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거리
초등학교 6학년, 나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었다. 집이 이사 가는 바람에 전학을 가게 되었지, 분명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 6학년 정도가 되니 이미 아이들은 무리지어 놀고 있었고 그 무리 성격과 다른 아이에게는 친절을 기대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전학간 곳의 담임 선생님은 나의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분이었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잘 알고 계셨고, 그에 맞추어 학교 적응하기 편하게 도와주셨다. 당연히 아이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학 온 학생을 편애하는 게 잘 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따돌림을 당했다. 공식적인 따돌림은 아닌, 같이 잘 놀다가도 선생님의 터치가 보이면 끼워주지 않는다는 그런 유치한 방법이었다. 당시에 난 가볍게 생각하려 애썼지만 학교 갈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5학년 까지 다녔던 학교에선 친구들과 무척이나 잘 지냈었고 학교는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곳이었는데 전학을 간 후로 학교는 제일 싫은 곳이 되었다.
이사는 어른들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일이었고 새 집에 적응하는 건 가족 전체가 같이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전학해서 적응하는 것은 달랐다. 오로지 내가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 의지로 간 전학도 아니기에 부모님을 원망 많이 했었지만 따돌림에 대해 당장 말하지 않고 한참 지난 후, 학기가 끝나 갈 때 ‘힘들었다’고 말했다. 창피하기도 했고 어른들이 어떻게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별 거 아닌 따돌림이라 치부하고는 혼자 해결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 6학년 때의 기억을 짚어보면 좋았던 감정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사건이 부모님과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들게 된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스스로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싸움처럼 어른들끼리 문제를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것처럼,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부터 내 방에 누군가가 들어온다고 하면 노크를 하라고 당부했었다. 내가 없을 때 내 책상이나 침대는 치우지 말라고 했었다. 그때의 나는 노트에 사소한 것부터 끄적거렸고 책상 깊숙한 곳에 넣어뒀었다. 혼자서 침대에 누워 울기도 하고 불 끄고 스탠드만 켜 놓고 책 읽기도 하고 내가 써서 보낸 사연이 라디오에 나오는 걸 들으며 조용히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좋아하는 가수나 선수의 잡지나 신문을 모아 보관하기도 했다. 내 방에서 나는 만들어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그런 ‘공작소’였다. 내 방은 부모님이나 동생과 거리를 둔, 오직 나를 위한 곳이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건, 결코 사랑의 포기가 아니다. 그와의 거리감을 존중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내적 자각이다. 거리를 존중할 때, 더 크고 깊은 사랑이 시작된다. (p.30)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 정여울 지음
정여울 작가가 처음으로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원룸을 얻었을 때, 엄마는 집 번호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때 작가는 안 된다고 했고 엄마는 화를 내고는 가셨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으니 왠지 정말 독립이 무엇인지, 그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엄마의 서운한 마음도 눈감고 지나치지는 못하겠다.
스무 살부터 나와 살았다. 부모님이 모르는 나의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고 반대로 나도 모르는 우리 집 이야기들이 늘어났다. 나나 부모님이나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는 생각에 서운한 감정이 지속적으로 쌓였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하는 변화였다. 아파서 친구의 도움으로 응급실을 갔어도, 마음이 아파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어도, 부모님이 몰랐으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프셨거나 동생과의 마찰이 깊었던 것을 내가 모르고 한참 후에 알았을 때는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나’ 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나한테 말해준다고 한들 나는 그 곳에 없었고 갈 수도 없었기에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다. 결혼하고 남편에게 ‘가까운 가족이어도 거리는 필요하다’고 털어놓았을 때, 남편은 무척이나 서운해 했었다. 부모님과의 거리가 존재하는 만큼, 나와 당신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면 외롭지 않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좋은 점도 많지만, 불편한 것이 실로 참 많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지낸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나에겐 나만의 시간, 내 공간이 당연하게 있었다. 결혼을 하니 집에 있는 모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으니, 내 시간과 공간은 애써 만들어내야 생겼다. 같이 책을 읽거나 TV를 보는 시간이 싫어서가 아니다. 어느 누구의 눈길이나 소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노트에 끄적거리고 싶고 책도 읽고 싶을 뿐이었다. 서로 양보가 필요했다. 무작정 내 시간을 달라,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내 것’을 요구하고 남편도 서운함은 내려놓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존중해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적응하고 편안해 졌다.
어느 관계에 대한 거리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 남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 이렇게 단어로만 접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래도 진정으로 그 관계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를 위해서 분명히 존재해야 함은 맞다. 서로간의 거리를 인정해 줌으로써 상대방의 시간과 마음의 공간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나에게 ‘엄마랑 나 사이에 거리가 필요해요. 독립하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남편이 나에게 처음 서운했던 것처럼 나는 속상한 마음이 들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기억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까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 분명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지만 벌써부터 나는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