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민원업무 처리도 해보고, 민원총괄담당으로서 국민신문고, 탄원서 등 여러 소통채널을 통해 전달된 민원의 총괄관리도 해보면서, 매스컴에 나오는 민원인 갑질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본인 입장에서 억울하거나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일을 겪은 민원인들은 기분이 잔뜩 상한 상태로 사무실에 방문하곤 한다. 심각하지 않은 사안의 경우에는 불편한 감정이 있더라도 표현을 자제하며 개인적으로 필요한 요청사항을 전달하고, 즉시 또는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민원사항이 해소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의 규모가 크거나, 법적 또는 행정적 책임소재가 무거운, 즉 심각한 사안의 경우에는 민원사항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소송 등 필요한 절차를 밟느라 해결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경우도 많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사무실에 찾아가서 화를 내고, 협박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민원인과 공공기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 표현되는 감정적 표현이 많지는 않고, 당사자 간 접촉도 생각보다 많지 않은 편이다. 변호사 등 대리인을 통해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괜히 해코지해 봤자 본인에게 여러 방면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대한 민원은 필요한 절차를 밟아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최선의 해결책을 발굴하여 해결하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일단 문제가 터지면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때가 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업무처리를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겠지만, 본인 책임 하에 성실하게 업무를 해나가면 해결할 수 있다. 직을 그만둘 정도의 큰 심리적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다른 유형의 민원에서 발생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민원인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경우이다. 문제해결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시간이 소요되거나, 합리적인 사유로 인해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민원인이 과도하게 반응하며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갑질을 할 때, 직원 입장에서는 버티기 정말 힘들다. 소요되는 필수적인 시간이 있는데 무리하게 빨리 처리해 달라고 하는 경우, 불가능한 사유가 법이나 내부 지침으로 명확하게 마련되어 있지만 우기며 어떻게든 처리해 달라고 하는 경우 등 민원갑질은 다양하게 발생하곤 한다.
일전에, 본인의 억울함에 대해서 항의하는 전화를 우리 회사에 난사(?)한 일이 있었다. 시설공사 도급사가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부정하게 횡령했다는 주장을 하는 전화를 연관이 있는 부서부터 시작해서 상관없는 부서까지 여러 사람에게 무작위로 걸었었다. 해당 주장의 내용을 아는 담당부서에서 서류조작이 없었다, 횡령이 아니다 등 설명을 해도 본인 주장만 얘기하며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말을 좀 안 듣는 것처럼 느껴지면 폭언 및 욕설을 하며 인신공격까지 여러 사람에게 가했다. 전화가 걸려오면 도중에 끊을 수가 없으니, 많은 직원들이 계속 민원인의 주장과 욕설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욕설하지 말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한 번 통화하면 몇 십분 동안 얘기를 해서 업무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 거기에 회사 홈페이지에 비방하는 글도 올렸었다. 몇 날 며칠을 본인 주장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직원들에게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전화를 걸어 화를 내고, 소리치고, 욕을 했다. 그러다 민원인 본인이 지쳤을 때쯤 전화가 안 오게 되었다.
민원업무를 처리하며 가장 허무할 때가 민원인에게 과도하게 공격당할 때이다. 인신공격, 욕설 등의 폭언, 더 심하면 폭행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정보가 노출된 경우에는 거주지에 방문해서 항의하거나,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항의하기도 한다. 실명, 거주 주소 등 신원을 외부에 무단으로 공개해서, 우회해서 갑질하는 극단적인 사례도 가끔 발생한다. 최근, 민원처리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민원인에 의해 신원이 인터넷상에 노출되어, 인터넷상에서 공개적으로 비난받고 근무 외 시간에 핸드폰으로 연락이 오는 등 개인적인 항의를 지속적으로 받아 극단적 선택을 한 공무원의 사례처럼 민원사항 해결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공격하는 것은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의 근무만족도를 떨어뜨려 업무효율 및 효과 감소, 더 심하면 사직 등에 의한 업무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이렇게 과도한 행위를 수반하는 민원갑질은 대부분 민원응대 근로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다. 심각한 감정적 충격을 가할 수 있는 1. 폭언 및 폭행의 발생 방지, 근무 외 시간 내 휴식 보장 및 사생활 보호를 위한 2. 근로자 개인정보 제공의 제한 등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최소한의 심리적, 신체적 안전감을 근로자가 느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지켜지지 않는다면 근로자 입장에서 오랫동안 만족스럽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유인이 없어지게 된다. 마음고생, 몸고생 하는 것을 참으면서 민원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힘들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근무환경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공공이든 민간이든 이러한 인식은 전체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그리고 민원응대 근로자에 비해 일반 근로자의 관심이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며 이러한 부족한 인식 수준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일용직 근로자가 노무비 지급이 늦어진다며 임금체불이라고 항의하는 전화를 상위기관에 걸었는데,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담당직원 핸드폰 번호를 아무렇지 않게 알려줘서 직접 통화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전화로 폭언하는 민원인이 꾸준히 나타나니까 통화녹취를 할 수 있게 녹취 시스템을 도입해 달라고 하는 건의도 몇 년째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이행이 안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민원갑질에 대응하기 위해 사안에 따라 어떠한 법적, 행정적 절차를 이행할 것인지 사전에 규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심각한 폭언 또는 폭행이 이루어질 경우 형사고발을 적극적으로 하고, 민원인과 담당 직원 간 분리조치 및 충분한 휴식과 지원 서비스 제공 등의 근로자 보호 조치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민원갑질 대응 및 근로자 보호에 관한 규정 또는 매뉴얼이 미비한 경우, 또는 존재하더라도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아직까지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만 해도 규정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침 자체도 없다. 이렇다면, 소화기를 분사하고, 핸드폰으로 인신공격을 하는 민원인에 대해 조직 차원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고, 직원 개인이 그냥 참아야 하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민원응대 직원으로서는 회사에게서 전혀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업무성과 저하, 업무 안정성 저하, 인재 유출, 근무만족도 저하 등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장기적 시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잠재적 문제요소이므로 빠르게 변화가 필요하다.
일반국민은 물론이고, 근로자들도 인식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민원업무가 이루어지는 조직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일터가 되어야 한다. 근로자 개인이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민원갑질이 우려스러워서 공직을 기피하거나 떠나는 인원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고, 이따금씩 극단적 선택을 하는 직원이 생긴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민원인, 민원응대 근로자 모두가 만족하는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민원응대 근로자 보호 시스템 구축은 이제부터라도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