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항으로 떠난다

by 미아취향



가끔 인천공항 전망대에 가서 의자에 앉아 잠시 상상한다. 이제 막 이륙한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도 저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있는, 그런 상상 속에 잠긴다.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비행기를 보고 있다.



오래 전에, 회사에서 너무나 힘들고 회의감을 많이 느끼던 날들이 지속되었다. 왜 나는 이렇게 힘들기만 한 걸까, 원망 많이 하던 날이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왔고 읽지 않은 메시지는 늘 두 자리 숫자였다. 나를 찾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컴퓨터와 멀어지고 싶었고 주변 사람들과 인사조차 무시하고 싶은 날이 반복되었다. 그때 내 가방엔 여권이 있었다. 언제든지 금방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컴퓨터 바탕화면엔 사직서를 두고 가방엔 여권을 넣어 다녔다.



얼마 안 있다가 크리스마스가 왔고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혼자 인천공항으로 갔다. 집에서 공항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공항 리무진도 있지만 굳이 타지 않고 지하철 타고 갔다. 긴 거리와 시간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다. 공항을 간다고 하니 신나서 일까,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 많은 구간을 지나서부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랫동안 가야 하니, 집중하기에 딱 좋다.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책 한 권을 다 읽게 된다.

인천공항 역을 내려서 출국장과 입국장을 지나 전망대로 향했다. 한 눈에 지금 보고 있는 공항내부와 이륙하는 비행기들을 담고 싶었다. 전망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비행기가 오고 가는 걸 감상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날에. 이런 기분 처음이었다. 해외 여행 갈 때 느낀 것 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저 비행기에 내가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속이 탁 틔는 기분이랄까.

그 날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었다.. 평소에 간간히 때우는 정도의 밥은 먹지만 나만을 위한 요리를 먹은 건 처음이었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시켜 여유롭게, 천천히 씹고 음미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 곳에선 나를 아는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공항에만 있어도 왠지 혼자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라 괜히 설레었다.



입국장과 출국장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했다. 짐을 부치는 사람들, 출국장을 찾는 사람들, 음료 한잔 사러 가는 사람들,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 피곤해서 연신 하품 하는 사람들, 급히 어딘가로 향해 가는 사람들 등등.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여긴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니까.


그때 이후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마다 공항으로 왔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설레고, 가서 비행기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즐겁다. 저 멀리 가고 있는 비행기를 보며 상상하다가 정말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왠지 이 곳에서 꿈을 상상하면 꼭 이뤄지곤 했다.



도피처이자 꿈꾸고 실현해주는 곳, 나는 공항에 여행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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