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 대학교 입학 원서 쓸 시기에 부모님께 건축학과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한숨을 쉬셨다. 그때는 이미 체념을 하셨을 때였다. 다른 학과를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키 작고 힘 없는 여자애라고 건축과는 힘들 거라고, 나를 설득하다가 평소에 건축학도가 되고 싶다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기에 결국 포기 하셨다. 고3 수험생인 나는 건축가가 정확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면서 TV에서 본 멋진 모습을 보며 나도 멋진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내방에 가선 걱정을 많이 했었다. 마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만은 없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걱정은 잠시 뒤로 미루고 결국 건축학과로 입학했다. 그리고는 즐거웠지만 힘들었던 학교 생활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설계 수업의 양과 과제가 모든 수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하기도 했었고 그 과정에서 동기들, 선후배들과 함께 하며 서로 의지하고 즐거웠던 날이 많았다. 취업의 길을 정할 때, 대부분은 건축 설계 쪽으로 취업을 하지만 나는 건축 설계가 아닌 인테리어회사로 방향을 바꾸었다. 다들 연봉이 적고 일도 힘든 고생길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 일을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하고 싶으니까 해 봐야 했다.
7년 정도 몸담았던 인테리어 설계 일. 처음부터 잘 해낼 거라고,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초반의 3~5년 정도 고생이란 갖은 고생은 다 한 것 같다. (아직 앞으로 더 큰 고생을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써는 초년의 날들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야근과 철야를 매일 하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었다. 먹성이 좋은 나도 입맛이 뚝 떨어지고 일하다가도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빈 속이어도 구역질을 하곤 했다. 동료들끼리 점점 말이 없어지고 서로 예민한 상태이기에 비관적이고 회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 둘러 쌓여 서로를 힘들게 했다. 설계 도면을 가지고 현장에 처음 나갔을 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작고 어린 여자애 왔다고 능글맞게 대꾸하며 무시하고 장난치던 사람들, 기억하고 있다.
많이 울고 원망하기도 했다. 새로운 직업으로 갈수있는 길을 찾아보기도 했고 불안한 마음에 자격증과 영어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정착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원망하고 불평만 하기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얻은 것도 참 많았다.
힘든 날에 서로를 위로하며 응원한 친구, 선후배들. 나를 신경 쓰고 서로 챙기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학교에서 과제할 때 모형을 만들고 스케치를 하며 나름 손재주가 발달했다. 회사에서 힘들게 일했어도 참고 버티면서 일하는 ‘깡’이 생겼다. 동료애가 생기고 친해진 사람들이 있는 회사로 옮기거나 다른 회사에서도 도움을 주는 것과 같은, 인간관계가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게 되었다. 덩달아 인생선배도 생겼다. 설계하고 현장 감리를 했던 날이 많아서 일까, 현장 사람들(소장, 반장님들, 현장 인부들)과 조율하며 현장에 맞추어 웃으며 더 좋은 방법을 찾아 나갔다.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어 나중에 우리 집 고칠 때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온 몸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지나고 나니 요령과 여유가 생겼다.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전에 없던 방식의 서점을 운영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공이 보장된 완벽한 선택은 없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거나 실패를 하지 않고 사는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미리 걱정하고 몸을 사리기보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을 하자.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정지혜
힘들어도 즐거웠고 지금의 삶에서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해결하고 버티는 힘을 길러주었던 소중한 경험이다. 어디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고 몸이 기억하고 있다. 또 경험은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다음 번에 내가 어떤 길로 갈 지 결정하는 데에 있어 등불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의 가능성을 알게 해 주고 다음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늘 경험의 힘을 믿어 왔다. 무엇을 했든, 어떻게 시작을 하고 끝맺음을 했든, 목표에 도달했든 못했든 간에 여러 교훈을 주었다.
건축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공부를,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을까. 다른 학과로 진학했으면 어디로 취업을 했을까? 여러 사람들의 말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해보지도 않고 참는다는 건 더 힘들지도 모른다. 두려워서, 앞 일이 걱정되어서 포기하는 순간은 무수히 일어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동시에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우리가 뭔가를 하게 되면 단순히 목표로 했던 것만이 아니라, 기대치 못한 보너스까지 덤으로 받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도, 힘들어도, 귀찮아도, 뭐라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온전히 나답게> 한수희
그래, 생각했던 것 뭐라도 해 보자. 귀찮을 수도 있고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두렵기도 하며, 여러 시행착오가 생기겠지만, 일단 원하는 새로운 곳으로 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민다. 그리고 움직이며 들어가 본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엇이든 일어난다. 성과를 이뤄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 대신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내가 했던 선택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받아들이고 다시 짚어보면 꼭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늘 시행착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살짝 열려 있다.
내가 한 선택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