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 어딘가에 존재함을 느낀다
왜 책을 읽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당연하게 손에 책이 잡혔고 눈이 멈춰 있는 곳은 활자다. 예전에는 단순히 정보를 찾기 위해 찾았다. 필요한 지식을 목말라 갈망하고 있던 날에 책은 해결점이 되어 주기보다는 더 큰 물음표를 던져 주었다. 여러 갈래 나뉜 길 위에서 더 나은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나뿐인 정답은 없지만 보다 더 좋은 길이 있다고 책은 말해주고 있었다. 난 이렇게 책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든든하고도 즐거웠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책 편식도 하고 좋은 책은 깊게, 천천히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다. 나만의 평온을 유지하며 사는 삶, 그때는 이게 ‘자유’라는 걸 몰랐다. 당연한 일상이라 여기며 살았다.
아기를 낳고 키우고 있는 지금은 틈틈이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다. 남편이 하루 종일 육아에 동참하는 주말이 오면 여유 있게 책을 읽고자 했다. 시간이 넉넉히 있으면 읽고 싶은 책 몇 권 들고 동네 카페라도 가서 책을 읽다가 오고 싶은 마음 한 가득 품고 살고 있다. 왜 이렇게 책이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까.
작년 여름부터 우리 집 TV는 조용하다. 갓난아기 돌보느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짧은 시간에 집안일을 해내느라 볼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아기를 키우는 육아 맘인 나에겐 TV를 보고 책을 읽는, 두 가지 모두 다 할 수 있는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TV, 책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난 TV 보면서 느슨해지면서 산만해지는 기분이 반갑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내 시간을 TV 보며 보내는 것보다 책을 읽으며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싶었다. 글을 읽는 순간 내가 만든 상상 속세계로 걸어간다.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매일 읽고 있는 책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주인공을 발견했다. 요즘 <불안의 책> 주인공인 소아르스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살면서 내면의 이야기를 고백하듯이 글로 풀어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어둡고도 내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감지하지 못했던 속의 심연의 생각이 스치듯 떠오르기도 했다. 읽지 않았으면 분명 소아르스를 몰랐을 테고 그를 상상해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있는 시간에는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시선이 멈추고 손이 간다. 한 가지만 생각할 여유도 없다.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것이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이 작은 집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이 집에서 나와 또 다른 세상 어딘가에 존재함을 느낀다. 아기 엄마가 아닌 다른 개체가 된 기분을 만끽한다.
아이가 잠들고 책을 집는 순간 엄마가 아닌 ‘나’에게로 돌아간다. 육아와 집안일에 둘러싸인 지금, 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중한 자유를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