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맘이 두껍고 어려운 책을 탐하는 이유

책읽기에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by 미아취향


뱃속에 아이가 들어서면서 나의 독서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몸이 힘드니 원래의 일상은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이해가 쉽게 되지 않으면 손에 있던 책을 금세 내려놓았다. ‘잠시만 안녕’ 하며 이별을 고했던 책과는 완전히 멀어졌다. 한동안 나의 독서는 ‘쾌락독서’에 편중되기 시작했다.


두껍고 어렵다고 느껴졌던 책은 책장에서 손에 쉽게 닿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 있다. 분명히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더 깊은 호기심으로 빛나는 날들이 있었다. 출근 전 새벽 독서모임을 하며 부담스러운 두께의 책도 함께 읽으며 단상을 함께 이야기하며 공유하던 날이 있었다. 토요일 밤에 책 몇 권 옆에 두고 늦은 시간까지 읽다가 잠든 날도 떠올랐다. 쉽게 읽으며 당장에 공감하는 이야기로 책의 매력은 끝나지 않는다. 어렵다 하더라도 파고 들어 갈수록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지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권의 책을 읽고 또 다른 책으로 지식의 끈이 연결이 되어 옮겨 갈 때, 매력은 더 부풀고 향기를 뿜어낸다. 나만의 향기를 만들어 주는 것, 나에게 책이란 그런 존재였다.



아기를 키우며 벽돌만큼 두꺼운 책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물과 같은 깊이가 느껴지는 책은 완전히 멀어졌다. 육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육아 책, 나의 감정을 다독이는 쉬운 에세이 위주로 읽다보니 마음 속 책의 깊이는 점점 얇아지고 있다. 호기심은 또 다른 호기심을 부르고 더 깊게 파고들어가는 법이지만, 나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그저 나는 지금 가진 습관대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일상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것은 없었다.

정말로 그럴까? 변화가 전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하루를 움직이는 큰 틀은 같을지라도 세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을 텐데 의문이 생겼다. 다시 나의 일상을 곰곰이 짚어 보았다. 아무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읽기의 변화’

요즘 난 잘 읽지 않았던 책의 분야를 탐하고 있다. 지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있다. 예전부터 읽고 싶어서 시도했다가 놓고, 다시 읽으려 시도했다가 놓길 반복했었다. 읽고 싶다 하더라도 잠시 딴 생각에 빠져 다른 책을 읽기도 했었다. 왜 바로 읽지 않았을까. 왜 지금까지 읽으려는 시도만 남긴 채로 있었을까. 당장 내가 원하는 정보, 필요성을 곧바로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읽을 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거기에다가 서문을 읽을 때마다 이해가 잘되지 않던 어려운 용어들도 한 몫 했다. 이 때문에 읽다가도 금방 덮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새롭게 읽고 있다. 새 마음으로 잘 읽어보려고 있지만 역시나 쉬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책의 절반을 넘어간 지금,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이 어려운 용어와 여러 실험 분석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평소에 궁금했던 우리의 본질적인 것, 욕구에 기반 한 태초부터 시작된 동, 식물 유전자의 행동과 같은 지식을 알아감이 즐겁다. 어렵지만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책의 한 장(Chapter) 씩 읽고 다음 장을 볼 때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책에서 발견한 배움의 즐거움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뿌듯함이 있다. 예전에 읽다가 덮었던 어려운 책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제 다른 두껍고도 깊은 책을 읽을 수 있겠단 자신감이 크게 붙었다. 이 책만 읽기에는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비교적 쉬운 주제의 책을 골라 함께 읽고 있었는데, 더욱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읽기에서의 한 걸음씩 올라가 난 성장하고 있다. 벽돌책 몇 권을 읽고 있으니 나의 독서는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여러 두툼한 책을 탐독하던 내 모습이 되살아난 것만 같다. 육아와 집안일에 묻혀서 아이의 엄마, 아내로 살고 있는 것만이 아닌 책의 향기를 뿜는 내 모습이 보였다.






@xangriffin 출처 unsplash


흐뭇함을 가득 안고 다이어리를 넘겨서 적어 두었던 것을 찾았다. 두 달 전 쯤 책 읽다가 좋았던 단어, 문장을 적어 둔 것이 있다. ‘새로고침’, ‘새로운 것을 도전하자’. 내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것, 망설이던 것을 조금씩 해 보자는 마음에 적어 두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시도를 할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만 있는 내가 무슨 새로운 자극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두리뭉실한 결심으로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결심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자주 읽는 분야의 책 말고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보자. 손이 잘 가지 않지만 궁금했던 분야, 왠지 한번쯤은 읽고 싶었지만 두꺼워서 읽을 때를 기다리는 책, 읽기에 어려울 것 같아 망설이는 책, 꺼내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시도보다 꾸준히 읽어내는 행위가 어렵다는 것, 충분히 잘 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일까? 머릿속 지식의 양과 질을 의심할 수도 있다. 분명 읽다가 어느 순간 덮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벽돌책은 아기의 장난감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육아서와 쉬운 에세이만을 읽는 것보다 어렵고 두툼한 벽돌책을 읽는 이유가 분명 있다.



우리는 계단을 딛고 원하는 곳으로 올라간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올라 또 다른 곳으로 날 데려다 준다. 분명 이 벽돌 책이란 계단을 오르는 건 쉽지 않고 어쩌다가 내 용량을 넘어선 두 세 계단을 한꺼번에 오르는 날엔 힘들어 지쳐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책계단을 오르고 올라간 끝에 몰려오는 희열과 뿌듯함이란! 비어있던 헛헛한 마음을 알알이 차오르게 만들어 준다. 점점 새로운 분야의 이야기에 한 발자국씩 걸음 떼 본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책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자신감이 생기면서 다음 계단을 오를 가능성도 커지고 있음을 책으로 알아간다.




집 안의 모든 것을 만지고 싶고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는 아이의 행동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책을 구경해 보는 건 즐겁다. 이전의 경험이 호기심의 발걸음에 재동을 걸고 있다 하더라도 한번 따라가 보려 한다. 다음에 읽을 벽돌책을 탐색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설렌다.


새로운 시도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의 범위를 조금씩 넓히는 습관, 나의 책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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