이직이나 다른 방법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전에 계셨던 팀장님도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시면서 그만두셨고요.



세종에서의 개인적인 삶은 어떠세요? 만족하는 편이셨나요?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계획 신도시라서 그런지 도시가 깨끗하고 아파트 주거환경도 좋고 공원도 많고요. 아이 키우기 좋아요. 그리고 친정은 거제도, 시댁은 횡성에 있는데 세종은 딱 중간에 있어서 가족을 만나러 가기에도 편한 것 같아요.

저는 복잡한 도시의 삶보다 이렇게 공기 좋은 조용한 곳을 더 좋아하거든요.회사도 가까워 매일 지옥철 타고 출퇴근할 필요도 없어졌고요.



반대로 세종에 살면서 느낀 단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친구들이 다 멀리 있다는 점. 친구들이 주로 서울에 있어서 연락이 많이 끊기고 자주 못 보는 게 단점인 것 같고, 문화시설이 부족한 것. 미술관, 공연장 이런 것들이 없는 것. 그게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은 적성에 잘 맞는 편인가요?

저는 잘 맞는 것 같아요. 문과대에서 전공을 선택할 때 문헌정보학과로 들어갔지만, 원래 사회복지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학을 이중 전공을 하면서 종합복지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적성에 안 맞는 거예요. 저는 내성적이라 대중 앞에 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예상외로 사회복지사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외향적이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빠르게 포기를 하고 공공 도서관 공무원 시험을 한 달 정도 준비하고 있는데, 우연히 학과 선배가 대학원을 가서 대학 도서관 사서를 준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줬어요. 그래서 대학원을 갔다가 지금 이렇게 전문 도서관 쪽으로 취업하게 된 거죠. 다행히 적성에 무척 잘 맞아요. 저는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집중하며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딱 그런 일이거든요.



만일 어떤 이유로 인해 지역 이동이 필요하다면 현재하는 일은 진입장벽이 좀 낮은 편인가요?

아무래도 서울과 수도권에 도서관이 제일 많긴 하지만, 그래도 공공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은 전국에 다 있고 최근에는 연구기관도 지방 이전을 많이 했거든요. 다른 직종에 비해 지역을 이동하는 데 있어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것 같아요.



현모님께 일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연구원이나 박사님들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해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고, 제가 한 일이 도움이 되어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면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을 얻지요.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난 후로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아직 복직 전이라 워킹맘은 아니지만, 순위를 따지자면 아이가 제일 우선이고 아무래도 일은 그다음이 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일을 그만두고 싶진 않아요. 일은 계속하고 싶은데 복직 이후의 육아가 고민되어 저희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해주시면서 거제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오셨거든요.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그런 여러 상황을 무릅쓰고라도 계속하고 싶은 것. 그게 일이기도 해요.



육아휴직을 연장할 때 회사에서 싫어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은 없으셨어요?

고민 많이 했죠. 그래도 저희 회사는 공공기관이라 승진 단계가 많지 않아요. 승진과 관계없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편이라 육아휴직을 많이 하는 분위기예요. 원래 육아휴직이 아이 한 명당 1년이었는데 제가 육아휴직 하는 동안 3년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러면서 분위기가 좀 더 가정 친화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팀장님께 처음 말씀드릴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흔쾌히 알겠다고 해 주셨어요. 팀장님도 여자분이고 워킹맘이셨거든요.


원래는 육아휴직 1년을 내는 것도 좀 눈치 보여서 10개월만 내고 그랬었는데, 언제부턴가 다들 1년을 내게 되었어요. 저는 쌍둥이라 한 명당 1년씩 해서 2년을 이어 냈는데 다들 이해해 주셨어요. 공공기관이라 그런 분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웬만하면 연장은 안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일찍 보낼 수 없어서 1년 더 연장하게 되었어요.

쌍둥이들과 함께

부모님께서 육아를 같이해주고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만일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상상이 잘 안 돼요. 저는 쌍둥이라 더욱 그럴 수도 있는데 도움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어머니가 출산 직후 같이 살면서 계속 돌봐주셨었거든요. 중간중간 시어머니께서 오셔서 바톤터치 해 주셨고, 나중에는 아버지께서도 같이 있어 주셨어요. 그 당시 제가 잠도 잘 못 자고 산후우울증도 심하게 와서 저희 아버지가 저를 보고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올라오셨거든요. 출산 직후에는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제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요.



임신과 출산이 여성 개인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예전 내 삶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확 바뀌었어요. 결혼 초에는 아직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 아이가 너무 빨리 생기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간절히 원하지 않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가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병가 휴직 후 시험관까지 하게 된 거죠. 회사에 다니면서 인공수정도 2번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난임 휴직을 내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시험관을 시작했는데 감사하게도 1차에 바로 쌍둥이가 생겨서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고 있네요. 저는 특히 쌍둥이라서 아이를 가진 후의 삶에 임팩트가 더 컸던 것 같기도 해요.



보통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엄마가 되고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를 잃어가는 문제는 내가 계속 마인드 컨트롤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늘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지 말고 균형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제 삶만 돌아봐도 나는 개별적인 인격체이기 때문에 절대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지는 않았거든요. 저희 아이도 그럴 것 같아요. 나와 아이를 분리해 별개의 생명체로 생각하고, 저는 좀 더 나의 삶을 사는 사람이고 싶어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남편이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부인이 가정의 일을 좀 더 돌보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지금 반대로 하신 경우인데 그런 것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은 없으셨나요? 내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라든지.

제가 이 직장을 계속 다니려면 남편이 세종에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요. 남편은 가정을 세심하게 돌보는 사람이고, 저와 정서적으로 너무 잘 맞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해도 괜찮을 만큼 결혼 생활이 만족스러웠어요. 제 직장이 거의 정년퇴직까지 갈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니까, 남편이 조금 덜 안정적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죠.


제가 이 직장을 계속 다니려면 남편이 세종에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것들이 잘 맞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해도 괜찮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남편이 포기해 주는 것이거든요. 보통 부목사님들은 교회를 2~3년 안에 옮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사모님들도 같이 이동하느라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죠.


아이가 태어난 후엔 두 생명을 먹여 살려야 하니 걱정이 잠깐 되었는데, 잘 회복하고 나서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아요. 산후우울증이 있을 때는 모든 게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자신감도 좀 생겼고 걱정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여자의 삶은 임신과 출산으로 하나의 변곡점을 맞이하잖아요. 그러면서 혼돈과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도 말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임신 출산을 경험하며 제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거든요. 아이를 키워나가는 과정이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라 혼란스러웠고 늘 모험하는 기분이거든요. 그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걱정되고 힘들었는데 그것을 좀 내려놓고, ‘실패해도 괜찮다, 실수해도 또 하나 배워가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까 좀 괜찮았던 것 같아요.


내년 10월에 복직하는데 사실 걱정이 돼요.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싶은데. 그런데 그냥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청소 좀 안 하고 집안이 좀 더러워도, 애들이 좀 잘못 커도 괜찮아. 나는 그냥 사랑하는 데 집중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지속가능한 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기에 육아로 인해 상황이 조금 어려워져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거기에는 희생과 헌신이 필요할 수도 있고, 감정만으로 가능하진 않지만요.


저는 정말 제 일이 좋고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하는 게, 무척 보람 있거든요.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려면 일단 정보가 있어야 해요.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거든요.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인데 정보인 로우 데이터가 있어야 거기서 새로운 것을 추출하고 분석할 수 있어요. 그런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원하는 정보를 찾아서 주고, 그분이 그것을 가지고 좋은 성과를 내도록 서포트를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껴요.

일을 사랑하니까 희생도 헌신도 할 수 있는 것이고, 힘들어도 계속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Editor’s Note by 상인
아내가 남편의 직장을 따라 기존의 삶을 내려놓고 이주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하지만 현모님의 경우 본인의 직장을 따라 남편이 함께 이주를 결심한 케이스였다. 직업적 특성이 있어 가능한 부분이 있겠지만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쉬운 결심은 아닐 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 공백기가 생길 수 밖에 없기에 더욱 고민스럽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이주를 결심하게 된 배경과 과정에서 성별은 큰 제약이 되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오랜 시간 고민하고 면밀히 다듬어 나간 것이 느껴졌다.  때로는 새로운 도전이 힘들게 느껴졌고, 아이를 키우며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현모님은 주어진 삶에서 나름 행복의 답을 찾아가며 세종 생활을 즐겁게 영위하고 있었다. 
인터뷰 일자: 2020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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