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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Apr 14. 2024

장군 같은데, 독불장군.

요즘 회사를 다니면서 자주 느끼는 생각은 '기관장이란 사람들이 다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려고 오는 것 같다'이다. 사기업과는 다르게, 공기업은 주기적으로 기관장이 바뀌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취임을 한다. 공공기관은 내가 돈 벌려고 운영하는 회사도 아니고, 회사에 투자해 준 주주들을 위해 돈을 버는 회사도 아니다. 모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조직이다. 그런 조직의 장이면 조직 내 누구보다도 조직의 존재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아이러니하게 돌아가곤 한다.


공공기관은 어떤 과업들을 자발적으로 먼저 기획하고 추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진행한다. 정부 부처에서 고안해 낸 정책을 직접 수행하거나, 정책을 그들 대신 만들어내기도 한다. 정책과제를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가져서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위에서 시키는 정책과제를 위에서 정한 방식 또는 법대로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쪽에 가깝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민원이든 간담회든 현장 소통의 장에서 제시하는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반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민원 처리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제도, 정책 개선에 관해 대게 기관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정부 방침이 바뀌든 법이 바뀌든 해야 된다라고 답변하고, 정부에서는 소관 기관에서 답변하라고 이송해버리곤 한다. 이런 점은 개선해야 한다, 이런 점을 바꿔달라 얘기해 봤자 서로 책임을 떠넘길 뿐, 의견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정부 위의 대통령실이든, 행정부든, 국회든 뭐든 정책을 만들고 수행하는 조직 내의, 소위 윗사람들이라고 하는 간부들이 소통태도가 불성실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공공기관은 상위 기관과 본인들 기관장이 지시하는 사업들을 수행하는데, 이 사업들이 본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사업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관장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아이디어를 국민들도 좋아할 것이라며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아닌, 도리어 설명회, 간담회 등 소통채널을 통해 주입시키는 경우들을 참 많이 봤다. 언론을 통해서는 국민들에게 이런 정책들이 필요할 것이라며 자기들 나름대로의 논리를 들어 설득하려고 한다. 국민들에게 어떤 정책을 했으면 좋겠는지 의견을 들어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하려고 하는 사업을 반대로 주입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순수하게 개인의 머릿속에서만 나온 건 아닐 것이다. 정치인, 공직자들의 공약도 그렇고, 일개 조그만 공공기관의 기관장도 그렇고, 추진하려고 하는 그 수많은 정책들, 사업들을 관련 정부부처, 정당, 전문가 등등 여러 루트를 통해 전달받아서 아이디어를 구축한 경우들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 회의감이 드는 부분은 직접적으로 혜택을 보는 국민들의 의견, 수요 등이 과연 반영이 되어있는가이다. 대부분 정책을 발굴하는 사람들은 해당 정책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어서 해당 정책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걸려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정책이든 어떤 사업이든 발굴하려면 당사자들 의견이 다수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요즘 행정에서 과연 그런 의견수렴 및 반영이라는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그런 소통 절차를 중요하다고 과연 생각할까? 그냥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아니면 의견을 수렴만 할 뿐, 관계가 없다는 둥,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둥 수용을 하지 않는다든가.


여러모로 그들이 느끼는 세상과 진짜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직접 당사자에게 의견을 들어보는 소통채널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비대면 채널들도 많이 늘어나서, 의견수렴하는 과정이 과거에 비해 쉬워졌다. 직접적으로 정책의 수혜를 입는 당사자들이 정책수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거버넌스부터 소통 플랫폼 구축, 현장간담회나 공청회 개최 등 대면 소통채널도 많고, 온라인 설문조사 플랫폼 운영, SNS를 활용하는 고객만족도조사, 전화 여론조사 등 비대면 채널도 최근엔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선거 여론조사 전화만 해도 하루에 엄청나게 전화 왔던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소통활성화 정도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이런 다양한 소통채널을 활용해서 실제로 국민들에게 물어보고 대화해 보고 알아보기는 하는 건지 묻고 싶다. 예를 들만한 사례들은 참 많다. 한참 떠들썩했던 최대 69시간 노동에 관해서 근로자들 의견도 산업계만큼 충분히 수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도 반영하려고 노력한 건지 묻고 싶다. 근로자들과 정치인들이 직접 마주 앉아서 정책에 관해 토론하고, 정책 수립에 직접적으로 거버넌스 등의 방식을 통해서 참여시켰는지, 인터넷 등의 비대면 방식으로라도 일반 대중들의 생각들을 광범위하게 물어보고 내용을 들어보긴 했는지 묻고 싶다. 그냥 그쪽 관련 연구기관 등 전문가 집단에 정책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주는 대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소통 절차 자체가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막상 들어보면 반영할 내용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소통을 소홀히 하는 게 요즘 사회의 현실이다. 대통령실, 정치인들만 소통 없이 자기들 맘대로 정책을 끌고 가는 게 아니다. 공직사회 전체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꾸려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니다. 정책이 필요한 사람들,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진실되게, 올바르게 업무를 수행하려면 관련된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듣고 수용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번 선거 결과만 보더라도 불통의 결과가 어떤지 보이지 않나. 사람들은 남 얘기 안 듣고 본인들 하고 싶은 대로만 추진하는 정책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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