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깊고 단단하게 내려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수동적, 인지적 안일함에 빠지게 됩니다. 그 이상의 깊은 성찰은 배제한 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거지요. (p.295)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지음
며칠 째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두꺼운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틈틈이 읽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조용할 때 시간을 투자해서 읽고 싶어서 새벽에 읽기 시작했다. 매일 읽을 때마다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 뿌듯한 마음으로 읽고 있었는데 유난히 날 때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편지체의 글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책은 나에게 자만하지 말라고 말한다. 책 좋아한다고, 책 좀 읽는다고, 책을 통해 얻는 것을 잘 흡수하고 있다고 판단하며 오만했던 건 아닐까.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발췌했던 문장들이 좋다고 인덱스를 붙이고 밑줄을 그어 놓았지만 ‘왜 좋았는지’ 충분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최근 내 모습이 보였다. 읽고 싶은 책을 틈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고 와 닿는 문장은 밑줄 쳤다. 그리고는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옆 장을 넘겨가며 읽었다. 좋아하는데 이유 없다고들 하지만, 껍질을 하나씩 까듯이 파고 들어가 보면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 속 알맹이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채, 겉으로만 보고 얕게 알고 있었던 지식이 나를 둘러싼 환경을 재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충분하기에 이미 나는 잘 알고 있다고 너스레 떨었던 것은 아닐까 부끄러워졌다.
인터넷 뉴스를 보며 잠깐이나마 생각했던 것을 남편에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기사 하나를 제대로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채 강렬하게 느껴졌던 헤드라인을 보고 기사의 주인공을 비판했었다. 남편이 다 듣고 있더니 내가 비판한 대상자가 말하는 내용이 담긴 뉴스도 봐야 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남편의 말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내 의견에 반하는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어쩌면 발췌문에서 말하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행동이 나에게서 나타나지 않았나, 민망했다. 편파적인 뉴스 기사든 가짜 뉴스든 스스로 옳고 그름을 걸러내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극적인 면만 보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보이는 대로 믿고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나에게 그대로 나타났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보며 느낀다. 머릿속으로 입력하여 넣은 지식과 이 것들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 주는 역할을 하는 생각의 끈, 이 모든 것을 담는 주머니는 터질 줄도 모르게 탄력성을 자랑하며 커진다. 주머니에 지식을 넣고 깊게 생각하는 사유의 행위는 독서를 통해 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다. 아이와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아이와 관련된 것 말고는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 나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 사유의 주머니를 깊게 만들어주는 더없이 값진 시간이다.
발췌문에서 피어난 생각의 줄기가 나를 감싸고 흔들고 있다. 제대로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있다. 내가 내린 지식의 뿌리는 과연 단단했을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시간이 없어서, 할 일이 많아서 책을 읽고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은 이제 그만하자. 돌아보면 이보다 더 여유가 없었던 상황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책을 찾고 읽으며 고심하며 한 줄이라도 쓰던 행동이 나를 살리지 않았는가. 잠시나마 깊게 생각하려 했던 순간이 회오리 치던 머릿속을 정리해주지 않았는가.
‘오늘 책에서 읽은 배움으로 성찰하며 나의 뿌리를 깊고 단단히 내리자’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