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나와서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중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은 몇 번 나오긴 했으나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멀리 외출을 한 건 출산하고 처음이었다. 그것도 아이와 함께 나가는 것이 아닌 나 혼자! 혼자서 나왔다. 약속 장소가 정해졌을 때 긴 거리, 긴 외출로 인한 내 빈자리가 걱정되었다. 남편과 아이, 둘이서 괜찮을까. 약속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 강을 건너 서울을 동그랗게 달리는 2호선의 반 원 정도의 거리였다. 이제 걱정도 달아나고 남편과 아이가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밤에 지하철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이 많든 없든 신기하고 즐겁다. 집 밖에서 에너지를 한껏 받았으니 집에 가서 사랑하는 두 사람을 꼬옥 안아주고 이 에너지를 주고 싶다. 힘이 불끈 불끈 나게 해 주는 내 사람, 둘. 더 아끼고 사랑해줘야지.
아기는 엄마가 나갈 준비 하는 동안 내내 껌딱지처럼 따라다닌다. 머리를 말리면 옆에서 유심히 쳐다보고 옷을 갈아입으려 안방 가면 따라 들어와서 옹알이하고 양치하러 욕실 들어가는 것까지 따라왔다. 나간다고 현관에서 손을 흔들고 있으니 눈이 똥그래져서 엄마를 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문을 닫기가 아쉬워 ‘까꿍’ 열었다 닫았다 몇 번 반복했다. 아빠가 재운다고 안으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엉엉 울어대는 엄마 품이 좋은 아기다. 요즘 따라 더더욱 엄마를 찾고 있으며,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놀다가도 운다. 엄마 말고 다른 사람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걱정할 수밖에. 그래도 어쩌나, 중요한 외출이었기에 (미안하지만) 집을 나오자마자 신이 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휴대폰 볼 새도 없이 즐겼다. 이 시간 안에서 최대한 집중해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집에서 먼 곳까지 긴 시간 동안 나와 있기 힘들기도 하고 자주 오지 않는 기회이기에 너무나도 중요했다. 나에게 벌어지는 이 순간을 오로지 ‘내 것’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어느덧 틈이 생겼고 남편에게 온 메시지 읽다 보니 아기는 넘어져 이마에 혹이 났고 엄청 울었다는 걸 알았다. 걱정이 되어 전화통화했다가 곧바로 영상통화를 했다. 아기는 휴대폰 화면에서 엄마를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엉엉 울었다. 그것도 눈물을 펑펑 쏟아가며 울었다. 남편 말로는 분명 방금 전까지 엄청 잘 놀았다는데 영상통화하자마자 운다고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보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그렁그렁 금방이라도 쏟을 것 같았다.
“우리 뚜이가 자고 있으면 엄마가 가서 안아줄게. 아빠랑 목욕 재미나게 하고 잘 자고 있어.”
마음은 힘들지만 남편이 잘 돌봤고 내가 집에 갈 때까지도 잘 돌 볼 것이다. ‘서로 잘 적응하고 있겠지’ 믿고 있으니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지금 출발해도 집에 가면 아이가 잘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시간까지 충분히 즐기고 흡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어보니 아기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고 이마에 혹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자는 아기를 보고 잠깐 안아주고 방을 나오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안일을 끝내고 쉬고 있었던 그는 집에 오자마자 이야기를 쏟아내는 나를 보면서 궁금해한다. 종알종알 얘기를 다 하고 나니 남편이 그랬다.
“자기 이렇게 나갔다 오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내가 세온이랑 같이 있으면서 놀아주고 먹이고 재우고,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 밥 먹었는데. 자기가 매일 하는 일인데 난 오늘 하루 이렇게 하루 했는데도 많이 힘들더라. 여태 고생 많이 했어. 오늘처럼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사람들 만나서 얘기도 하는 게 참 좋을 것 같아.”
순간 울컥했다. 오늘 여러 번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아기 낳고 남편에게 많이 서운해하고 소홀하게 대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이내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힘들었던 나를 알아주고 보듬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많이 났다. 엄마 없이 아빠랑 즐겁게 놀고먹고 씻고 잘 자는 아이와 할 일을 끝내고 나를 기다리는 남편까지, 든든한 이 두 사람 때문에 더 힘을 낼 수밖에 없다. 밖에서 여러 사람들과 웃음으로 가득 채우고 마음까지 배부르게 하며 들어왔고, 집에서는 고마운 내 사람 때문에 어깨가 으쓱거린다. 오늘로써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커지고 더 단단해졌다.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