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아책방 May 28. 2020

그를 만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나를 사로 잡은 작가

2019년 겨울.

설레는 마음을 안고 책 두 권을 가방에 넣었다. 하나는 2003년도에 샀던 책, 다른 하나는 며칠 전에 샀던 책. 이렇게 두 권. 남편에게 이번 주에는 수요일에는 출장 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찾는 평일 저녁시간, 육아와 집안일을 남편에게 바통 터치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에서 남편은 손을 흔들며 잘 만나고 와, 말한다.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를 만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등장했다. 두근두근. TV에서 볼 때마다 실물로 꼭 보고 싶다고 남편에게 자주 애기 했었다. 고등학생 시절의 내 이상형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를 보게 되었다.        


        



2003년 고등학생인 나.

신문을 뒤적뒤적 거리고 한 장씩 펴 가며 읽었다. 앞의 몇 장은 헤드라인만 보고 넘기고 좋아하는 쪽을 향해 편다. 스포츠 뉴스, 해외여행, 책 소개. 이쪽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이 꼭 읽어봤었다. 축구, 배구, 농구를 좋아해서 경기 직관하러 다른 지역으로 많이 찾아 다녔다. 해외여행 코너를 읽으며 대학생이 되면 어디로 떠나볼지, 어떤 경험을 할지 궁금해 하며 상상해보곤 했다. 그리고 책 소개. 신문에서 책 소개하는 신간코너는 놓칠 수 없다. 평소처럼 읽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 보통은 학교나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거나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곤 한다. 하지만 책이 도서관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서점가서 바로 샀다.      



그렇게 내 용돈으로 산책이 바로  조승연 작가의 《공부기술》이다. 점수를 마구 올릴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싶어서 산 것도 있지만 책 소개를 읽다가 나를 단번에 사로잡은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뉴욕대를 다니고 있으며 줄리어드 음대 스쿨도 합격했고, 공부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았다. 거기에다가 휴일이면 음악회와 미술관에 가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기에 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와 문제지를 씨름하고 있는 고등학생인 난, 도서관이 너무나 좋았다. 궁금하고 읽고 싶은 책이 줄을 서서 날 기다리고 있다. 여행에세이를 읽으며 세계여행을 꿈꾸다가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을 읽으며 마음 속 한 곳에 인도여행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호주를 다녀와서 쓴 에세이를 읽다가 워킹홀리데이를 꿈꾸었고 이 꿈은 몇 년 뒤에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추리소설 여러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학교 안 가는 주말에 밤 새워가며 읽었다. 무섭기도 하지만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읽는 추리소설은 그야말로 내 호기심의 끝판 왕을 자극하는 것만 같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역시 흐름이 끊기면 안 되니 주말에 몰아서 읽었다. 읽은 것을 바탕으로 배우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많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초등학생 때부터 배우고 있는 서예도 계속 하고 싶었고 배철수 음악캠프를 들으며 팝음악과 음악잡지에 푹 빠져 있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게 많은 욕심쟁이였다! 


공부하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다 같이 할 수 있을까? 어느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내 즐거움을 책임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공부와 같이 하기엔 어려웠다. 시험이 늘 기다리고 있었다. “공부기술을 터득하면 공부하고 남는 시간이 많아져 학창시절의 낭만과 젊음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개인적인 공부까지 할 수 있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공부기술》에서 저자는 말한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내 욕심을 잘 채워줄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까, 빨리 읽고 싶었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일단 봐야겠고, 믿을 만하면 나도 비법을 따라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말이다.      


군것질도 안하고 용돈모아 팝음악CD를 사려고 모으고 있는데,  그 귀한 용돈으로 책을 샀다. 기대감에 읽기 시작했고 멋지다는 말을 반복하며 책을 덮었다. 서울에 가면 이 분을 꼭 만나봐야지. 실물로 봐야지. 일기장에 적어 두었다.             


내가 산 책 <공부기술>




        

좋아하는 두 권의 책 

그를 떠올리면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닐 것이다. 7개 국어에 능통하여 언어 공부에 관한 책도 많이 나와 있다. 문화와 지식을 다루는 여러 프로그램에 나와 재치있는 입담으로 어렵거나 지루한 역사 문화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주었다. 그가 가진 지식을 TV와 라디오, 유튜브와 같이 여러 매체를 통해 전달을 하고 있다. 그의 여러 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리얼하다》 와 《시크하다》 이다. 왜 이 두 권의 책이냐, 고등학생 때 《공부기술》을 읽으며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괜찮았지만 조승연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면서 해외로 내 생활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왠지 미래에 나는 세계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든 살 수 있고 공부하며 적응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세계 여행과 원하는 곳에서의 살이의 꿈을 꾸게 되었다.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시크하다》, 가식적이지 않고 당당해서 행복한 뉴요커 라이프 에세이 《리얼하다》는 그런 나의 어릴 때 모습, 꿈을 소환시켜 주었다.           



서로 많이 다른 파리지앵과 뉴요커. 그리고 우리나라와도 문화 차이가 있다. 자신의 주관을 표현하는 데에 거침없는 시크한 파리지앵. 바쁜 현대인들 삶속에서 남 신경 쓰며 살기보단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사는 뉴요커. 작가는 왜 이 두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을까? “우리도 점점 각박해지는 도시화된 생활 속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나만의 개성, 스타일, 그리고 우리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힌트를 찾을 것으로 믿는다”고 《리얼하다》에서 책 쓴 이유를 밝혔다.      



사회는 점차 변화하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예전과 점점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새로운 삶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기존의 방식으로는 대처하기 힘들 때도 많다. 그렇기에 우리와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른 이들의 사는 방식을 보며 우리 삶의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의 가치 중에 옳고 좋은 것을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만들어진 가치관을 바탕에 두고 주어진 일상을 살아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방식 모두가 옳은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방식도 맞다고 할 수 없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리지앵의 삶 《시크하다》, 뉴요커의 삶 《리얼하다》와 같이 삶을 들여다보는 책은 일상을 틀을 깨어주는 역할을 하는 멋진 책이 된다.     



어쩌면 프랑스인은 진짜 성공한 인생이란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고, 진짜 행복한 인생은 행복이란 것을 믿지 않고 주어진 순간에 충실한 인생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것은 아닐까? (p.192)  
《시크하다》     


뉴요커들은 인생에 ‘정답이 없다’를 인정하기 때문에 수많은 의견이 충돌하는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p.190)  
《리얼하다》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간다고 해서 그들의 삶 속에 파고 들어가 역사의 핵심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 곳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난 다음,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그들만의 문화에 한 걸음 다가가기에 수월해진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소극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된 강연. 재치 있는 입담과 이야기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리얼하다》의 주무대인 뉴욕지역과 뉴욕을 이루게 된 배경 그리고 뉴요커들의 이야기들로 강연 시간을 꽉 채웠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는 끝났고, 마지막에 어떤 분이 질문을 했다.     

 “뉴요커의 이야기와 서울에서의 삶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떤 것을 내 삶에 적용하고 싶은가요? “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뉴욕에서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0(zero) 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배우고 싶다. 

파리에서는 예쁘게 산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을 해도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식탁 플레이팅을 하고 재즈를 튼다. 그 예쁜 삶의 에너지를 배우고 싶다. 

서울에서는 다들 바쁘게 살지만 할 땐 열심히 하고 잘 논다. 일과 노는 것을 빡세게 하는 에너지를 배우고 싶다.“           


재미있고도 풍부한 이야기로 내 눈과 귀,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려 배우는 자세와 그 에너지를 배우고 싶다. 어릴 때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쟁이 고등학생인 나를 떠올려 호기심 가득한 꿈을 되새김 하고 있다. 시간도 부족한데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건지, 힘이 들고 속상할 때마다 그의 배움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자극받곤 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비슷했고 지금까지 멋지게 살아 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이 더 궁금해지고 뒤 쫓아 가보고 싶다.                


이전 09화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