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아도 된다. 버릴 수 없다.

by 미아취향


“할머니 버리지 그러셨어요”

할머니께선 이야기하다 말고 창고로 가시더니 내가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아직 가지고 계신다고 그걸 찾아서 주셨다. 주황색의 장난감. 무척이나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장난감을 보고 있으니 왠지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 출근길에 동생과 나는 우리 집과 가까운 할머니 댁으로 가서 지냈었다. 근처에 있는 어린이 집을 다녔었고 삼촌이나 고모가 나의 하원을 책임져 주었다. 엄마가 퇴근하면 손잡고 집으로 왔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서 예쁨 듬뿍 받으며 컸다.



프레젠테이션1.jpg 주황색 꼬꼬. 데리고 왔다.


할머니께선 우리 아기가 사랑스러워서 입을 다물지 못하셨다. 활짝 웃으며 장난감을 나에게 주시는데 마음이 울컥한다. 때가 타고 낡은 장난감만큼이나 우리 할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얼마나 오래됐는데, 이걸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계시다니…

“네가 좋아하던 건데 이걸 어떻게 버려. 네가 가지고 노는걸 나는 아는데 다른 건 다 정리해도 이건 안 버렸어. 네가 나중에 아기 낳고 오면 주려고 놔뒀어.”

떼가 타고 낡아도 물티슈로 잘 닦아놓으니 반질반질 해졌다. 오래된 추억은 장난감의 색깔만큼이나 선명하게 남았다.



가을이 되고 우리 아기가 입던 짧고 얇은 옷을 정리하고 긴 내복을 꺼내었다. 짧은 옷을 서랍 깊숙이 넣다 보니, 내년에는 이 옷을 아마도 못 입을 것 같았다. 초여름에 입던 내복도 꺼내서 다시 입혔는데, 옷의 팔은 괜찮은데 다리가 짧아져서 더 추워지면 못 입을 것만 같다. 입으면 요정같이(엄마, 아빠 눈엔) 예뻐서 더 입히고 싶은데 현실은 무릎이 나와버린다. 서랍 정리를 해야겠다. 사이즈 작은 긴 옷은 다리 길이만 안 맞기 때문에 조금 더 입을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작아진 배냇저고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눈엔 아직 이 배냇저고리를 입혀도 옷이 커서 허우적거리던 우리 아기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데… 왠지 버리고 싶지 않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만 8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기, 장난감들도 한 번 물갈이를 하고 있다. 누워서 모빌을 보고 있는 바운서, 가장 좋아하던 장난감이었는데 지금은 여기에 눕혀 놓으면 뒤집고 발버둥 치고 있어서 5분 이상 눕혀 놓지를 못하고 있다. 비스듬하게 눕혀 놓던 쿠션은 이미 졸업했기에 정리했다. 가장 좋아하던 모빌도 며칠에 한 번 보여줘야 좋아하기에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몇 달 전만 해도 매일 쓰던 어린 아기용 아기 띠도 처분했다.




비워야 할까.

집에 보관하고 있기엔 공간이 넉넉하지 않기에 정리하고 버리려고 하다 보니, 우리 아기가 어떻게 가지고 놀고 어떻게 입고 썼는지, 함께 한 이야기들과 장면이 하나 둘, 계속 떠오른다. 사실 이것들을 천천히 정리하고 싶었는데, 변하고 있는 계절만큼이나 우리 아기도 어느새 한 뼘 씩 더 자라고 집에 둘 곳도 없으니 정리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안 쓰는 작고 큰 장난감들, 우리 아기가 여기서 어떻기 지내고 놀았는지 잘 아는데. 모두 다 기억하고 있기에 차마 버리질 못하고 있다. 아기와 함께 살며 만든 작지만 소소한 추억이 옷과 장난감에 묻어 쌓이고 있었다.

그래, 많은 것을 다 정리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추억이 겹겹이 쌓인 장난감이나 옷은 간직하기로 했다. 할머니께서 내 장난감을 보시며 오래전 추억을 기억하시는 것처럼 나도 이걸 보면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주룩 흐른다. 엄마가 되니 사소한 것에도 눈물 나는 날도 많아진다.


쓸모가 없다고 해서 버릴 순 없었다. 이 장난감으로 나와 할머니의 추억을 오래 기억하고, 우리 함께하는 날과 추억의 것들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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