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이 수많은 책이 공짜라니!
책 냄새도 좋고 책이 꽂혀 있는 서가가 참 좋다. 베스트샐러가 전시되어 있고 잔잔한 음악과 향기를 내뿜는 서점과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의 손 때 묻은 책이 정겹다. 먼저 읽은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 손위에 있는 책이 더욱 반갑다. 우리 집에서는 서점보다 도서관이 가깝다. 참 다행이다. 서점이 가까이에 있었으면 내 용돈은 서점에 모두 다 털렸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먼저 가입하고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만드는 순간, 이 도서관의 많은 책을 빌려 읽고 독서 왕이 될 것 같은 상상을 했었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 내가 원하는 모든 책이 이곳에 있길 바라며 책을 사 보는 것이 아니기에 돈 아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도서관은 오래되어 요즘 새로 지은 도서관처럼 개성 있는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며 우리 집의 책장의 확장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별의 별 상상을 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이럴 때 보면 난 정말 단순하다. 도서관을 다니며 행복은 어디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실감한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땐 부지런히 도서관 다니며 책 읽었다. 10권까지 대출 가능하기에 읽고 싶었던 책을 모조리 빌려 읽었다. 누군가에게 대출중이면 예약 해 놓고 기다리며 다른 책을 탐하고 있었다. 만삭의 임산부가 되어서도, 아기 낳으러 가기 직전까지도 다녔다. 읽고 싶은 책은 미리 찾아 놓지만 그 곳에서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 갔다가 그 쪽 서가의 다른 책들이 날 유혹하고 있다. 역시 현장에서 고르는 게 제 맛이지! 책은 하루 행복의 노른자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아기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도서관을 갔다.
집 밖의 기온이 얼마나 되는지, 날씨가 어떻게 되는지 감도 오지 않은 채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갔다. 이제 예전처럼 오랜 시간동안 도서관에 있기엔 어려웠다. 아기를 재우고 도서관 문 닫기 전에 바쁘게 가기도 하고 주말 아침 시간에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이제는 꼭 인터넷으로 내가 빌릴 책이 도서관이 있나 없나, 미리 확인하고 간다. 필수다. 대출중이라면 예약을 걸어놓고 나중에 도착하면 찾으러 갔다 온다. 그래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갈까 고민하다가 아기를 아기 띠로 안고 처음으로 같이 도서관에 갔다. 아기가 우리에게 온지 9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한번 가보는 거지. 아기를 안고 도서관 가는 길은 비록 짧은 거리라도 힘들었다. 아기띠를 하고 오른 팔에는 반납할 책 5권을 가지고 도서관이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도서관을 가 본 우리 아기, 목을 빼고 이리보고 저리 보며 두리번거린다. 신기한가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예쁘다고 인사 해주면 뚱한 방을 보이며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반납할 책은 반납하고 빌릴 책도 이미 빌렸지만 간 김에 책 구경하고 싶어서 서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아기띠 안에 있는 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모자는 얼마 안 있어 도서관을 나왔다. 아기를 안고 책을 챙겨 집을 나설 땐 책 반납만 하고 와도 성공하는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도서관을 향했는데 막상 가니 책구경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괜찮다. 그 곳에서 할 일은 다 끝났으니 집으로 왔다. 아기를 내려놓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책장에 두었다. 밤에 아이가 잠들고 빌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실수한 것 같다. 단시간에 어렵게 빌린 책인데 잘못 골랐다. 내가 원했던 책이 아니다. 왜 빌렸을까 의문만 남는다.
도서관은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
문 여는 시간보다 문 닫는 시간이 나에게 중요하다. 아이를 재우고 잠시 가서 책 빌려 오기로 했다. 웬일인지 오늘따라 잠들기가 힘든 우리 아기, 재우러 방에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넘어도 잘 생각이 없다. 졸려서 눈이 반 쯤 감긴 아기와 실랑이를 하다가 나도 같이 잠시 잠들었나보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9시 45분이다. 급하게 옷을 입고 뛰어서 도서관을 향했다. 열람실에 도착하니 58분이다. 예약했던 책을 찾아 빌리고 나니 도서관은 마감했다. 반납 할 책을 1층에 있는 도서 반납 기계에 넣고 집에 왔는데, 잘못한 걸 알았다. 방금 대출한 책을 반납기계에 넣고 온 것이다. 내 손에는 반납하려고 집에서 가지고 간 책이 그대로 있었고 다시 집으로 같이 왔다. 허무한 밤이다. 이러려고 도서관을 그렇게 급하게 뛰어 갔었던 것일까.
이제 도서관 열람실은 저녁 8시까지 한다고 하니 아기를 재우고 가긴 글렀다.
어린 나에게 도서관이란
지금도 도서관을 좋아하지만 어릴 때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학교 도서관이나 버스타고 가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던 동네 도서관이나, 매주 꼭 가야 할 곳이었다. 욕심껏 많은 책을 빌려 무겁게 들고 집에 왔었다. 주말에는 아빠가 도서관에 태워주셨다가 데리러 다시 오시기도 했다. 엄마랑 도서관 같이 가는 날도 책을 나눠 들고 오니까 무겁지 않게 집에 올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언제부터 도서관을 가게 되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도서관에서 책 빌려 오시는 걸 보며 나도 같이 가게 된 건 기억난다. 엄만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찾아 도서관을 찾았다. 나 역시 엄마를 따라 가다가 도서관이 재미있는 곳으로 되었다.
도서관은 책만 읽고 빌리는 곳이 아니기도 하다. 도서관엔 매점이 있다. 여기서 먹는 라면은 정말로 꿀맛이다. 친구들과 갔다가 가방 두고 다시 나와서 컵라면을 꼭 사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왠지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어린 나에게 도서관이란 재미난 이야기 거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도서관뿐만 아니라 서점도 좋아한다.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삼촌은 나를 데리고 늘 서점으로 향했다. 내가 고르는 어떤 책이라도 사 주셨다. 만화책부터 이문열의 삼국지 전집까지. 한 권을 고를 때가 있지만 종종 여러 권 고를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별 말 없이 계산을 다 해 주셨다. 그리고 읽고 난 다음 무엇을 느꼈는지 삼촌 배에 앉아 장난치며 종알종알 얘기 해 주었다. 책 읽는 행위가 이토록 즐거운 것이고 궁금한 것을 책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엄마 말고) 두 번째 사람이 바로 삼촌이었다.
아직 아기와 같이 도서관 가는 게 쉽지가 않다.
가깝지만 언덕의 꼭대기에 도서관이 있기도 하고 날씨까지 추워졌다. 지금은 도서관에서의 여유를 즐기긴 어렵고 허탕 치는 날도 많지만 갈 때마다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씩 탄생하고 있다. 1층에 아이들을 위한 열람실에 가서 책이 어떤 것들이 있나 둘러보곤 날이 조금 풀리면 유모차를 가지고 가 볼까, 걸어 다니면 같이 걸어서 가 볼까, 상상을 하고 있다. 나중에 우리 아기가 엄마가 빌리고 싶은 책을 고를 때도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자기가 읽을 책을 스스로 골랐으면 좋겠다. 도서관에 가자고 나를 조르면 좋겠다. 가까운 미래엔 아이와 나에게 도서관이 놀이터로 다가 올 것이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