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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May 17. 2024

오늘 저녁, 번아웃 없이 퇴근하려면

성격 급한 사람들은 했던 얘기를 또 하게 만든다. 최근 내가 상대했던 협력업체의 한 담당자는 성격이 급해서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 A를 하고 B를 하고 C를 해달라고 하면, A를 듣고 B를 거의 다 들을 때쯤 알겠다는 말과 함께 대화를 끊어내려고 하는 습관이 있었다. 뒤에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빨리 일을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요청사항을 끝까지 들었다면, 한 번만 통화하면 일이 마무리되었을 텐데, 제대로 듣지 않았던 C 업무를 하지 않아서 또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 한 번만 말해도 되는 것을 두 번, 세 번 말하게 만드는 소통 스타일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우리 회사는 이상한 문화가 있다. 사내 메신저나 카톡 같은 외부 메신저를 통해서 선배에게 업무연락을 하는 것이 예의가 없다는,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모두의 마음속에서 통용되고 있는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다들 매번 업무적으로 물어보거나 요청할 때 전화로 대화하거나, 직접 자리로 찾아가서 대화를 한다. 전화도 예의가 없다고 평가할까 봐 불안감에 무조건 찾아가서 대화하는 직원도 몇몇 있다. 급해서 전화로 요청한다든지, 설명할 내용이 많아서 찾아가서 회의를 하는 경우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무조건 전화나 대면으로 소통하려는 경향이 있다. 메신저로 남겨놓으면 읽고 나서 시간이 될 때나 본인이 편할 때 답변을 할 텐데, 왜 꼭 전화나 대면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소통을 충분히 해야 한다, 허심탄회하게 말해야 한다 등 소통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말할 때, 많이 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대화의 양이 많은 것도 중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할 때 중요한 점은 소통해야 할 내용이나 의견을 최소한의 양으로 주고받는 경제적 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만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은 의미를 강조하고 싶을 때나 필요한데, 이것도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지, 반복적인 표현은 뇌에 피로감을 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할 때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를 하든 회의를 하든, 소통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는 활동이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시간 소비줄이는 방향으로 일을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단순하게 소통하는 자세는 그래서 중요하다.


했던 얘기를 또 하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자세가 경청이다. 한 번 제대로 들으면 반복해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한 번의 대화를 통해 한 번만 업무를 처리하면 된다. 대부분의 대화에서 차분하고 세심하게 듣고 제대로 이해한다면 불필요한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대화를 덜 하는 만큼 다른 과업을 할 시간이 생기고, 해야 하는 과업에 집중할 여력도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예시가 회의이다. 회의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일할 시간도 줄어들어서 많은 직원들이 회의를 싫어한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은 그런 쓸데없이 긴 소통 시간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집중해서 짧은 시간에 업무를 수행해서 최대한 많은 업무를 쳐내야 그만큼 초과근무 시간이 줄어들고, 이는 업무 효율성 상승을 의미한다. 쓸데없는 것들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효율성 증대의 핵심이다.


그리고 하나의 업무를 집중력 있게 수행하는 것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 그런데 전화, 회의 같이 중간중간 업무 흐름을 끊어내는 소통 타임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아무래도 업무처리 속도가 느려지게 될 수밖에 없다. 전화가 많이 오면 괜히 정신없고, 하고 있던 일을 반복적으로 멈추게 된다. 보고서 작성하다가 전화받고, 끊고 나서 이어서 작성하다가 또 전화가 오면, 집중력이 흐려져서 업무 속도가 느려진다. 급한 일도 아니고, 단순 질의나 요청이면 메신저 등 문자 소통방식을 활용해서 상대방에게 소통 자율권을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끝내고 소통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하고 있던 일을 마친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소통에 집중하게 해서, 업무처리에 대한 방해요소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지, 선배에 대한 이유 모를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최대한 많은 업무를 끝내고 정시에 퇴근하는 게 요즘 직장인의 미덕이니, 조직문화도 점점 바뀔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직장인의 흔한 문제인 번아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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